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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걸작선>
<뱀파이어 걸작선> ⓒ 책세상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드라큘라'라는 말보다는 '뱀파이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는 듯하다. 말에서 오는 느낌으로만 보면 '뱀파이어'보다는 '드라큘라'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한동안 익숙해 있는 단어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1725년과 1726년 농부 두 사람이 각각 죽었다가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1732년의 기록에서 뱀파이어를 뜻하는 독일어 'vanpir'가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같은 해에 프랑스어 'vampyre'와 영어 'vampire'도 처음 사용되었다.

뱀파이어의 원조격인 소설은 존 폴리도리의 1819년 작 <뱀파이어>다. 사람들의 '섬뜩한 호기심'(<사라의 묘>의 일절을 빌려-335쪽)을 자극하는 수상한 사내(정체는 뱀파이어)에 초점을 맞춘 도입부의 서술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인물 구도는 한 남자와 뱀파이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뱀파이어인 루스벤 경과 그를 가까이한 대가를 가혹하게 치르는 젊은 사내 오브리. 이 둘의 주변에서 뱀파이어의 한낱 먹잇감이 되고 마는 세 여자가 등장한다.

세 여인의 공통점은 소위 순수하다는 것. 첫 번째 여인은 오브리가 루스벤 경으로부터 떼어놓지만 잠시에 불과한 일이었고 이 일로 인하여 오브리와 루스벤 경은 결별하지만 이어 오브리의 마음에 자리 잡았던 이안테도, 하나뿐인 그의 누이도 모두 뱀파이어인 루스벤에게 빼앗긴다.

뱀파이어의 술수에 넘어가 섣부른 약속을 했고 뱀파이어의 계략을 안 후에는 공포와 위협 앞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뱀파이어의 고전격인 소설은 브램 스토커가 1897년 내놓은 <드라큘라>이다. 이 책에서는 그 가운데 한 작품인 <드라큘라의 손님>을 싣고 있다.

모험심이 유난히 강한 영국인 '나'는 호텔 지배인(델브루크 씨)과 마차꾼의 경고를 무시하고 불길한 곳으로 기어이 찾아들어간다. 거기서 폭풍과 눈보라를 만나고 한 묘막 안에 이르렀다가 무언가에 붙잡혀 끌려가서는 의식을 잃는다.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된 '나'는 호텔에 돌아와 그간의 내용을 확인하는 중에 놀랍게도 호텔 지배인이 받은 전보('나'를 보호할 것을 요청하는)는 드라큘라가 보낸 것이었다.

프레더릭 조지 로링의 <사라의 묘>(1900년 작)는 일기체 소설이다. 화자는 아버지의 일기를 옮겨놓는 형식으로 소설을 써나간다.

아버지는 죽마고우인 목사 피터 그랜트의 부탁을 받고 교회 성단소의 확장 및 복원 공사에 착수한다. 문제는 묘지를 옮겨야 하는 것인데 비문의 경고(망자와 산자의 평온을 위하여 이 무덤을 건드리지 말 것이며)가 거슬리지만 지반이 불안하여 교회의 안전상 어쩔 수 없이 이장을 준비하면서부터 괴이한 일이 발생한다.

마을의 가축(양)이 없어지고 관 속의 시체는 점점 더 생기를 더해간다. 뱀파이어가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아버지는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에 따라 확신을 가지지만 목사는 반신반의한다. 그러다가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고는 목사도 이를 받아들이게 되고 뱀파이어를 처치할 수 있게 된다. 결말에 나오는 화자의 목소리는 묘한 여운을 준다.

한 가지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중략) 어느 주민의 딸아이가 집에서 나와 돌아다닌 모양이다. (중략) 아이의 목에 있던 작은 표식 둘은 곧 사라졌다. (중략) 아무튼 나는 이제 뱀파이어는 없으며, 그 아이든 다른 누구든 위험에 빠질 일도 없으리란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뱀파이어의 포옹 속에서 죽은 자만이 죽음의 순간에 뱀파이어로 바뀌니까 말이다. (350쪽)

뱀파이어는 어찌하여 죽지 않고 계속하여 소설이든 영화이든 재탄생하고 있는 것일까? 옮긴이가 적고 있는 말은 적절한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감과 공포를 주는 동시에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욕망을 보여주는 뱀파이어의 이런 양면성이야말로 뱀파이어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르는 이유일 것이다."

세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적어본다. 인간의 삶 속에는 크던 작던 적어도 몇 번의 공포 상황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다시금 몰려드는 맹렬한 폭풍과 눈보라 속에서 혈혈단신 추위에 떨며, 내가 바로 그곳에 서 있지 않은가! 그간 배운 철학과 종교도, 공포의 전율 속에서 쓰러지지 않을 용기도 모두 사라졌다. - <드라큘라의 손님> 중에서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브램 스토커 외 / 옮긴이: 정진영 / 펴낸날: 2006년 7월 20일 / 펴낸곳: 책세상 / 책값: 1만 2000원


뱀파이어 걸작선

브램 스토커 외 지음, 정진영 편역, 책세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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