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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벼과의 꽃들은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다. 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지나치게 되는 것이 벼과의 꽃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식으로 삼고 있는 쌀, 벼꽃이 핀다는 것을 알기는 해도 벼꽃을 본 적이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벼꽃이 필 무렵이면 벼메뚜기도 한 철을 맞아 '따다다닥!'거리며 풀섶을 날고, 벼꽃을 피운 벼의 이파리에 몸을 바짝 붙이고 술래잡기를 한다. 어릴 적 벼메뚜기는 영양 간식이요, 주전부리였다. 메뚜기가 한창 날아다닐 무렵이면 아이들은 강아지풀을 뽑아들고 메뚜기를 잡아 꿰거나 빈병을 들고 들판을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았다.

그때 빠지지 않는 곳이 논두렁이었다.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다보면 논으로 훌쩍 날아간 메뚜기, 한 발만 더 디디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메뚜기의 술래잡기에 신발을 벗어던지고 논으로 들어간다.

맨발의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진흙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간혹 물뱀을 만나 기겁을 하기도 했지만 즐거운 유년의 추억이었다. 어르신들은 논에 들어가 메뚜기를 잡는 아이들을 보면 기겁을 하며 "이놈들, 벼꽃 떨어진다!"하고 호통을 치시곤 했다.

ⓒ 김민수
나는 원예종 꽃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하나의 차별일는지도 모르겠지만 원예종 꽃은 이름을 외워도 금방 잊어버리기도 하고, 사람의 손길을 너무 타서 화사하지만 그냥 들에 자라는 작은 야생화보다 정감이 가질 않는다.

꽃이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내가 좋아하는 작은 꽃들을 보시면서 "그것도 꽃이냐?"하시지만 작은 꽃이 좋은 것을 어쩌랴?

그러나 솔직히 아무리 작은 꽃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렇게 조개풀 같은 것에는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쉽지 않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고, 그 꽃이 어디 피었다고 해서 안달하지도 않는다. 그냥 별 볼일 없는 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하는 것과 삶으로 살아지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안다고 하는 것, 지적인 유희로 끝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삶으로 살아졌을 때 비로소 아는 것이다.

ⓒ 김민수
별 볼일 없을 것 같던 조개풀, 그는 한자를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조개풀 록(녹) '菉'이고 다른 하나는 조개풀 신(藎)이다. 땅을 기면서 마디마디마다 뿌리를 내리며 주름잡힌 푸른 잎을 내어놓는 예쁜 풀, 나는 꽃보다 그의 초록물결을 닮은 이파리가 좋다.

꽃은 한 여름 뙤약볕에 피어나지만 이파리는 이른 봄부터 풀섶 여기저기,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가 여기저기에 올라오면서 초록들판을 만들어가는 데 일조를 한다. 조개풀이 무성한 곳에 바람이라도 불면 마치 잔잔한 물결을 보는 듯 하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초록물결로 그 그리움을 달래주는 것은 아닐까?

땅을 기며 살아가는 풀, 일년초, 한 해를 살아도 참 진지하게 살아간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꽃, 아침 나절 하얀 먼지를 뒤집어 쓴 것처럼 피어났다가 작은 바람에도 다 떨어져 버리는 꽃이지만 꽃을 피워야 열매를 맺는 자연의 법칙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어떤 것은 화사하게 단장을 하고, 어떤 것은 짙은 향기로 단장을 하고, 작은 꽃들은 모여 피고, 어떤 것은 헛꽃으로 유혹을 한다지만 조개풀은 꽃으로는 그 누구도 유혹하지 못할 것 같다.

ⓒ 김민수
초록 물결을 닮은 조개풀 이파리,
왜 조개풀인가 했더니 바다의 물결을 닮았구나.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왜 조개풀인가 했는데,
이파리에 바다의 물결을 담았구나.

땅을 기는 너나 바닷가 모래를 기어다니는 조개,
그러고 보니 비슷하다.

속살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데기를 짐 지고 살아가듯,
마디마디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를 짐처럼 지고 살아간다.

삶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잘나도 못나도 자기만의 삶이 있는 법이고,
그 모든 삶은 아름다운 것이구나.

<자작시-조개풀>


ⓒ 김민수
일상에 치여 살면서 그 작은 꽃의 존재를 그냥 지나쳐버릴 뻔했는데 이른 아침 분을 잔뜩 바른 듯한 조개풀의 꽃을 만났으니 행운을 만난 것만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들의 삶이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들의 삶도 찬찬히 바라보면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절기상으로 입추가 지나고 나니 가을꽃들의 행렬이 시작되었단다. 그냥 먼저 다녀온 벗들이 전해주는 꽃, 모니터에 피어난 꽃을 보면서 야생화의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그래, 심산유곡에서 만난 귀한 꽃들만 꽃이랴, 내 사무실 뒤편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조개풀도 꽃이 있더라. 그렇게 위로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땅을 기며 살아도, 한 해를 살아도 진지하게 살아가는 조개풀의 끈기와 인내를 배우고 싶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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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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