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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는 '대추리 36.5℃'라는 제목으로 계간 <황해문화> 가을호에 실린 글과 사진입니다. 서점에 배포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따끈한' 원고를 <오마이뉴스>에 전재하는 것은, 대추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의한 폭력의 문제를 더 널리 알리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황해문화> 편집진의 이해와 의지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130매 가량의 긴 원고인 까닭에 4편의 이어진 기사로 나누어 실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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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①대추리에 관한 9개의 진술

7. 거짓말 행진

힘없는 나라의 비애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칠 수 있다. 미군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각종 범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대단한 충격이 아닐 수도 있다. 분단이 야기한 부조리와 긴장 역시 우리는 잘 견뎌왔다. 문제는, 입만 열면 끝없이 계속되는 거짓말 릴레이다. 이것이 우리의 내일을 절망으로 어둡게 한다.

▲ 대추리 김지태 이장은 6월 5일 구속됐다. 어머니 황필순 할머니는 "대학까지 졸업하고, 고향마을 지키며 살아보겠다고 그렇게 발버둥을 쳤던 아이를, 대체 무슨 죄를 졌다고 구속시키느냐"며 절규했다. 경찰이 에워싸고 있던 김지태 이장의 우사에 누가 불을 질렀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경찰은 불을 끄기는커녕 물을 들고 달려가는 주민들을 가로막았다.
ⓒ 노순택

평택미군기지 이전이 "전적으로 우리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국방부의 주장은 그들의 착각이거나 거짓말임이 각종 문서와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국방장관 자신의 입으로도 "GPR의 일환임"을 확인했으므로, '원인 제공자 부담의 원칙' 역시 폐기되어야 할 거짓말이다.

16년 전, 그들은 협상대표 자격도 없는 상태에서 일개 부처의 기관장 자격으로 조약을 체결했다. 국회동의 절차를 받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14년의 세월이 흐른 2004년, 정부는 1990년의 협정을 승계할 뿐만 아니라 더 후퇴한 협정안을 만들어 놓고 국회에서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비전비용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윤광웅 장관이 걸핏하면 "정상적으로 국회의 비준을 받았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러므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들은 상임위에서 약속한 청문회도 열지 않았다.

국방부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150여차례 만남을 가졌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길에서 만나 잠깐 얘기를 나눈 것도 만남이고, 삿대질하며 욕하고 싸운 것도 만남이냐"면서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사업 초기 "대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고 싶다"며 주민들이 서울을 찾았을 때 차갑게 대화를 거절했던 건 바로 국방부였다.

2006년 5월 4일 강제집행이 이루어질 때까지 국방부와 주민이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은 5월 2, 3일 단 두 차례뿐이었다. 국방부는 애당초 주민과 협의할 의사가 없었고, 대화가 결렬된 다음날 강제집행을 강행함으로써 이 만남이 명분쌓기용이었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5167만평의 부지를 돌려받고, 360만평을 제공함으로써 4800만평을 돌려받는다"는 말은 사실일까. 반환받는 땅이라고 지목한 부지의 상당수는 주한미군의 전용공여지가 아닌 임시공여지임이 밝혀졌다. 파주시가 돌려받을 것으로 알려진 2300여만평 가운데 2200여만평이 이런 임시공여지이며, 이는 1년 단위로 사용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것임으로 돌려받는 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국방부는 사용하지 않거나, 공여목적 외의 사용으로 인해 응당 돌려받아야 할 땅 조차도 '기지이전으로 돌려받는 땅' 목록에 올려놓았다. 더욱 황당한 일은 이러한 반환으로 인해 새로운 훈련장 공여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는 미군 전용 훈련장을 대신하여 37개소의 한국군 훈련장을 한미공동훈련장으로 공여하기로 했다. 매향리 폭격장을 돌려받는 대신에, 1800만평에 달하는 필승사격장을 대체 폭격장으로 공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이 과연 360만평 주고 4800만평 돌려받는, 우리가 이익을 보는 셈법이란 말인가.

국방부의 거짓말은 계속된다. 그들은 5월 4일 군대를 투입하면서 "군인들은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군인과 민간인의 충돌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5월 5일의 충돌에서 볼 수 있듯이 군인들은 주민을 포함한 민간인에게 곤봉을 마구 휘둘렀고, 적군을 대하듯 자빠뜨린 채 포승줄로 묶었다.

국방부가 동원한 용역직원들은 깡패나 다름없었고, 취재기자와 주민들을 향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용역직원들 중에는 아무런 전후 사정도 모른 채 "아르바이트 할 생각으로" 동원된 17살 소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이 과연 '역사'라는 이름을 당당히 내건 '국책사업'의 모습이란 말인가.

▲ '불순세력의 수괴'로 지목된 문정현 신부는 우리시대의 양심이자, 원로다. 그는 김지태 이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21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다. 칠순의 노구였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우리사회의 주소다.
ⓒ 노순택

"주민들이 평균 6억원 이상, 많게는 20억원 이상의 보상금을 받았는데도 억지를 쓰고 있다"는 주장 또한 사실과 다르다. 도두리의 상당수 농민이 가난한 소작농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책정된 보상금은 몇천만원에 불과하다. 물론 넓은 땅을 소유한 농민도 있어서 이들의 보상금은 수억원에 달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대해 항의할 권리조차 없단 말인가.

억만금을 준다한들, 자식을 잃으면서까지 일궈온 소중한 땅을 빼앗길 수 없다는 외침이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게다가 인근의 땅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서 보상금으로 같은 규모의 땅을 구입하기도 힘들어졌다. "억만금의 보상금을 주었는데도, 주민들이 돈독이 올라 억지주장을 편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파렴치한 거짓말이다.

"대체부지를 마련해 줬다"는 것은 또 어떤가. 주민들은 콧방귀를 뀐다. 국방부가 대체부지를 마련했다는 서산의 땅은 간척된 지 오래지 않아 아직도 소금기를 머금고 있는 땅이라고 농부들은 말한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농사 전문가'들을 이렇게 우롱하고, 속이려 해도 좋은가.

"반미단체를 위시한 불순세력이 주민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주장도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지난 2004년 9월 1일 처음으로 촛불을 든 이래, 700일이 넘도록 자발적으로 저항운동을 벌여왔다. 강제집행이 임박했을 때 "끝까지 싸우자"고 결정한 것도 비밀투표를 통한 주민총회였다.

불의한 공권력에 맞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저항이 있었기에, '양심의 부름에 따라' 시민과 단체들이 동참했던 것이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수많은 노동자와 학생, 예술가, 학자가 이 저항운동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방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빨갱이 사냥이 지겹지도 않은가.

'불순세력의 수괴'라고 지목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지난 30여 년간 이 땅의 소외받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거리에 섰던 우리사회의 원로이자, 양심이다. 그가 무릎이 부서지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밝히려 했던 '인혁당' 관계자들의 죽음은, 32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불의한 정권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었음이 낱낱이 밝혀졌다. '5월 4일 대추리' 진실마저 그리 오랫동안 덮어둘 수 없을 것이다.

8. 우리는 과연 주권국가에서 살고 있는가

외국의 군대를 위해, 자국의 농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나라.
사람을 먹여 살려온 너른 들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려는 나라.
자신들의 '밝혀진' 잘못마저 인정하지 않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대는 관료들로 가득 찬 나라.
'국방부'와 '외교부'의 다른 이름을 '미국연락소'로 불러도 무방한 나라.
어린 소녀들의 억울한 죽음을 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무죄방면을 해도 수수방관하는 나라.
미국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거저 주는 나라.
이것이 바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우리가 과연 주권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거리에서 농부들은 몸을 움츠리며 외쳤다. 제발 우리 말 좀 들어보라고,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부탁하건데 한 번만이라도 우리 마을에 와 보라고. 저 주름진 얼굴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의 미래 또한 사라질 것이다.
ⓒ 노순택

9. 자유로워지라는 명령

평택의 문제는 너무 늦어버린 것 아니냐고, 이미 진 것이 아니냐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도대체 답이 안 보인다고도 말한다. 저항이, 언제부터 이길 승산과 답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던가. 절차적 민주주의 정도는 성취했다는 사회에서, 우리는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짓이겨진 현장을 목도했다. 이것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라고, 우리는 말할 수 없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보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했던 사람은 대통령의 권자에 오르자, 상식이 무엇인지 망각해 버렸다. 어이없게도 그를 탄핵의 수렁에서 구해준 것은 '시민의 상식'이었다. 얼마 전 그는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대추리의 늙은 농부가 빈 하늘에 대고 답했다.

"농사꾼들을 다 죽여 놓고, 농촌을 다 갈아엎어 놓고 무슨 낯짝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거여. 농사는 지놈새끼 지으라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여? 저런 후레자식을 대통령이라고 뽑은 내가 바보지…."

대추리 도두리의 농민들은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우리 마을에 와보라"고, "저 너른 황새울 들녘에 한 번 서 보라"고, "이 마을 누구라도 좋으니 한 번 붙잡고, 우리들 살아온 인생 얘기 한 번 들어보라"고, "그러면 대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옳은 일인지, 사람이라면 깨달을 수 있는 법"이라고.

'진실'은 더딜 수도 있다. 허나 대추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이성과 감성은, 우리의 양심은 움직여야 한다. 우리 모두, 찌르면 36℃의 피를 흘리는 사람이 아닌가. 침묵은, 황새울의 더운 피를 차갑게 굳게 할 뿐이다. 한 평생 허리 굽히고 너른 들녘을 가꾸었던, 그 사람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우리의 미래 또한 없을 것이다.

▲ 물찬 갯벌을 건너 공부하러 가는 애기들이 안쓰러워, 보리와 쌀과 콩을 모아 농민 스스로 지었던 대추분교. 그러했기에, 졸업식 때는 부모님께도 감사장을 빠짐없이 드렸던 대추분교. 아이들의 꿈이 자라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품어 안았던 학교는 불의한 권력이 동원한 포크레인 삽날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폐허 위에 ‘평화’를 바라는 깃발이 하나 펄럭였다.
ⓒ 노순택
그러므로, 대추리 도두리의 문제는 그곳 늙은 농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다. 일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우리의 책임도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자.

"자유롭고자 한다면, 타인의 억압된 자유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칸트는 말했다. 타인의 자유가 압살되는 것을 방치하면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없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내게도 고통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확산시키려는 더러운 자유를 막을 방법은, 역설적이지만 '자유로워지려는 우리의 의지와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늦었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약속받은 청문회를 촉구해야 한다. 잘못된 절차와 내용을 따져 물어야 한다. 변화된 상황에 맞는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 재협상 가능성은 협정문 안에도 명시되어 있으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늦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황새울의 늙은 농부들은 몸으로 외로이 외치고 있다. "들을 빼앗겨도, 봄을 빼앗겨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저 늙은 신부의 호소를 외롭게 한다면, 우리의 역사가, 우리 자신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에 관한 자물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하지만, 열쇠는 우리와 미국이 함께 쥐고 있다. 문제는 자물쇠를 열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다.

대추리의 고단한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온 조선례 할머니가 평화로운 황새울 들녘에서 손주들과 이웃의 배웅을 받으며, 예쁘게 가시는 모습을 함께 보고 싶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가옥 강제철거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대추리 도두리에는 가슴 태우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온 생애를 들녘에 바쳐 온 늙은 농부들의 삶이 이대로 파괴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내일에 대한 어떠한 다짐과 약속도 열띤 토론도, 오랜시간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말 것이다. 

아직 '양심의 명령'을 지킬 시간은 소멸되지 않았다. 9월 24일에는 '사람을 먹여 살려온 들녘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지 않기 위한' 4차 평화대행진이 서울에서 열린다. 

평화대행진을 위한 10만 준비위원 가입하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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