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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공항에서
딸과 함께 공항에서 ⓒ 조갑환

딸은 출국 게이트를 나가면서 자기 친구에게는 “일년 후에 봐”하며 눈인사를 나누고 나와는 잠깐 포옹을 한 후에 출국장 문 뒤로 사라졌다. 일 년을 보지 못한다는 긴 이별의 아쉬움에 비한다면 이별의 순간은 너무 짧고 평범했다.

나는 딸과 이별을 한 뒤에 공항을 빠져 나와 광주행 버스를 타기 위하여 앉아 있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남았기에 혹시나 해서 딸에게 손전화를 넣어 보았지만 꺼져있다는 메시지만 나왔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잘 받았던 딸의 손전화가 연결이 안 되는 것을 보면서 '딸이 내 곁을 떠났구나' 하는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비행기는 이미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었다.

대학교 2학년인 딸은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위하여 1년 코스로 캐나다로 떠났다. 현지 언어를 익히기 위하여 어학연수를 가는 줄은 알면서도 한편으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돈 많이 들여서 해외에 나가야만 되는 것인가 하고 반대하면서 딸을 해외로 보내려고 하는 아내를 만류했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현실을 모른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줄 알아요. 영어를 모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대부까지 받아서 연수 보낸 데요.”

아내의 극성스런 말에 내 의견은 더 이상 기를 펴지 못한다. 그래서 한 번 풀기 시작하면 금방 깨질 것 같아 모아둔 노후자금 만은 절대 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찌할 수 없이 풀었다.

딸은 서울의 학교에 휴학을 하고 집에 와 있었다. 특별히 하는 것 없이 집에서 두 달 가량을 보냈다. 늦잠 자고, 저녁이면 친구들을 만나 늦게 들어오고…. 또 아침이면 출근하려는 나에게 배시시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있다.

“아빠, 카드 줘!”

그리고 오후에는 카드와 명세표를 살짝 내밀었었다. 외국에 가는 데 사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돈도 많이 들었다. 나는 다음 달 월급이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아 걱정부터 앞서고는 했다.

그래서 떠날 거면 빨리 갔으면 했었다. 그리고 떠나는 날인 12일 휴가를 내 딸과 짐 꾸러미를 챙겨 인천공항으로 갔었다. 인천공항에 가니 서울에 사는 딸 친구가 배웅을 나와 있다. 저희들끼리 뭐가 그리 즐거운지 새처럼 재잘거린다.

광주의 집에 와서 딸의 방과 딸이 쓰던 물건과 아직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을 보면서 마음이 휑하니 슬펐다. 우리 부부는 딸의 흔적들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아내는 어린 딸을 낯설고 물 설은 머나먼 이국 땅에 보내놓고 마음이 좋지 않나 보다. 이제 딸도 자랐으니 자연스레 우리 곁을 떠날 때가 되었노라고 말하며 아내를 위로했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쯤 딸은 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을 텐데 하며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피붙이의 정이란 이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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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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