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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집 앞마당에서 바라본 동네 모습입니다
저의 집 앞마당에서 바라본 동네 모습입니다 ⓒ 이충렬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동네입니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막상 살아보면 참으로 심심한 동네입니다. 이웃도 없고, 누가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밤이 되면 여우 울음소리, 동네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사방이 고요합니다.

아직도 사슴이 뛰어다니고, 멧돼지 가족이 줄지어 먹이를 찾아다니다 동네 개들과 싸움을 하고, 산토끼는 사방에서 뛰어다니니, 자연농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욱이 집안으로 전갈도 들어오고 심지어는 뱀이 들어오려고 문 밖에서 기웃거리기도 하고, 비가 오고 나면 무지막지하게 큰 두꺼비가 나타나 개를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년에 몇 번은 저나 가족들이 전갈에 물리는데, 물린 부위가 하루 종일 전기 통하듯 쩌릿쩌릿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골에 살다 보니 그 정도 갖고 병원엘 가지는 않고, 또 자꾸 물리다 보니 면역이 좀 생겼는지 아픈 걸 느끼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산에 있는 집은 마을 입구에 조성되어 있는 주택단지 집에 비해 집값이 30% 정도 쌉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산 위에 있는 집이 비싸다는 말은 대도시의 이야기이고, 이런 시골에는 해당이 안 됩니다.

집에서 마을로 나가는 길입니다
집에서 마을로 나가는 길입니다 ⓒ 이충렬
제가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은 약 15년 정도 됩니다. 30년 전 경제적 망명을 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조국을 떠나 LA 근교에서 살다, 15년 전의 캘리포니아 불경기를 이기지 못하고 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벌써 두 아이가 대학을 졸업해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세월이 빠른 건지 아니면 이곳에 오래 산 건지 판단이 안 될 정도로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곳에서는 저녁에 별로 할 일이 없으니, 저희 부부는 한국 드라마 비디오 빌려다(제가 LA 갈 때 빌려 옵니다), 하루 저녁에 한 편 내지 한 편 반을 보니, 한국에서 나오는 웬만한 드라마는 다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동네에 동포들이 약 10가구정도 사는데 대부분 그렇게들 살고 있으니, 참으로 희한한 동포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에 가로등이 없는 산길을 찾는 게 쉽지 않아 자주 왕래를 할 수 없는 것도 비디오를 열심히 보는 이유 중의 하나인데, 그래도 몇 년 전부터는 위성접시를 통해 한국방송도 봅니다. 그러나 위성으로 방송되는 드라마는 거의 3~4개월 전 드라마이기 때문에, 드라마가 아닌 프로그램을 보는 정도입니다.

동네 고속도로 입구입니다
동네 고속도로 입구입니다 ⓒ 이충렬
저는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15분쯤 떨어진 노갈레스라는 도시에서 잡화가게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노갈레스라는 도시가 멕시코와 바로 붙어 있는 국경도시라 커다란 불경기 없이 장사가 된다고 하여 LA에서 이곳으로 온 겁니다. 이사 오기 전 사전답사를 와서 미리 자리 잡고 있던 동포들을 만나니, '돈을 쓸 데가 없기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며칠 살펴보니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경도시는 크리스마스와 1월 1~3일 정도 문을 닫을 뿐 1년 361일 문을 엽니다. 대부분의 미국가게들은 추수감사절에 문을 닫지만, 멕시코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지내지 않기 때문에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노는 날도 없이 죽어라 하고 일만 해야 하기 때문에, 국경도시에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오지 않습니다. 백화점은 고사하고, 극장도 불과 3달 전에 생겼을 정도이니, 혈기 왕성한 젊은 부부들은 사전답사를 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돌아가는 곳이 국경도시입니다.

시골이라 고속도로도 한산하고, 미국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거리표시가 미터법으로 되어있습니다.
시골이라 고속도로도 한산하고, 미국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거리표시가 미터법으로 되어있습니다. ⓒ 이충렬
노갈레스는 인구가 2만 정도밖에 안 되는 도시이기 때문에 고속도로도 한가합니다. 그런데 투싼이라는 곳에서 노갈레스까지의 고속도로에는 미국 고속도로에서 사용하는 마일 표시가 아닌 미터법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미국 운전자보다 멕시코 운전자들이 더 많기 때문에, 방문객을 위한 배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멕시코 차량은 운전자가 미국비자가 있을 경우 반경 200마일까지 특별한 허가서 없이 통행할 수 있고, 상호호혜원칙에 따라 미국 차량도 멕시코에서 같은 혜택을 받습니다. 물론 보험은 들어야 합니다.

노갈레스가 일찍부터 국경도시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야채와 과일이 통과하는 국경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국경도시들은 지형상 멕시코의 내륙으로 연결될 수 없기 때문에, 멕시코 내륙 지방에서 미국으로 가장 가깝게 올라 올 수 있는 국경도시가 바로 노갈레스이고 그래서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는 화물운송 기차도 노갈레스를 통과합니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야채와 과일 중 대표적인 품목은 수박과 토마토, 고추, 오이, 호박 등인데, 미국에서 유통되는 수박은 거의 멕시코산이고, 토마토 역시 플로리다 토마토 외에는 거의 멕시코산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과 그 아래 동네는 멕시코이고, 갓길에 밀입국 희생자를 추모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과 그 아래 동네는 멕시코이고, 갓길에 밀입국 희생자를 추모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 이충렬
노갈레스가 가까워 오면 고속도로 갓길 곳곳에 밀입국을 하다 고속도로에서 숨진 사람들을 위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를 뛰어 건너가다 달려오는 자동차에 숨지는 경우도 있고, 안내인의 차에 타고 가던 중, 국경수비대의 추격을 받고 과속으로 도주하다 차가 전복되어 숨지거나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차가 전복되는 이유는 조그만 승용차에도 보통 10명 가까이 타고 있기 때문에, 과속으로 도주하면 타이어가 견디지 못하고 파열됩니다. 그래도 도주하는 이유는, 밀입국자는 추방일 뿐이지만, 안내인은 중형을 선고 받기 때문입니다.

분홍색 담장과 그 옆의 쇠철판 담장이 국경선입니다.
분홍색 담장과 그 옆의 쇠철판 담장이 국경선입니다. ⓒ 이충렬
노갈레스에는 국경선을 따라 철책이 세워져 있습니다. 7~8년 전까지는 나무판이었는데, 너무 파손이 심해 철책으로 바꿨지만, 그래도 용접기를 동원해 계속 구멍을 뚫고 넘어와 철책 근처에 감시 카메라 탑을 세웠고, 조명등을 곳곳에 설치했습니다.

앞의 분홍 지붕 건물이 미 세관 건물이고, 그 위쪽으로 철책이 보입니다
앞의 분홍 지붕 건물이 미 세관 건물이고, 그 위쪽으로 철책이 보입니다 ⓒ 이충렬
고속도로가 끝나면 노갈레스 시내도로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을 보면 왼쪽에 횡단보도 표시가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차들이 계속 과속으로 오기 때문에 횡단보도를 거의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도로는, 표시판 아래쪽 하수구 덮개로 밀입국자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을 위해 아예 횡단보도를 만들고 표시판을 세워 운전자들에게 조심시킵니다. 철책이 튼튼해지고, 감시가 심해지자 멕시코 쪽의 하수구를 통해 밀입국하는 숫자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국경수비대에서는 하수구 전문팀을 따로 구성해 곳곳의 하수구를 감시하고 하수구 덮개에 용접을 하지만, 그래도 길을 가다 보면 하수구 뚜껑이 열리면서 밀입국자들이 고개를 내밀어 사방을 살펴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철책 건너편으로 멕시코 산동네의 모습이 가까이 보입니다
철책 건너편으로 멕시코 산동네의 모습이 가까이 보입니다 ⓒ 이충렬
사진에 보이는 멕시코 산동네의 모습이 멕시코 전체의 주거 환경을 대표할 수 없지만, 아직도 멕시코 곳곳에는 저런 모습을 한 동네가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멕시코에는 빈부의 차가 심하고, 그래서 많은 멕시코인들이 오늘도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미 이민국 건물로 그 아래에서 사람과 차량의 입국심사를 합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미 이민국 건물로 그 아래에서 사람과 차량의 입국심사를 합니다. ⓒ 이충렬
노갈레스 시내로 들어오면 곧바로 상가와 미 이민국과 세관 건물이 보이고 상가들이 보입니다. 관광객들의 경우 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멕시코로 가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면세점에 들러 담배와 술을 사기도 하고, 멕시코인들도 건너와 면세로 사가기도 합니다. 물론 물품은 국경입구에서 전달 받습니다.

이 사진에서 아래 사진의 멕시코 입구까지는 3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이렇게 멕시코로 가는 부분까지 쓰고, 다음에는 멕시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멕시코로 가는 출구. 갈 수만 있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멕시코로 가는 출구. 갈 수만 있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 이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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