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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2일 막내녀석이 만든 금연표어
2006년 9월 12일 막내녀석이 만든 금연표어 ⓒ 김환희
"딱 걸렸어. 아빠, 제발 담배 좀…."

학원에 다녀 온 막내 녀석이 저녁을 먹고 난 뒤 아파트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고 거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자 코를 막으며 말을 했다.

"그래, 미안하다. 다시는 집에서 안 피우마."

매번 집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막내 녀석에게 들키면 이런 식으로 변명을 한다. 그러면 막내 녀석은 나에 대한 불만을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엄마, 아빠 때문에 못살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엄마는 담배 연기가 눈에 보이지 않으세요?"
"그런데, 왜 그러니?"

"아빠는 건강에 좋지도 않은 담배를 왜 피우는지 모르겠어요."
"글세 말이다. 네가 한번 이야기해 보렴."

막내 녀석은 아내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막내 녀석의 말에 아내는 나에게 눈을 흘기며 말을 했다.

"당신 막내 녀석 얘기 들었죠? 그러니 담배 좀 끊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술도 먹지 않는 내가 담배를 끊으면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이오."

아내의 잔소리에 화가나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고 발코니 쪽으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조금 전에 막내 녀석이 한 말이 생각나 할 수 없이 현관 밖으로 나갔다. 꼭 이렇게까지 하면서 담배를 피워야 되는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것이 담배를 끊는 일이라는데 말이다.

최근 들어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 막내 녀석은 유난히 짜증을 많이 낸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막내 녀석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오늘도 막내 녀석이 학원에 간 틈을 이용해 담배를 피우다 바로 걸린 것이었다. 이제는 자식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워야 된다는 현실에 한숨이 나오기까지 했다. 물론 막내 녀석이 아빠의 건강이 걱정되어 하는 말이지만.

담배를 피우고 난 뒤, 집에 들어가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현관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내 손을 잡고 발코니 창문 쪽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내 녀석이 담배 연기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경고성의 문구를 적은 종이를 창문에 붙여놓은 것이었다.

"담배 금연, No Smoking, 꼭 지키기"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이것을 어길 시에는 벌금 만원을 부과한다는 문구까지 써 있어 나를 더욱 당혹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학원에 다녀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간 녀석이 무엇을 하는가 했더니 이것을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옆에 있던 아내는 대리만족을 느끼듯 연신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OO아, 너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했니? 이제야 아빠가 담배를 끊겠구나."
"아빠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저도 이제 아빠 말 듣지 않을 거예요."

막내 녀석의 말투가 얼마나 단호한지 잠깐 동안 말문을 잃었다. 그렇다고 막내 녀석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더 큰 걱정은 담배를 끊어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예전에도 담배를 끊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해 보았으나 고작 한 달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아버지로서 아들의 손을 잡고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 것도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사실 금연지역으로 정해진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며 담배를 피워야 하는데 집에서까지 자식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워야 하는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아빠의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으라는 막내 녀석의 생각만은 기특하게 여겨졌다. 아무튼 예전에 성공하지 못한 금연을 이번에 재도전 해볼 생각이다. 금단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막내 녀석과 한 약속을 생각하며 참고 또 참을 것이다.

2006년 9월 12일 재떨이여 안녕
2006년 9월 12일 재떨이여 안녕 ⓒ 김환희

덧붙이는 글 | 강원일보와 한교닷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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