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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겉그림
<눈물은 왜 짠가> 겉그림 ⓒ 이레
전업시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함민복 시인은 고등학교 졸업 후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후 별다른 직장 없이 혼자서 살아오고 있다.

시골 산속에서 가축을 기르기도 했던 시인은 10년째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동막교회 앞에 있는 월세 10만원의 작은 농가에서 곤궁의 맨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낸 채 살고 있다.

빨간 양철지붕의 안채와 파란 양철지붕의 행랑채, 흰 슬레이트 지붕의 화장실에는 각각 자금성, 청와대, 백악관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시인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노를 터뜨리거나 절망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를 지탱하는 것은 그리움의 힘이리라.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하늘과 땅 사이를/날아오르는 새떼여/내리치는 번개여"(<선천성 그리움> 전문)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간혹 튼다는 TV는 원래 컬러지만 지금은 오롯이 흑백 화면만 내보낸다. 그나마 월드컵 때 얻어다 놓은 것이란다. "원래부터 변두리로 밀려나면서 살아왔다"는 그는 "일산에 살다가 신도시가 들어서자 문산으로 갔고, 그곳 땅값이 올라 이번에는 강화도로 온 것"이라고 한다.

"집에서 도망치는 연습만 하는 시골 처녀들" 때문에 아직도 혼자 살고 있는 그는 "돈 벌어 놓은 것도 없고 먹고살 일이 막막할 때는 글 때려치우고 약초나 캐서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가난한 시인에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함민복 시인은 좀 섭섭했다.

상금도 없이 부상으로 준 커다랗고 무거운 기념품이 못마땅한 시인은 "차라리 쌀이나 한가마니 주지"하며 서운해 했다나. 더구나 상금으로 술을 한 턱 사려고 했는데, 돈이 없어 결국은 모인 사람들이 오히려 함민복 시인에게 술을 사 주었다고 한다.

"눈물은 왜 짠가"는 가난해서 시가 더욱 따스하고 정갈하게 가슴에 와 닿는 함민복 시인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흔히 시인이 산문집을 냈다고 하면 다른 산문집하고는 좀 다르겠지 하는 생각에서 읽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약속>을 통해, 그 폭력성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시인은 차비가 없어 고향에도 내려가지 못할 정도다(누이가 보내준 돈으로 가긴 하지만).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너무 박하다 싶다가도/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시집 한권에 삼천 원이면/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국밥이 한 그릇인데/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시집이 한권 팔리면/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박리다 싶다가도/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긍정적인 밥> 전문)

함민복 시인은 가난하다. 하지만 그의 가난은 "어떤 내용으로 존재하는가를 묻는 가난이다". 그의 관심은 '빈부'에 있기 보다는 "살아 있다는 원초적 조건 속에서 돋아나오는 희망과 기쁨"에 있다. 강화도에서 비린 봄 망둥이를 잡은 자리에서 배를 따 배고픔을 달래는 시인의 일상이 머리 속에 강렬하게 남는다. 가난하게 사는 시인의 가난엔 이유가 있다.

"혼자 산 지 오래되었다.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혼자 산 지 오래된 어머니도 그러하리라. 내가 밥상머리에서 늘 어머니를 생각하듯 어머니도 나를 생각하실 것이다. 혼자 먹는 밥상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차려진다."('찬밥과 어머니' 중)

함민복 시인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은 걸어서 간다."(서정홍. '장날' 부분) 시골에 사는 여느 할머니들처럼 웬만한 거리는 모두 걸어서 다닌다. 그래서 때로는 차가 있는 사람들이 모시러 오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는 시인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여비가 없어 못 다닐 정도로 가난하다.

하지만 이번 산문집에는 따스한 언어들이 부잣집 밥상처럼 맛깔 나게 차려져 있다. 조금만 뜸을 들이면 시가 될 정도의 말들로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강화도 섬사람들과의 자연적인 어울림 등을 담았다.

여태 총각이라 마을 초상에 상여를 매고 망자의 길을 대신 걸어주는 '그 그럴싸한 일'에서 따돌려질 때, 함민복은 '사람들과 어울려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사람의 다리가 되어 걸어주지 못한 내 삶이 한심했다'고 아주 진지하게 말한다.

소설가 김훈은 함민복 시인을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이라 평했다지만, 겸연쩍은 듯 수줍게 입초리 휘어 올리는 그의 '말랑말랑한' 웃음 역시 가난과 불우 따위에 꺾이지 않고 너끈히 버텨내던 '힘'임을 아는 사람은 안다.

함민복 시인의 글을 읽고 또 읽어 내려가다 보면 왠지 내 온몸이 글 냄새에 적셔지는 듯하다. 사람냄새, 사는 냄새, 무수히 많이 퍼져 있는 '화학적 향내'가 아닌 그저 '냄새'인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냄새에 취해 눈물이 난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이레(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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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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