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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0일 아버지의 가묘(벌초전)
2006년 9월 10일 아버지의 가묘(벌초전) ⓒ 김환희

2006년 9월 10일 아버지의 가묘(벌초후)
2006년 9월 10일 아버지의 가묘(벌초후) ⓒ 김환희

일요일 아침 일찍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웬만해선 자식에게 전화를 잘 하시지 않는 분인데, 이렇게 전화를 걸 때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다.

"애비냐? 오늘 시간 나면 벌초나 다녀오자."
"네, 기다리고 계십시오."

몇 년 전, 아버지는 자식들 몰래 시가 관리하는 공동묘지에 3평 남짓한 땅을 사 가묘(假墓)를 만들어 두셨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그런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다시 팔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가족들이 설득했음에도 아버지는 그 땅을 팔지 않으셨다. 그리고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혼자서 벌초를 다녀오곤 하셨다.

경북에 선산이 있음에도 타향인 이곳 강원도에 묻히길 원하시는 아버지를 자식들이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년 명절이면 대구까지 성묘가느라 자식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는 그런 결심을 하셨다고 했다. 산소를 이곳에 두면 자식들이 덜 고생할 것라는 생각이다.

고희가 훨씬 넘으신 아버지는 혼자서 벌초하는 게 힘드신지, 언제부턴가 명절이 다가오면 내게 전화하신다. 아직까지 어머니는 타향에 가묘를 쓴 아버지가 못마땅한 듯 자식을 데리고 벌초를 하러 가는 것 자체를 싫어하신다.

아버지는 벌초에 필요한 톱과 낫을 미리 준비해놓고 날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미안한 듯 계속해서 내 눈치만 살피는 것 같았다. 난 아버지가 들고 있는 연장을 차에 실으며 말했다.

"아버지, 오늘 날씨 참 좋죠?"
"그래, 벌초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구나."

그제야 아버지는 마음이 놓이셨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아버지를 차에 태워 묘지로 향했다. 아버지의 가묘가 있는 묘지까지는 자동차로 20여분이 걸렸다. 휴일을 맞이해 벌초하러 온 사람들로 묘지는 북적였다.

2006년 9월 10일 아버지의 가묘 앞 전경
2006년 9월 10일 아버지의 가묘 앞 전경 ⓒ 김환희

아버지의 가묘는 양지 바른 곳에 있었다. 누가 봐도 탐낼만한 자리였다. 아버지는 당신이 앞으로 묻힐 이 자리를 구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으리라.

가묘 위엔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아버지는 가져온 낫으로 묘지에 자라난 풀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하겠다고 만류해도 아버지는 괜찮다며 고집부리셨다.

어느 정도 벌초를 끝내 놓고 앉아서 쉬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당신이 묻힐 산소를 매년 찾아와 벌초하는 아버지 마음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죽음을 초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초를 끝내고 난 뒤, 아버지는 가져간 술을 산소에 뿌렸다. 산신에게 당신의 자리를 잘 지켜달라는 의미인 듯했다. 말끔하게 정리된 가묘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마음이 편안해진 듯 웃음을 지어보이셨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버지가 여생을 다할 때까지 효도하는 길이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명절 땐 내가 먼저 벌초를 하러 가자고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계속해서 노래를 흥얼거리셨다.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2006년 9월 10일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2006년 9월 10일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 김환희

덧붙이는 글 | 강원일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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