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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61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극단주의' 배격, '통합노선' 구현을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5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61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극단주의' 배격, '통합노선' 구현을 강조했다. ⓒ 연합뉴스 백승렬
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가운데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극단주의' 배격, '통합노선' 구현이다.

노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주의 비타협 노선이 나라를 분열시켜 왔(다)"며 "앞으로는 통합의 노선이… 역사의 정통이 되도록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시금석도 설정했다. 전시 작전통제권과 한미FTA다. "이 모든 것"을 위해 국민의 뜻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구성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북한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저지른 전쟁과 납치를 용서해야 한다며 '관용과 화해'를 주문했다. 별도 항목으로 떼어내 언급했지만 '통합'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같은 층위를 구성하는 항목이다.

시비는 벌써 붙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남침-납치 사과도 없는데 용서라니"라고 되받아쳤다. <중앙일보>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국군통수권에 관한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바로잡는 일"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이 "위헌 논란으로 번지나"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논의 사항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런 문제제기 역시 '극단주의'에 해당한다. 궁금한 점은 그런 게 아니다. 어떻게 '극단주의'를 극복하느냐 하는 점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 말은 쉽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답은 간명했다. "유일한 방법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루고 끝내 합의를 이룰 수 없는 경우라도 규칙에 따라 결론을 내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답은 간명했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여건이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오는 10월에 가닥을 잡게 된다. 양국 국방장관이 참여하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타결을 보고 로드맵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 일정표대로라면 가을 정기국회 막바지에 국회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국민투표 회부'를 주장하지만 현재로선 세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규칙에 따라 결론을 내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국회 논의다.

송민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면서도, 국회에 성실히 보고하겠다고는 했다. 어차피 거쳐야 할 논의 과정이다.

국회 논의가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찬반 격론이 오가면서 자기 지지층 결집 매개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결과에 승복하고 싶어도 "규칙에 따라 결론을 내는" 과정이 더뎌질 공산이 크다.

한미FTA는 더더욱 그렇다. 한미 양국이 어제(15일) 농·공산품 양허안을 교환할 정도로 협상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연내 타결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설령 한미 협상단이 협상을 조기에 타결한다 해도 국회 동의과정이 지난할 것임은 자명하다.

느긋해진 노 대통령, 그의 속내는?

그래서 궁금하다. 노 대통령 스스로 결과에 승복하는 모범을 보이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주어질지 미지수다. 노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두 사안엔 '극단주의 비타협 노선'이 투영돼 있다. 더구나 대선을 앞둔 시점이다. 쉽게 '규칙'이 발동되고 '승복'이 강제되는 상황이 열릴 수 없다.

노 대통령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지난 14일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두 사안이 "조금 늦어져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며 "싸움 좀 해도 괜찮다"라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시간을 질질 끌면 끌수록 노무현 대통령에겐 불리하다. 여당의 정책 지원 역량이 쇠퇴할 것은 물론이고, 현재의 여야 구도가 존속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느긋하다. 대체 노무현 대통령의 속내는 뭔가?

노무현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최소한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침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반면에 과거 역사의 과오에서 비롯된 정통성 시비나 자격 시비도 이제 역사의 평가로 돌립시다."

무슨 말인가? 한 마디 더 듣자.

"해방 후 정부수립 과정에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통합주의 노선은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러한 노선의 역사적인 가치마저 깎아내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맞닿아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해방 후 통합주의 노선의 요체는 좌우 이념대결을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61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 사회는 전시 작전통제권과 한미FTA 때문에 좌우로 갈리고 있다.

이런 '극단주의 비타협 노선'이 충돌하는 지점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서 통합을 외치고 있다. 통합의 방법도 제시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최소한의 가치를 인정"하는 세력이라면 과거 불문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라고 했다.

이 말에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 '탈당 절대 불가' '외부선장 영입 가능' 발언과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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