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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를 출판한 허영철씨(87). 그는 비전향장기수 출신으로, 1955년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혐의로 36년간 감옥에서 생활했다.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를 출판한 허영철씨(87). 그는 비전향장기수 출신으로, 1955년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혐의로 36년간 감옥에서 생활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60살 차이? 그럼 잔나비띠 띠동갑?"

1920년생 허영철씨와 1980년생 기자가 마주앉았다. 허씨는 60살 차이 띠동갑 기자 앞에서 눈꼬리를 올리며 수줍게 웃었다.

허씨가 쓴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보리출판사)의 출판기념회 자리에서다. 28일 저녁 용산 철도웨딩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장기수 40여명과 함께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위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강정구 동국대 교수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그는 "기억력이 좋으시다", "36년 옥고를 어떻게 견디셨냐"는 질문에 수줍게 웃다가도 "국가보안법이 무엇이냐", "신념이 밥 먹여 주냐"는 질문에 기자에게 바싹 다가와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아파트 관리인의 얼굴이었다가 비전향장기수로 지낸 과거를 내보이는 대목이다.

그의 기억력 덕에 반세기 개인사를 묶어 책이 나왔다. 영화 <선택>, <송환>에 이어 허씨와 같은 비전향장기수를 다룬 출판물인 셈이다.

그는 1920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16살 되던 해에 함경남도 단풍선 철로 공사에 지원해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 유바리 탄광에서 1943년 귀국해 2년 뒤 해방정국을 맞아 인민위원회 재건 등 독립 국가 건설에 힘을 보탰다.

'보통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말단 남로당 당원부터 시작해 고향인 부안군 인민위원장을 지냈고, 한국전쟁 동안에는 빨치산으로 생활하다 황해도 도치면 인민위원회 위원장, 장풍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했다. 남북에서 인민위원회를 이끌었다는 특이한 경력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그의 출판을 권유했다.

1953년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전쟁은 그때부터였다. 그는 "1950년 4월 제네바 회의에서 조선의 통일을 주장하는 공화국의 정당한 제안이 미제의 음모로 무산됐다"면서 공화국의 제안을 남쪽에 알리고,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1954년 남으로 내려왔다가 1년 뒤 체포됐다.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미수 혐의로 무기형을 받고, 감옥에서 36년을 지낸 뒤 1991년 2월 출소했다.

"왜곡된 공화국 체제, 본 그대로 기록하려 애썼다"

28일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허영철씨와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했다.
28일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허영철씨와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그는 36년 옥고에 대해 묻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보다 투쟁 경력이 더 오래인 사람들이 겪은 일과 비교하면 별 일 아니다"라며 말을 줄였다.

그는 책에서도 36년 수감 생활에 비중을 두기보다 1952년부터 4년간 북쪽에서 겪은 일들을 부각시키려 애썼다. 오고간 편지, 공판 내용 등 책을 만들 때 필요했던 수감 생활에 대한 기록은, 자신보다 더 꼼꼼히 기록해 놓은 국가기록원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금강학원과 중앙당학교 분교에서 남파 교육을 받고, 직접 남쪽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4년간의 생활을 담은 4장을 이 책의 핵심으로 꼽으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공화국의 사회체제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책을 통해 당시 논란이 됐던 찬탁과 반탁, 한국전쟁 발발 배경, 박헌영 간첩 사건 등 남쪽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사건에 대해 본 그대로 기술했다.

"지금 남쪽에서 노골적으로 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서 북을 이해한다는 사람들도 상당히 공화국 체제를 곡해하고 있다. 공화국의 체제가 1인 독재로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도 심각하게 탄압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사실 대로 기록하려고 애쓴 대목이다."

탈북자가 줄을 잇는 상황에서 북한 인권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 곳은 이미 사회주의가 자리를 잡은 곳인데, 이쪽 사람들은 자꾸 자본주의 논리로 사회주의 국가를 보려 한다"며 "공화국에서도 인권은 신성불가침"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인권 탄압을 문제 삼으며 공화국 체제를 공격하는 이들을 반격했다.

"여기서는 학교폭력이나 군대 내 폭력 같은 것들 없나. 남쪽 인민들의 기초적 인권도 지키지 못하면서 탈북자들 말만 듣고 어떻게 '인권탄압 국가'라고 비난할 수 있나. 식량난으로 굶주린 이들에게 물어봐라. 학교에서나 군대에서 맞아본 적이 있는지."

"남조선, 잘 먹고 잘 산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북에서 내려온 지 50년이 흘렀지만 그의 신념은 시간을 비껴가지 않은 모양이다. 책 제목과는 반대로 왜 그는 역사에 순응하며 비껴가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몸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빨갱이'든 '공산주의자'라고 하든, 상관없다"며 "올바른 삶을 사는 것뿐 후회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조선 인민들은 '잘 먹고, 잘 산다'고 말할지 몰라도, 지금 이 땅에 주권이라는 것이 있느냐. 지금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만 봐도, 미국이 갖고 있는 것을 환수한다 만다 말이 많은데….(웃음) 옛날부터 중국, 일본에 메여 살다 보니 지금도 사대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예속적인 근성 대로 살고 있다."

36년간 그를 묶어뒀던 국가보안법에 대해 묻자 그는 한참 동안 큰 소리로 웃다가 "그건 법이 아니지"라고 말했다. 그는 "일제시대 독립운동 못하게 하려고 조선 민중을 묶어둔 치안유지법에서 온 것"이라며 "인민들이 자유롭게 인민회를 수립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법도 아닌, '거시기'"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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