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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 익스프레스 헤이리 공연 마지막 날 모습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헤이리 공연 마지막 날 모습 ⓒ 김기
한국의 팻 매쓰니를 기대한다. 미국식 대중음악이 세계음악시장을 뒤흔들 때 비주류라 할 수 있는 재즈기반음악으로 아성을 구축한 뮤지션 팻 매쓰니(Pat Metheney)는 하나의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그의 출세작인 'Off Lamp'는 재즈와 동양의 신비를 절묘하게 결합시키고 있어 20세기 후반부터 서양에 일기 시작한 동양지향에 일조를 하였다.

그들 팻 매쓰니 그룹을 퓨전재즈라고도 쉽게 명명하기도 한다. 그 음반은 미국인이 해석한 인도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재즈가 만날 수 있는 음악적 수용을 증명해준 또 하나의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언어와 달리 음악은 동서양의 경계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왕래 가능한, 그럼으로써 오히려 20세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소통의 대표주자임을 보여주었다.

퓨전이 그처럼 자신의 아이덴티티의 한계를 느낀 사람들에게 주요한 돌파구가 된 것은 이미 오랜 일이다. 아니 이미 음악계에서 퓨전은 개념 이전부터 소용되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국악원에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국악원에서 ⓒ 김기
전설의 미 가수 레이 찰스, 탱고, 보사노바 등 남미음악을 세계적 음악의 반열에 올린 피아졸라, 안토니오 조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음악가들이 채용한 음악적 방법론은 역시 '퓨전' 혹은 '자유로운 소통'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특히 국악하는 젊은이들에게 퓨전은 선택이 아니라 젊은시절의 필수항목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것을 위한 악기 개량도 상당부분 진척되어 있고 현재 국악음반으로써 최고 판매를 보이는 것 역시 숙명가야금오케스트라의 퓨전음악이다. 퓨전에 대해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퓨전이란 통역기가 필요 없는 예술의 만남이다. 그러나 무조건 퓨전이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대로 된 퓨전그룹 예감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퓨전은 하나가 아닌 둘을 알아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는 오히려 더욱 어려운 작업이다. 실제 퓨전그룹은 많아도 정작 성공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그 반증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팻 매쓰니 그룹을 연상케 하는 한국 퓨전그룹이 등장할 듯하다. 그들의 이름은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2040밴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20년의 차이를 극복한 그들의 비결은 음악.
2040밴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20년의 차이를 극복한 그들의 비결은 음악. ⓒ 김기
40대 대학교수 2명에 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연주자 2명 그리고 그 중간을 메우는 30대 3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는 조용히 그러나 당차게 한국 음악시장에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2040밴드.

올 초 레코딩을 마치고 5월 출시한 음반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를 기념하기 위해 7,8월의 매주 토요일에 헤이리 최초의 극장 <이구동성>에서 공연을 해왔다. 아주 작은 극장인 '이구동성'은 새로 태어난 밴드를 만나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특히 요즘 헤이리는 중국현대예술제를 진행 중이라 극장 내부에는 중국 현대미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 자연스럽게 무대세트로 활용되기도 했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의 음악부터 이야기하자. 이들의 음악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팻 매쓰니 그룹>이었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이들 그룹의 구성을 보자면, 가야금, 해금 두 개의 국악기와 퍼스트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퍼쿠션 그리고 신디사이저. 이런 구성은 이미 국악퓨전에 있어서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음악은 기존 퓨전과 다르다. "우리는 국악도 아니고, 재즈도 아니고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음악을 할 뿐이다" 고 말하는 부분도 팻 매쓰니와 닮아 있다. 사실 팻 매쓰니의 음악을 딱히 뭐라고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워 마니아들은 그저 팻 매쓰니식 음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 평가는 주관적인 것이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1집 음반 표지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1집 음반 표지 ⓒ 김기
사실 국악기와 일렉트릭 서양악기가 잘 어울리기란 대단히 어렵다. 누구나 하고 싶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그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선 음량과 음색이 판이하고, 무엇보다 각자의 장르에서 익혀온 음악의 배경이 다르다. 이질적인 둘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현실적인 모험이다. 그런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밴드의 실력과 감각 두 가지.

대학교수들 넥타이 풀고 무대 위에 서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는 그 두 가지를 갖췄다. 이 그룹의 리더이자 건반악기 연주와 작곡을 도맡아 해결하는 최영준과 퍼스트 기타를 연주하는 김대승 두 사람은 버클리음대 출신이다. 버클리를 나온다고 실력과 감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또 드러머 김현종은 한 대학의 학과장이다.

40대거나 곧 40대에 들어서는 강단에서 근엄한 강의나 해도 충분한 대학교수들이 어린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연습을 거치고 마침내 험난한 음악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이에 합류한 고액연봉의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영혼의 압박을 벗기 위해 기타를 들었다는 베이스 기타 김현모, 현재 방송국에서 밴드 마스터로 출연하고 있는 퍼쿠션 고헌균.

앞서 말한 멤버들이 3,40대의 고령 연주자라면 가야금 박경소, 해금 천지윤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20대 여성이다. 퓨전밴드라면 젊은이들끼리 모여서 의기투합하는 것이 보통인데 반해 이들은 철저하게 그룹의 음악적 특성과 안배를 위해 조직된 것이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런던까지 음악 투어를 꿈꾸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는 한국은 물론이고 그 여정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왼쪽부터 베이스 김현모, 퍼스트 기타 김대승, 퍼쿠션 고현균, 가야금 박경소, 해금 천지윤, 리더 최영준. 그들이 한국퓨전의 한 획을 긋게 될까..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왼쪽부터 베이스 김현모, 퍼스트 기타 김대승, 퍼쿠션 고현균, 가야금 박경소, 해금 천지윤, 리더 최영준. 그들이 한국퓨전의 한 획을 긋게 될까.. ⓒ 김기
노소공감을 이룬 이들이니 동서공감 또한 노려볼 수도 있을 듯하다. 실제 19일 헤이리에서의 마지막 공연은 다양한 청중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우연히 찾은 젊은이들부터 이들을 알고 찾아온 중년까지 모두들 낯선 듯 익숙한 음악에 흥겨워하는 모습들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만난 관객들의 반응은 대부분 여행에 딱 맞는 음악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부드러운 재즈터치의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는 한적한 여행 혹은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퇴근하는 차 안에서 여유롭게 듣기에 좋다. 물론 집중 감상의 요소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것은 국악기의 대표 가야금과 해금이 주선율을 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것이다.

한때 국악관현악과 관련해서 '핫엔쿨(Hot & Cool)'논쟁이 잠시 있었다. 창작국악이 차분히 감상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한 평론가의 제기였고, 이에 찬반의 논쟁이 있었던 것. 그러나 논쟁의 결론과는 별로로 실제 대중은 자신의 일상에 평화로운 휴식을 주는 음악에 이미 길들여져 있고, 또 음악을 통해 구가하는 것은 결국 휴식이기에 논쟁은 싱겁게 끝나버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논쟁을 알 도리 없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는 딱히 국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악과 결합한 음악으로서 보기 드문 '쿨'한 음악을 만들었다. 물론 이전에 강은일, 정수년, 김애라, 안수련 등 해금주자들이 이지 리스닝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들보다 좀 더 재즈에 가까운 음악을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를 내놓았고, 이는 좀 더 대중에게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해외'란 말은 분단의 산물이다. 3면이 바다이기에 해외란 말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분단이 아니라면 대륙을 통해 외국을 왕래하는 일이 사실 더 빈번한 일이 될 것이다. 분단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실크로드조차 조금 먼 개념이었다.

바다를 통해서가 아니라 당당히 아시아 대륙을 횡단하여 유럽에 도전하겠다는 이들의 당찬 야심이 어떤 결과를 보일지 궁금하다. 대륙을 향해 시동을 건 2040밴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앞으로의 즐거운 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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