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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줌마인연대에서 만든 선전물
ⓒ 조영민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줌마민족'의 완전한 자치와 평화는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지난 27일 오후 대학로에서 '줌마(Jumma)'인에 대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탄압을 알리는 사진 전시회에서 '재한줌마인연대(www.jpnk.org, 이하 줌마인연대)'의 로렐씨가 한 말이다. 줌마인들의 현실이 그만큼 암울하다는 소리다.

줌마는 방글라데시 동남쪽에 위치한 치타공 산악 지대에 살고 있지만 방글라데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뱅갈리족과는 인종, 언어, 문화가 다른 민족이다.

줌마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절, 인도에 속했으나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면서 파키스탄의 영토에 속하게 됐고, 또 다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로 나뉘면서 방글라데시에 들어가게 됐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뱅갈리족들은 줌마인들의 도움으로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했으면서 줌마족의 자치를 보장하기는 커녕 군대를 동원해 줌마인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고 뱅갈리 이주민들의 정착촌을 건설했다.

뱅갈리족에게 땅 빼앗긴 채 떠도는 줌마인들

이러한 과정에 줌마인들은 경작지와 집을 빼앗겼고, 무고하게 살해당하고 여성들은 집단 강간을 당해왔다. 이러한 탄압에도 줌마인들은 계속 저항하여 1997년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평화협정을 끌어냈다.

하지만 50만여명의 뱅갈리족 정착민들은 여전히 줌마인들의 땅과 집을 반환하지 않았다. 탄압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줌마인들은 세계 여러 나라로 망명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줌마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알리고, 줌마족의 완전한 자치를 위해 '줌마 피플 네트워크 코리아(Jumma peoples network-Korea, JPNK)'를 결성, 지난 2002년부터 사진 전시회, 집회, 캠페인과 문화 행사를 해왔다. 한국 외에도 일본, 인도, 프랑스 등 여러 나라들에서도 줌마 사람들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너무나 미약하다.

게릴라 투쟁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렀고, 박해를 피해 1994년 한국에 들어온 로렐씨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2004년에야 겨우 난민지위를 받을 수 있었고, 다수는 여전히 불안전한 신분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탓에 줌마인들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활동이 간단치만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줌마인연대는 매월 정기적으로 사진전시회, 공연, 기자회견 등 다양한 형태의 행사를 통해 줌마민족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한다.

로렐씨는 "줌마의 현실이 암울하지만 평생을 바쳐 실천할 것이고, 내가 죽으면 내 아이가 이어서 할 것이고, 그 아이가 죽으면 아이의 자식이 이어서 줌마민족의 완전한 자치와 평화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줌마인들은 암울한 현실을 한탄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연대를 호소하며 손을 내밀고 있다. 우리가 그 손을 잡아줘야 한다. 줌마, 레바논, 팔레스타인, 북녘 동포 등 고통받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내민 손을 잡아줘야 한다.

경계 넘어 핍박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레바논은 원래 군대가 없는 나라였다고 한다. 수천년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를 비롯한 17개의 종파가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온 관용과 공존의 나라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침략을 하면서 그 모든 평화가 깨져버렸다. 줌마민족 또한 이슬람, 힌두, 기독교를 비롯한 13개 종족이 어울려 평화롭게 공존해온 민족이다. 그런데 영국의 식민지배 이후 오늘날 방글라데시의 탄압에 이르기까지 침략자들에 의해 평화와 공존이 깨져버렸다.

지금 우리 경계를 넘어 평화의 길로 가자. 레바논사람들, 팔레스타인사람들, 줌마인들의 고통과 연대하는 것 자체가 평화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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