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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하는 신앙
옛날 옛적에 한 왕자가 있었다. 어느 날 왕자는 아름다운 새 한 마리를 선사받았다. 왕자는 새에게 '트위트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정성껏 보살폈다. 심지어 황금 새장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트위트위는 황금 새장 속에서 구슬프게 울기만 할 뿐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트위트위는 왕자에게 이렇게 간청했다. 숲속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자기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만이라도 전해 달라고. 그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기로 한 왕자는 숲속으로 가서 트위트위의 가족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트위트위의 언니는 왕자의 얘기를 듣고 땅에 떨어져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왕자는 다시 트위트위에게 돌아가 언니가 슬픔을 못 이겨 땅에 떨어져 죽었다고 알려주었다. 그 소식을 듣자 트위트위도 땅에 떨어져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왕자는 할 수 없이 트위트위를 새장에서 꺼내 창 밖으로 던졌다. 이미 죽은 새를 새장에 넣어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트위트위가 날갯짓을 하더니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는 것이 아닌가?

트위트위는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언니는 죽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새장에서 탈출할 방법을 알려준 거랍니다. 즉, 땅에 떨어져 죽은 척하면 왕자님을 속일 수 있다고 일러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트위트위는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오늘날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예화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이처럼 리처드 범브란트의 토막글들 중에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기독교인들은 그의 글을 통해 신앙생활의 깊이를, 비기독교인들은 감동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리처드 범브란트의 글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이유는 그가 걸어온 순교자적인 인생 역정 때문일 것이다.

유대계 루마니아인이었던 그는 나치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였던 루마니아에서도 14년 동안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서방세계의 구명 운동으로 석방되어 미국에 망명한 뒤 공산권 내 지하교회 지원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저명한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가 갇혀 있던 감옥엔 끔찍한 고문 기구들, 차가운 벽과 쇠창살 외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를 보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모진 고문도 그에게서 신앙과 평화와 기쁨을 빼앗지 못했다.

결국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란 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죽음의 위협에 당당히 맞서 싸우던 리처드 범브란트는 꿈에 그리던 자유를 되찾았다. 훗날 그는 인권 탄압을 일삼는 독재 정권과 공산주의를 향해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레닌은 인류를 사랑하였다. 그런데 그는 그 인류를 위하여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을 모두 죽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랑한 인류란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추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글들을 많이 썼다. 그는 증오, 분노, 원망 대신 사랑, 기쁨, 평화에 대해 얘기했다. 또한 기독교인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1온스의 종교를 위해서는 10파운드의 상식이 있어야 한다.(10파운드 = 160온스)"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 말고는 어디에도 그 머리를 두실 곳이 없다. 당신은 집을 소유하되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집을 가져서는 안된다."

리처드 범브란트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오늘날 물질과 세속적 욕망에 매몰되어 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초대 교회와 순교자의 정신을 일깨워줄 뿐만 아니라 종교를 초월한 감동과 교훈으로 세파에 지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거라고 확신한다.

승리하는 신앙

리처드 범브란트, 당그래(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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