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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쌈지길에서 '제8회 월경 페스티벌'이 열렸다.
인사동 쌈지길에서 '제8회 월경 페스티벌'이 열렸다. ⓒ 김귀현
난 여자를 몰라도 한참 몰랐다. 우리집에 여자라곤 어머니뿐이다. 또 초등학교 졸업 후 남중, 남고를 다니는 암흑의 학창시절을 보냈다. 여자에 대해 알 수조차 없었고, 알 기회도 없었다.

내가 생리대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어머니와 동네 가게에 갔는데, 내가 과자며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던 중 어머니께서 뭔가를 하나 집어 오시는 것이었다. 겉포장은 휴지 같아 보였지만 휴지는 아니었다.

"엄마, 그게 뭐야?"
"넌 몰라도 돼. 엄마만 쓰는 거야. 저기 가서 줄줄이 소시지나 골라와."


호기심 많았던 난 계속 해서 물어 봤지만, 어머니는 계속 다른 얘기를 하시며 대답을 회피 하셨다. 결국 내가 가장 좋아 하는 '줄줄이 소시지'로 나의 사고를 흐트러트린 후, 사건을 마무리 지으셨다. 그리고 그 이상한(?) 물건은 다른 상품과 달리 까만 봉지에 따로 포장돼 어머니의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생리의 고통? 그게 뭔데?

한 어린이가 생리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어린이가 생리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김귀현
인터넷이 없던 시절, 궁금한 것은 항상 K출판사의 어린이 대백과사전이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검은 비닐봉지에 싸여 어머니 가방 속으로 들어간 물건(?)에 대해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다음 날 학교에서 짝궁(당연히 여성)에게 물었다. "OOO(생리대 메이커)가 뭐야?" 15년이 지난 예전 일이라 상세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당시 나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셌던 짝궁에게 등을 몇 대 맞았던 것 같다.

궁금한 상태에서 몇 달이 지난 후 실효성 0%에 도전하는 교내 성교육 시간에 생리라는 것을 처음 듣게 되었고, OOO은 그때 사용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 강의를 듣고 내린 결론은 '생리는 한 달에 한 번 하루 정도 피나 조금 나오는 날' 정도였다. 그리고 난 대학교 때까지 생리에 대해 저 수준의 지식을 유지했다.

대학에서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배앓이를 너무 심하게 했다. 난 안타까운 마음에 배탈 났을 때 먹는 약을 챙겨주며 "화장실에 좀 가봐"라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약간의 실소를 보이며 "넌 왜 이렇게 눈치가 없니?"라고 말했다. '아니, 아픈데 걱정해주며 약 챙겨준 것이 눈치 없는 일인가.' 나도 어이가 없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소박한 다툼이 있었고, 이후 가진 화해의 자리에서 서로의 심정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며, 나는 여기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생리통'이라는 것이다. 생리를 하면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아프다는 것을 난 스무 살이 되어 처음 알았다. 유명 제약 CF에 나오던 '두통, 치통, 생리통엔 OOO'라는 카피 속 '생리통'이 '생리를 할 때의 통증'이란 걸 처음 안 것이다.

몰라도 정말 몰랐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매번 겪는 고통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나는 여자에 대해서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함은 주로 여자친구를 통해 해소하게 되었다. 나의 끊임없는 호기심에 여자친구가 약간 괴로워하기는 했지만, 나는 남자가 모르는 여자만의 불편함에 대해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

처음 만져본 생리대 '넌 왜 이렇게 두툼하니?'

"나는 생리대를 사랑해", 빨랫줄에 예쁜 생리대들이 널려 있다.
"나는 생리대를 사랑해", 빨랫줄에 예쁜 생리대들이 널려 있다. ⓒ 김귀현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 제8회 월경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래전부터 열려 왔던 행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전에는 참가하기 부끄러웠다. 그간의 행사가 젊은이의 거리인 명동, 신촌에서 개최돼 참여자의 연령이 또래 나이일 것이란 생각에 꺼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통의 거리 인사동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할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 있게 행사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것은 빨랫줄에 걸려 있는 생리대의 오색찬란한 모습이었다. '생리대에 말 걸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행사는 일반 시민들이 생리대에 예쁜 물감을 입히고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빨랫줄에 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검은 봉지에 싸여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생리대들이 자랑스럽게 자신의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참여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나도 용기 있게 참여해봤다. "나도 한 번 해 볼게요"라고 하자 하얀 생리대를 하나 주었다. 여기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이었다. 건네 준 생리대를 두 손으로 덜컥 움켜쥐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지난 26년을 생각해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생리대를 처음으로 만져본 것이었다. 정말 감격의 순간이었다.

처음 만져본 생리대는 생각보다 너무 비대했다. 넓이도 넓이지만, 왜 이렇게 두툼한지… 함께 간 여자 후배에게 물었다.

"이렇게 두꺼운 걸 어떻게 하고 있니?"
"에이… 이건 작은 편이에요. 더 큰 것도 있어요."


'더 큰 것도 있다고?' 여름에는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더운 여름에는 팬티 한 장만 입고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 땀띠가 날정도 인데, 이 두툼한 걸 다리사이에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새삼 여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생리대에 한마디 적었다.

'여성분들! 그동안 이렇게 두툼한 것과 인생을 함께 하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하나의 충격, 여성도 자위를 한다고?

나는 생리대에게 "생각보다 덩치가 크다"고 말했다.
나는 생리대에게 "생각보다 덩치가 크다"고 말했다. ⓒ 이지영
'여자도 자위를 한다구!!', 난 정말 몰랐었다.
'여자도 자위를 한다구!!', 난 정말 몰랐었다. ⓒ 김귀현
'생리대에 말 걸기' 이외에도 눈길을 끄는 다른 행사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체의 모습을 그려 놓고 성감대가 어디인지 찾아 스티커를 붙이는 행사도 있었고 '여자도 자위를 한다구요'라는 주제로 여성의 자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써서 붙이는 행사도 벌어졌다.

'남자만 하냐! 나도 한다!', '내가 하는 줄은 몰랐지? 얼마나 좋은데...' 다소 도발적인 말들이 적혀져 있는 종이를 보고 난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남자의 자위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자위의 최종 목적이 '오로지' 사정뿐인 남자들은 자위로 손쉽게 자신의 욕구를 해결한다. 내가 나온 남고에선 자위 경험이 없는 친구들을 '천연기념물'이라고 칭해 놀릴 정도였다.

하지만 여자들이 어떻게 자위를 하는가? 소싯적 즐겨 보았던 영상물에서나 여성의 자위 모습을 보았을 뿐, 일반 여성들이 자위를 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여성들이 자위를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이렇게 자위에 대해 솔직히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왠지 난 유쾌했다. 성적 욕구가 남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란 걸 느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자위를 어떻게 하는지는 아직도 정말 궁금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 다녀온 섹스포에서 느끼지 못한 감동을 이 곳에서 느꼈다. 섹스포에서는 여성을 그저 남자들의 성적 욕구 배출구 정도로만 묘사했기 때문이다.

남자들도 알아야 한다, 여자의 고통을...

'여자도 혼자 즐길 수 있다구요' 자위에 대한 일반 여성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여자도 혼자 즐길 수 있다구요' 자위에 대한 일반 여성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 김귀현
'생리대에게 말걸기'란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
'생리대에게 말걸기'란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 ⓒ 김귀현
얼마 전 남자의 수가 여자보다 많은 모 대학교에서 말 그대로 처참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생리유고결석제'를 총여학생회에서 시행 하려 하자, 다수 남학생과 소수 여학생간의 논쟁이 있었고 남학생들의 반대로 결국 무산 된 것이다.

남학생들의 의견은 정말 가관이다. '왜 여자들만 그런 혜택을 주는가'부터 '그 제도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 생리 안 하는 날에도 거짓말을 하고 여자들끼리 단체로 놀러갈지도 모른다'까지…. 오랜만에 남자들이 똘똘 뭉쳐 하나 되는 시간이었다.

결국, '그럼 여자도 군대를 가든지'라는 절대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말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2년여의 군복무와 40~50년, 동안 계속되는 생리를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세상의 남자들에게 고하고 싶다. 생리대를 한 번 만져보라고. 그리고 가게에서 생리대를 한 번 구입해 보라고. 이 두껍고 무식한 것을 매달 착용하는 우리의 여자친구, 부인, 어머니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20개 들이가 3~4천원이나 하는, 값비싼 생리대 구입의 책임을 왜 여자에게만 전가하는가 생각해 보자.

차이를 인정하지 못해 생기는 것이 차별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여성에 대한 배려가 너무 커 오히려 '역차별이 아니냐'라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아직 아니다. 아직도 여자들은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상식을 뛰어넘는 차별을 받고 있다.

'여성우월주위'라도 좋다. 아직 우리 사회는 여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만큼 여자는 생리적 고통조차 마음껏 얘기 못하고 숨죽여 살고 있다. 남자들이 여성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 '남녀차별'과 '역차별'이란 말도 자연스레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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