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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박물관 - 고선사지석탑
경주박물관 - 고선사지석탑 ⓒ 김성후
재미있는 답사

저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저를 아주 독실한 불교신자라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절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보이겠지요. 그런 말씀을 들으면 저는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을 합니다.

그리곤 제 스스로 약간의 변명을 합니다. 믿음과 신앙을 목적으로 절을 찾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진 않지만 부처님께서 가르친 내용을 좋아하고 따라하니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절을 찾는 것일까요? 여행 삼아 소풍 삼아 가는 바깥나들이도 있고 조금 거창하게 표현해서 절을 답사하기 위해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창하다고 표현을 했는데 답사라는 말뜻을 보면 “그곳에 실제로 가서 보고 조사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여행이나 소풍과 다르게 공부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런 답사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로써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가 있습니다. 안다는 것 즉 지식(知識)이야말로 바로 공부이니 다른 말이 필요 없겠죠.

그런데 편안하게 떠나야 할 바깥나들이에도 무슨 공부냐며 고개를 흔드는 분도 계실 것 같네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최종 학력에 이르기까지 공부에 얽매이면서 살아왔고, 직장에 가서도 승진에 매달려 또 공부해야 하는데 기분 좋게 떠나는 나들이마저 공부라니 차라리 답사를 포기하겠노라고 말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가하고픈 말씀은 답사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포기하지 않고 답사를 갈 수 있을까요? 바로 재미있는 답사, 재미있는 공부를 하면 됩니다. 우리가 여태까지 해온 공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이 시켜서 억지로 한 주입식 공부가 대다수였죠? 혹시 재미있게 한 공부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까? 가령 밥도 먹지 않고 읽었던 만화책이나 밤을 꼬박 새워 읽었던 손을 놓지 않고 읽었던 소설책 같은 거 말입니다.

이런 만화책이나 소설책은 내가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한 즐거운 공부였을 겁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내 자신이 재미있고, 즐겁다고 여긴다면 충분히 할만한 것이 공부입니다. 자발적이고, 재미있는 답사를 하면 소풍이나 여행보다 그 내용이 훨씬 알차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절에는 답사를 하러 간다고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 즉 지식(知識)이란

이제는 안다는 것 즉 지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지식이란 말은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요. 아니 어떤 조건을 충족할 때 우리는 지식이라 할까요.

‘검증된 참으로 내가 믿을 때(Justified True Belief)’라는 조건에 맞아야 우리는 지식이라 합니다. 검증(檢證)을 한다고 할 때 누가 할까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입니다. 옳다는 뜻의 참이란 어떤 뜻일까요? 논리적으로 따질 때는 말로 표현된 문장구조에 의해 참이라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뜻은 우리가 지칭한 사물과 그 의미가 일치할 경우입니다. 그리고 남들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건 지식이 안됩니다. 그래서 남들처럼 나도 참이라고 믿어야만 한답니다.

이 말을 간추려 보면 지식은 ‘나’라는 존재와 ‘남’이라는 존재 그리고 지식의 대상이 되는 ‘사물’의 관계가 올바르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형성하는 세상살이의 모든 관계를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답사를 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세 가지 조건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느낌과 지식의 관계

그런데 이 개념에 비추어 보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라는 말은 그 구조가 좀 이상합니다. 느낌이라는 말은 순전히 주관적인 믿음인데 반해 지식은 타인의 검증까지 거친 객관적인 사실이거든요. 주관적인 느낌은 지식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왜 답사를 하는 사람은 지식이 바탕이 된 느낌을 가진다고 말을 할까요.

이제는 ‘느낌’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서로 다른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답사가 위주니까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개나리나 진달래가 만발한 화창한 봄날이나 온 천지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에 소풍이나 여행을 간다고 합시다. 이런 자연을 보는 순간 당연히 아름답다고 할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은 즉흥적이고 1차 적인 느낌입니다. 그러나 답사를 하는 사람이 표현하는 느낌은 다릅니다.

문학, 역사, 사상, 과학 등의 지식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종합한 뒤에 느끼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 안에는 즉흥적이고 1차 적인 느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느낌을 종합적이고 2차 적인 느낌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절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탑(塔)이라는 대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처음 보는 순간 그 수학적인 비례가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즉흥적이고 1차 적인 느낌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한편 불교에서 탑이 가지는 의미, 크기와 규모, 기단부·탑신부·상륜부라는 구성과 비례, 탑이 만들어진 역사적인 배경 등을 살피고 난 뒤에 이를 전체적으로 종합하여 아름답다고 한다면 이는 종합적이고 2차 적인 느낌이라고 할 것입니다.

답사에서 사용하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라는 말에서 느낀다는 것은 바로 2차 적인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사물이 가진 다양한 의미를 안다는 것이며 그만큼 많은 의미를 종합하여 전체적이고 새로운 느낌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라는 말에서 지식과 느낌이라는 단어의 앞뒤 순서가 바뀌는 바람에 간혹 이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느낌이라는 말도 그 의미가 다르게 사용될 수 있음을 알고 나면 답사와 공부와 느낌의 관계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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