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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왜 언니만 예뻐하느냐고 당돌하게 대들던 동생을 향하여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있느냐고.

자식은 모두 똑같다는 말씀을 은유로 표현한 말씀이겠지만 그 말씀이 언제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커가면서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을지 몰라도, 그 아픈 정도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지 모른다.

각각의 손가락의 기능이 다르고, 또한, 각 손가락이 불편할 경우 발생하는 상황 또한 그 경중에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손가락이 모두 똑같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며칠 전 왼손 엄지손가락을 삐어서 붕대를 감고 다녔다. 삔 손가락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손바닥까지 붕대를 감아서 큰 부상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 처음에는 엄지손가락 정도 삔 것은 대수로 생각지 않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고정을 시켜놓지 않으니 자꾸 움직여서 회복이 늦어져서 끝내 엄지손가락을 흰 붕대로 둘둘 말고 다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엄지손가락을 고정시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놓고 보니, 왼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뭐 하나 집으려 해도 엄지가 없으니 맘대로 집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피아노를 치는 일이나 심지어 병뚜껑을 따는 일까지 쉽지 않았다.

다른 손가락을 다쳐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엄지의 경우는 그 영향력에 있어서 다른 손가락의 경우보다 더욱 심한 것 같다. 검지만 보더라도 중지로 대신할 수 있고, 그 외 다른 손가락들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대체로 가능하다. 하지만, 엄지의 경우는 엄지가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손가락이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정의 엄지가 되는 가장의 위치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를 생각해보면, 다시 한 번 엄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물론, 모든 가족의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하며, 또 나름대로의 중요성을 갖지만, 그 가장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가정을 이끌어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집안의 분위기나 풍토가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가정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회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 국가로부터 작은 이익단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엄지를 선출하는 것이 그 단체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엄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엄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구성원들이 필요로 할 때 기꺼이 엄지는 도와주어야 하고, 따라서 다른 구성원들보다 훨씬 많고 힘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최고’를 가리키는 일만 하기 원하는 엄지라면 제대로 엄지의 역할을 해낼 수 없다. 엄지라는 자리는 좋아하면서도 역할에 게으른 엄지를 갖고 있는 손은 손의 역할을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무와 책임, 나아가서 구성원들을 향한 사랑과 봉사정신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또한, 구성원들은 그러한 엄지의 비애(悲哀)를 이해하고 그 엄지가 엄지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이다.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와서 그때서야 비로소 엄지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면, 그때는 이미 소중한 엄지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엄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엄지로서의 해야 할 일에 충실하고, 또 다른 손가락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엄지의 고충을 이해하고, 감사하며 존중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하얀 붕대로 감겨진 나의 엄지를 보면서 우리 가정을 훌륭하게 이끌어 주신, 우리의 엄지,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코리아나뉴스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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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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