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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단 세컨드 네이처의 창단공연 작 <훔치는 타인들> 첫장면. 마치 철창에 갇힌 듯한 두 남녀의 아련한 모습. 그 소외의 정서는 이 작품의  주제를 이끈다.
현대무용단 세컨드 네이처의 창단공연 작 <훔치는 타인들> 첫장면. 마치 철창에 갇힌 듯한 두 남녀의 아련한 모습. 그 소외의 정서는 이 작품의 주제를 이끈다. ⓒ 김기

led전광판을 주 오브제로 사용한 <훔치는 타인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 관람평의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역시 안무가의 몫.
led전광판을 주 오브제로 사용한 <훔치는 타인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 관람평의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역시 안무가의 몫. ⓒ 김기

모든 예술의 원초적 동기는 기원이며 기원을 갖게 하는 요소는 결핍 혹은 소외이다. 춤은 인간의 보편적 의사소통 도구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점에서 원시예술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만큼 춤 예술에는 기원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각국의 역사 환경에 따라 춤도 다양하게 발전했으며 현대무용의 경우 그 어떤 예술보다 심오한 경지를 향해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말이 없는 기원이 춤이다.

오랫동안 프랑스 유학을 통해 유럽의 춤세계를 배우고 한국에 돌아온 김성한이 만든 세컨드 네이처(SECOND NATURE)댄스 컴퍼니 창단 공연은 기원으로써의 춤에 대해 역설한 무대였다. 4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세컨드 네이처의 <훔치는 타인들>은 국내 무용 팬들에게 아주 낯선 무대를 꾸몄다.

대형 오브제(LED전광판), 2차원과 3차원의 조명을 통한 기하학적 무대 구성, 천정에 매달려 있어야 할 조명기기들의 무대로의 노출 등 사람 역할의 많은 부분을 오브제들이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아주 극명하게 갈렸다.

“춤이 아니라 오브제 쇼다”하는 입장이 있었는가 하면, “인간 소외를 표현코자 하는 안무가의 의도를 오브제들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는 것.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소위 춤이라고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동작들을 별로 찾아 볼 수 없었던 <훔치는 타인들>은 적어도 현재 한국 무용작품들의 경향에는 좀 비켜선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할 듯 하다.

작품시간이 65분 정도인 이 작품은 국립무용단의 김미애, 남성무용수들로만 구성된 MF 댄스컴퍼니의 이영일이 주제를 이끌었고, 세컨드 네이처 단원인 설의현, 김미영, 김미경, 박지현, 강태석 그리고 객원무용수 정훈목, 오영훈 등이 출연했다.

<훔치는 타인들>, 위험한 도발인가 아니면 가슴저린 공감인가

김성한은 이 작품에서 뚜렷한 빛의 대비를 주로 사용했다. 2차원, 3차원 조명이 결합하는 기하학적 구성으로 그 안에 동작하는 무용수들조차 때로는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다.
김성한은 이 작품에서 뚜렷한 빛의 대비를 주로 사용했다. 2차원, 3차원 조명이 결합하는 기하학적 구성으로 그 안에 동작하는 무용수들조차 때로는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다. ⓒ 김기

남자 무용수들의 강렬한 모습들이 인상적인 세컨드 네이처
남자 무용수들의 강렬한 모습들이 인상적인 세컨드 네이처 ⓒ 김기

한 사내가 무대 한쪽에 쓰러져 있다가 일어나 무대 안쪽을 멍한 시선으로 주시한다. 그때 무대에는 사진들이 희로애락 순서로 변화하다가 문득 숲 속을 걷는 듯 동영상이 펼쳐진다. 그 동영상이 끝날 즈음 무대 중앙에는 수직으로 놓여진 대형 LED전광판을 배경으로 벤치에 남녀가 앉아있다.

이 남녀의 갈등, 소외에 대한 기억의 회상 혹은 마음 속 번뇌가 이후로 흐르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후 그려지는 무대 위 그림들이 대단히 남성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뒷골목에서 시비를 즐기는 젊은 사내들의 모습 같기도 하고, 시지프스의 고뇌로 보이기도 하는 사내들의 방황이 줄곧 이어진다. 당연히 그 동작과 선은 크고 거칠다.

호불호를 떠나 남성미 넘치는 무용무대는 대단히 드물고, 그 자체만으로도 참신하고 역동적이다. 모두 9명의 무용수들은 쉴 새 없이 무대 안팍을 들락거려야 했고, 특히 남자 무용수들의 숨은 뭔가를 토할 듯 격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무대를 횡으로 이동하는 전광판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전광판 앞에 선 두 여성무용수가 춤을 추며 전광판을 따라가고, 그 모습은 전광판에 곧바로 영사된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춤이건 춤 아닌 춤이건 그런 대로 작품 속의 연결을 찾을 수 있는데, 유독 이 부분만은 동떨어진 느낌을 주었다.

그 전광판은 잠시 후, 쓰러져 있는 여성과 한 사내를 앞에 둔다. 아마도 아내 혹은 연인으로 보이는 여성에 대해 잔혹한 모습을 보이던 사내는 전광판을 치는 듯 한 동작을 보이고, 전광판에는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는 화면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조명을 통해 신체의 일부분만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지고, 처음의 벤치 장면으로 돌아간다.

결과적으로 세컨드 네이처의 창단 공연 작품인 <훔치는 타인들>은 ‘타인’에게 집중될 듯하다. 타인에게서 느껴지는 낯섦, 경계함, 두려움 그리고 분노. 불혹의 나이에 곧 접어들 김성한의 안무에는 특히 분노가 강하게 느껴진다. 조명과 전광판을 통해서 다양한 색깔을 무대에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노의 한 빛깔만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험한 도발일 수 있겠으나 그 분노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에게 김성한의 작품은 가슴 저린 공감을 줄 것이다.

무용계의 경향과 다른 김성한의 춤... "무용사회에서 일정한 역할 기대"

무대를 힘차게 달리는 다섯명의 남자무용수. 그 더운 땀내음이 객석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무대를 힘차게 달리는 다섯명의 남자무용수. 그 더운 땀내음이 객석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 김기

김성한은 1994년 프랑스로 떠나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오랫동안 피나 바우쉬의 무용수였던 장-프랑스와 뒤루르(Jean-Francois DUROURE)무용단, 아리엘 무용단, 부르노 자깡 무용단에서 활동하면서 남성의 폭발적인 춤을 선보였다.

2002년 바뇰레 국제안무콩쿨, 파리 플랫폼에서 본인의 안무작을 발표하면서 안무가로서의 활동을 본격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춤작가 12인전’, ‘평론가가 뽑은 제6회 젊은 무용가’, ‘우리시대의 무용가 2002’, ‘댄스포럼-서울 2004’ 등에 초대되는 등 안무가로서의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안무가 김성한은 이렇게 말한다.

“창작작업은 세상과 살아가는, 대화하는 방식이며, 살아가면서 경험한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 가는 열쇠입니다. 획일적인 몸 기술과 익숙했던 관념들을 거부하며, 그 안에 숨겨진 아름다운, 추함, 순수함, 통속 등을 서로 구별되는 형태와 살아있는 호흡을 가진 존재로써 무대 위에 구체화하려 합니다”

무용평론가 이종호 씨가 “남자무용수는 계속 늘어나도 남성성은 여전히 미흡하기만 한 우리 무용사회에서 그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김성한을 평한 말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창단 작품 <훔치는 타인들>은 전체 무용계의 경향과 다른 김성한의 춤 색깔을 모색하는 한 과정일 것이다. 방황과 모색을 끝내고 그 색깔이 무엇이건 분명해질 때, 우리는 섞이지 않고 자기 색체 뚜렷한 안무가 한 명을 더 얻게 될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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