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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부터 '작아'랑 함께 했네요.
1997년 5월부터 '작아'랑 함께 했네요. ⓒ 이승숙
처음엔 별거 아닌 작은 일로 시작하지만 하다보면 일이 점점 커진다. 이 쪽을 치우다 보면 저 쪽도 마음에 걸려서 치우게 되고 그러다보면 집안은 마치 이사 들어온 집처럼 책이랑 가구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책들을 한 자리에 모으다가 그 중 한 권을 빼들고 읽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십 년도 더 지난 오래된 책이었다. 두 번씩이나 이사하는 동안에 월간지나 주간지 같은 철 지난 책들을 많이 버렸는데도 안 버리고 챙겨왔던 책들이다. 나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살았던 신도시 아파트 상가에 있던 작은 서점은 참고서와 아동 도서들로 벽면이 다 채워져 있다시피 했다. 찾는 이들도 대부분 학생들이었고 간혹 가다가 어른들이 들르기도 했지만 그들도 대부분 월간지나 주간지를 사 가는데 그치곤 했다. 그래서 그 서점의 진열대엔 참고서와 월간지 그리고 잘 나가는 아동 문학서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느 날 지나는 길에 서점에 들른 나는 이것저것 주섬주섬 훑어보고 있었다. 그 때 내 눈에 뜨인 책이 한 권 있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다른 책들은 사람의 눈길을 붙잡기 위해서 다들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는데 반해 그 책은 화장을 하나도 안 한 여인처럼 수수하고 소박했다.

'작아'는 1996년 6월에 태어났답니다. 제가 맨 처음 만난 1997년 5월의 '작아'입니다.
'작아'는 1996년 6월에 태어났답니다. 제가 맨 처음 만난 1997년 5월의 '작아'입니다. ⓒ 이승숙
겉표지 역시 담백했다. 이철수 화백의 판화 그림이 책 표지 한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었고 책머리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하 작아)란 책 이름이 쓰여 있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니 그 참 희한한 말이네 생각하며 책을 빼들고 책장을 넘겨보았다. 책은 재생지로 만들어서 겉보기엔 투박하고 거칠어 보였다.

그러나 책을 손에 쥔 느낌은 오붓했고 수록되어 있는 글들도 다정스러웠다. 그 날 이후로 '작아'는 우리와 함께 했다. '작아'는 강산이 바뀐다는 십 년 세월을 달마다 조용히 우리를 찾아왔다.

책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다가 책이 오면 아껴가며 봤던 시절도 있었다. 손이 잘 닿는 곳에 두고 가족 모두가 오며가며 들춰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게 되었다. '작아'에 빠져서 행복하게 몇 년을 지냈다.

세월이 흐르고 책도 조금씩 변해갔다. 내가 알고 지내던 편집실 사람들이 '작아'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갔고 새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자 나는 그만 '작아'가 낯설어졌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한동안 '작아'는 내 사랑을 예전처럼 받지 못했다.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나는 '작아'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천천히 '작아' 곁으로 다가갔다. '작아'는 그 때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작아'와 친구가 되었다.

텔레비전을 치우고 그 자리에 자그마한 책장을 짜넣었습니다. 십 년 동안 우리와 함께 한 '작아'를 가지런히 모아놓았습니다.
텔레비전을 치우고 그 자리에 자그마한 책장을 짜넣었습니다. 십 년 동안 우리와 함께 한 '작아'를 가지런히 모아놓았습니다. ⓒ 이승숙
텔레비전을 치우고 그 자리에 자그마한 책장을 짜 맞춰 보았다. 송판 몇 장을 벽돌로 괴어서 책꽂이를 만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작아'를 옮겨다 두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를 기다려 준 '작아'를 내 손이 가장 닿기 쉬운 곳에다 두었다.

오며가며 '작아'를 빼서본다. 십 년 전 것도 빼보고 일 년 전 것도 빼본다. 그 속엔 다정다감하고 인정스러웠던 내 젊은 날들이 녹아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녹색연합'에서 매월 펴내는 책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줄여서 '작아'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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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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