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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즐겁기만 한 아이들
그저 즐겁기만 한 아이들 ⓒ 김현
탐스럽게 열려 있는 모습이 먹음직스럽다.
탐스럽게 열려 있는 모습이 먹음직스럽다. ⓒ 김현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9월은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이라 할 수 있다. 붉은 꽈리 같은 홍옥이 나무 나무마다 열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장수로 향했다.

전북 장수군에선 장수사과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각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주말 농촌 체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일 년 단위로 사과나무를 분양하고 있다. 지난 1월에 분양받았던 사과나무의 수확기를 맞아 우리 가족도 장수로 향한 것이다.

올해로 두 번째 사과 수확을 하러가는 마음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작년 사과 수확은 기대만큼 알차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과나무 중에서 어떤 나무를 선택받느냐에 따라 알찬 수확을 얻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은 그저 즐거울 뿐이다.

가을 냄새를 마음껏 들어 마시며 떠나는 나들이길 자체에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장난치고 낄낄거린다. 가는 도중 남원에 사는 처제네 식구와 합류를 하자 아이들은 더욱 신나한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이 보인다. 아이들에게 들녘에 익어가는 벼들을 바라보며 무어냐고 묻자 "벼지 뭐야"하며 무슨 싱거운 질문을 하느냐는 투로 대답을 한다.

"맞아. 저건 벼란다. 그럼 저 벼들은 누가 가꿀까?"
"그야 농사짓는 농부들이지. 작은 아빠도 농사 짓잖아."
"맞아. 할머니 집에 가면 쌀 나무가 많잖아."
"야! 쌀 나무가 아니라 벼야 벼. 넌 그것도 모르냐."


아들 녀석이 '쌀 나무'라고 하자 딸아이가 금세 아들 녀석을 면박을 준다. 그러자 아들 녀석도 "나도 알아. 피, 잘 난체 하기는" 하며 입을 삐죽 내민다. 그런데 난 아들 녀석의 말을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아들 녀석은 가끔 엉뚱한 발상의 말을 하며 아내와 날 깜짝깜짝하게 하곤 한다. 거북선을 '용거북'이라고 하거나 주요소를 '기름장'이라 하며 나름대로의 적당한 이름을 붙일 때가 있다. 그래서 설령 아이의 말이 틀렸다 해서 곧바로 수정하기 보단 왜 그런지 아이의 의견을 묻곤 했다.

"누나 말이 옳지만 한울이 말도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순 없어. 일단 쌀을 만드는 건 사실이니까. 근데 아빤 벼를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작은 아빠 그리고 많은 농부들이 생각난다. 그래서 아빤 벼들을 '농부들의 땀'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아빠도 농사를 지어봤는데 농사 중에 제일 힘든 농사가 쌀농사야."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길 나무며 오다보니 '사과 시험포'란 팻말이 보인다.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붉은 사과들이 가을볕 속에 매달려 환하게 웃고 있다. 작년 아들 녀석이 그런 사과를 보고 '나무에 불이 붙은 것 같다'고 해서 웃음을 준 적이 있다. 아들에게 그 말 기억나느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시험포 사과농장에선 벌써 많은 가족들이 사과를 따고 있거나 이미 사과를 따서 포장을 하고 있었다. 사과를 따는 사람들이나 사과를 포장하는 사람들이나 홍옥처럼 밝은 표정들이다. 이따금 사과가 얼마 안 나왔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지만 잠시 뿐이다. 금방 밝은 표정으로 돌아온다.

주인을 기다리는 사과 나무

수확한 사과를 상자에 담고 있는 가족
수확한 사과를 상자에 담고 있는 가족 ⓒ 김현
사과를 따고 있는 아이들
사과를 따고 있는 아이들 ⓒ 김현
바구니와 사과를 딸 도구를 챙겨 아이들이 이름이 새겨진 우리들의 나무로 찾아갔다. 처제네 나무와 우리 나무가 나란히 이름표를 달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름표를 확인하고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들을 보며 처제가 환호성을 지른다. 어른 주먹만한 사과들이 튼실하게 열려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과나무는 알이 작고 많이 썩은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아내가 작년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그런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사과를 보자 신나하며 사과를 따기 시작한다.

"아빠, 이 사과 봐. 되게 크다. 내가 땄어."
"그래 정말 큰데. 조금만 더 크면 니 얼굴만 하겠는걸. 힘들면 아빠랑 딸까?"
"싫어. 내가 딸 거야. 재미있어. 누나도 누나가 따잖아. 그런데 왜 우리껀 썩은 게 많아?"
"글쎄다. 벌레한테 물어봐라. 왜 우리 것만 먹었나. 혹시 우리 것이 너무 달아서 먹은 거 아닐까."

수확한 사과
수확한 사과 ⓒ 김현
아들 녀석의 말이 아닐지라도 다른 나무의 사과들은 썩은 게 별로 없는데 우리 건 유달리 많이 보인다. 처제와 동서는 그저 좋아서 웃는다. 그러자 아내가 "야 너 자꾸 웃지 마. 그럼 너그 아들 안 봐준다"며 핀잔을 준다. 처제는 "알았어 언니. 근데 웃음이 자꾸 나네"하며 또 웃는다. 아내도 따라 웃는다.

그렇게 웃으며 장난치며 사과를 따자 두 바구니가 거의 찬다. 바구니를 옮기고 박스에 큰 것을 골라 담는다. 아이들 친가에 줄 것과 외가에 줄 것을 골라 담으면 남은 건 작고 흠이 있는 것들이다. 이것은 우리가 먹을 사과이다. 여기서도 좋은 것은 골라 아내는 이웃에게 나눠줄 것이다. 그래도 직접 딴 사과를 누군가에게 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포장을 하며 사과를 한 입 깨물자 단맛이 물씬 풍기며 입안에 돈다. 정말 달기가 꿀맛이다. 옆에서 포장을 하고 있던 아저씨에게 많이 땄냐고 묻자 먹을 만큼 땄다며 웃는다.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대전에서 왔다고 한다.

"올해로 3년째하고 있는데 참 재미있고 좋은 것 같아요. 모처럼 아이들이랑 함께 사과를 수확하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요. 옛날 생각도 나고요."
"옛날엔 사과를 먹으려면 추석까지 기다려야 했는데요. 그땐 껍질도 안 벗기도 그냥 입에 물고 고샅길을 돌아다니고 했는데… 사과를 보면 그때 생각이 가끔 나곤 합니다."

한달가량 남은 추석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갓 딴 사과를 깎아 아내가 입에 넣어준다. 사과의 단 향이 입안에 가득 고여 온다.

주저리 주저리 열려 있는 홍옥
주저리 주저리 열려 있는 홍옥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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