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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시리즈. 두 권에 7불 95센트.
셜록 홈즈 시리즈. 두 권에 7불 95센트. ⓒ 한나영
"엄마, 이거 사도 돼? 50% 할인이라는데…."

반즈 엔 노블(Barns & Noble) 서점 안. 새로 나온 책과 잡지를 둘러보고 있는데 딸아이가 두툼한 책을 들어 보이며 묻는다.

"무슨 책인데?"
"셜록 홈즈 전권 시리즈. 두 권짜리인데 7달러 95센트(한화로 약 7600원) 밖에 안 돼."

딸아이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아가사 크리스티, 코난 도일, 앨러리퀸 등의 추리소설물을 즐겨 읽던 아이였다. 그런 만큼 코난 도일의 작품이 다 실린 전권 시리즈는 딸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한 권 값에 두 권을 살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비싼 달러를 써야 하는 이곳에서 돈이 나가는 일은 '알뜰생활'을 강조하고, 강요해 온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기에 딸아이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온 것이었다. 흔쾌히 승낙을 했다. 물론 속으로는 이렇게 묻고 있었다.

도서관 기둥에 붙은 포스터들. '책읽기는 모험(adventure), 재미(fun). 너의 지식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라(Watch your knowledge grow).'
도서관 기둥에 붙은 포스터들. '책읽기는 모험(adventure), 재미(fun). 너의 지식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라(Watch your knowledge grow).' ⓒ 한나영
'얘, 너 그 책 읽기는 할 거니? 두껍기도 하고 (각각 705, 709 페이지) 글씨도 작은데 다 읽을 수 있겠어? 혹시 그냥 썩히는 거 아냐?'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왜냐하면 한 번 쓰고 없어지는 보통의 소비재가 아니고 누구라도, 언제라도 읽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다른 책도 아니고 셜록 홈즈라고 하지 않는가.

명탐정 셜록 홈즈! 그는 긴 머리 소녀였던 까마득한 초등학교 그 시절, 내 시간을 지배한 남자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그를 통해 나는 한여름의 복더위와 엄동설한을 이겨낼 수 있었고 더디 흘러 무료하기만 했던 그 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코난 도일을 통해 나는 책 읽는 법을 배웠고 글 쓰는 방식을 익혔다. 그런 책읽기를 통해 내 인생은 변화되었다.



책읽기를 통해 내 인생은 변화되었다. 메사누튼 도서관 서고
책읽기를 통해 내 인생은 변화되었다. 메사누튼 도서관 서고 ⓒ 한나영
그렇게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해 주고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책의 고마움과 책읽기의 소중함을 아는 지라, 나는 한국에 살 때도 시간이 나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곤 했다.

그리고 이곳에 온 뒤에도 부지런히 도서관을 찾았다. 물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었다. 또한 빌려온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하고 지적인 분위기가 좋아 틈이 날 때마다 도서관을 찾았다.

메사누튼 도서관에는 무엇이?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문을 여는 메사누튼 도서관.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문을 여는 메사누튼 도서관. ⓒ 한나영
내가 사는 해리슨버그의 메사누튼 도서관. 이곳은 크리스마스 등의 공휴일과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연중무휴로(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문을 여는 도서관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청소년, 대학생 등 주로 젊은층이 많이 오던 우리나라 도서관과는 그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선 채로 독서 삼매경에 빠진 할아버지
선 채로 독서 삼매경에 빠진 할아버지 ⓒ 한나영
책도 읽고 신문도 읽고.
책도 읽고 신문도 읽고. ⓒ 한나영
책을 고르고 있는 중년 여성.
책을 고르고 있는 중년 여성. ⓒ 한나영
메사누튼 도서관을 찾아갔던 지난 수요일,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예순도 넘어 보이는 노년의 여성이었다.

책상 위에는 자료로 보이는 문서와 비디오테이프가 놓여 있었는데 그녀는 쉴 새 없이 펜으로 종이 위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속도로 승부하는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향기가 나는 종이와 펜을 보니 마치 떠나온 옛 고향 친구를 보는 듯 반가웠다.

유명한 작가? 노트북 주인인 내가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작가의 진지한 글쓰기에 그만 포기해야 했다.
유명한 작가? 노트북 주인인 내가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작가의 진지한 글쓰기에 그만 포기해야 했다. ⓒ 한나영
'혹시 작가?' 나이가 많이 들어보였지만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나도 이다음에 저런 모습으로 곱게 늙을 수 있을까.

할머니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던 나는 일부러 옆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져온 노트북을 두드리며 호시탐탐 틈을 노렸다. 혹시 몇 마디 말이라도 나눠볼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하지만 포기해야했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태도가 너무나 진지해서 도저히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이야? 놀이방이야?

도서관은 노는 곳. 엄마와 함께 책을 읽어요.
도서관은 노는 곳. 엄마와 함께 책을 읽어요. ⓒ 한나영
어린 아이들을 위한 방은 이곳이 도서관인지 놀이방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재미있는 숫자판과 알파벳판 매트가 바닥에 깔려 있고 인형과 장난감이 많아서 언뜻 보기에는 놀이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온 제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블록을 쌓기도 하고 자동차 놀이를 하기도 했다. 또 엄마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엄마가 들려주는 책을 귀담아 듣기도 했다. 엄마들은 혼자서 잘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어린이 방에 있는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주중의 이른 시간이었지만 어린이 방에는 밝은 표정의 엄마와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하지만 메사누튼 도서관은 고리타분(?)하게 책만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자주 이용했던 유성도서관도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디지털자료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건 이곳에서는 CD나 VCR, 혹은 DVD를 각각 10장씩 20장씩 빌릴 수 있다는 점이다. 도서의 경우에는 권수에 제한을 받지 않고 무제한으로 빌릴 수 있고.

내가 빌려온 추억의 영화 DVD
내가 빌려온 추억의 영화 DVD ⓒ 한나영
DVD는 아예 대출이 안 되고 VCR이나 CD는 2장까지만 빌릴 수 있었던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니 이곳 도서관은 비록 작은 도시에 있지만 주민들을 위한 서비스가 훌륭했다. 부러웠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미국이 부자나라여서 그런 것일까.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국가 예산도 많을 거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그게 전부 다일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 뭘까. 바로 도서관 입구에 놓인 작은 탁자가 내 궁금증을 덜어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다음편에는 '메사누튼 도서관' 담당자와의 인터뷰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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