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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의 노래를 부르는 곰 친구들과 함께
환영의 노래를 부르는 곰 친구들과 함께 ⓒ 나관호
어머니가 서재에 들어오셨다.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갑자기 말씀하신다.

"우리 아들, 먹을 것도 없고. 출출할 텐데..."

나를 순간적으로 일곱 살 아들처럼 대하신다. 나는 웃었다. 옛 생각도 스쳐가고 그냥 그 상황을 풋풋한 생각으로 넘겨 버렸다. 어머니에게는 조금 먼 길을 가야 하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차 조심, 물 조심, 사람 조심하라는 교훈을 몇 번씩 말하곤 했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넣어 주었다. 어린 시절 여러 상황을 기억하시는 것 같다.

나는 어머니를 한번 부르고 어머니에게 상황 설명을 해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가 우신다.

"엉엉엉. 내가 아들 먹을 것 줘야 하는데 없어. 미안해."
"어머니. 울지 마세요. 괜찮아요."

어머니는 학창시절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간식을 주셨던 생각을 하신 모양이다. 어머니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공부하던 내 옆에서 직접 깎아 주시곤 했었다.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신 것은 아마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지 짐작해 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우리 집 생활형편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남매를 키우며 살아가야 하는지, 생활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험악한 사회 속에서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막막해 하셨다. 어머니는 여린 마음을 가지셨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혼자서 마음속에서 풀고, 괜한 일에 염려가 많으신 분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간식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어머니는 종종 눈물을 보이시곤 했었다. 분명 그때 기억을 하고 계셨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애비 없이 크는데 간식도 못주고. 미안해. 아들. 엉엉엉."

나는 어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그리고 얼굴을 만져드리며 눈물을 닦아드렸다. 어찌나 서럽게 우시는지. 잠시 집 안이 숙연해졌다. 그리고 또 말씀하신다.

"엉엉엉. 불쌍한 것. 나 때문에 병들었으니 이를 어째."
"어머니. 울지 마세요."

나는 어머니의 서러운 눈물의 의미를 그제야 명확히 알았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죽을 병에 걸려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었다. 그 시점은 아버지가 가신 지 1년 반 지난 시간이었다. 당시 어머니는 너무 놀라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자식 넷을 잃었고 이제 커가는 17살짜리 아들이 병에 걸려 죽게 됐으니 어머니 마음에는 우주만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폐결핵에 걸려 죽음 문 앞에까지 갔었다. 잘 못 먹고, 입시 공부한다고 무리를 했는지 병에 걸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는 불안해 하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아무튼 고등학교 시절은 내 일생에 있어 암흑의 길이었다. 지나고 난 지금에 보니 그 기간은 오히려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침대로 모셨다. 잠시 쉬시면 좋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물은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를 눕게 해 드리고 마치 어린아이 잠들게 하듯이 가슴을 두드리며 잠을 청하시도록 해드렸다. 금세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이 드신다.

나는 서재에서 잠시 눈을 감고 옛날을 생각해 보았다. 마치 영화 필름이 지나가듯이 한 컷 한 컷 지나간다. 그런데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 방에서 나오셨다. 어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없으시다.

"어머니. 좋은 날입니다."
"좋긴 뭐가 좋아!"
"안 좋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들 먹을 것 챙겨줘야지."
"여기 많이 있어요. 그리고 아까 주셔서 먹었어요."

나는 태연스런 연기(?)를 했다. 그러자 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어머니의 마음이 풀어지게 하신 후 퍼즐을 맞추도록 해드렸다. 어머니는 금방 웃으신다. 그래서 이제 어머니 간식으로 우유와 초코파이를 드렸다. 나보고 먹으라며 반을 자르신다. 어머니는 나눠먹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한 입만 먹었다.

어머니는 점점 더 어려지신다. 그렇지만 눈물을 흐리는 모습에서 진한 애정을 느낀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나만의 명언 또는 어록을 만들었다.

"어머니 눈물은 철학이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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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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