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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에서 곰순이와 찰칵.
제주도 여행에서 곰순이와 찰칵. ⓒ 나관호
어머니와 나는 코미디프로를 자주 본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웃기 위해서다. 웃음은 어머니에게 좋은 보약이다. 어머니의 얼굴에 근심 빛이 돌기라도 하면 언제 어디서건 간지럼을 피워서라도 웃게 만든다. 나이 든 아들의 재롱잔치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SBS <웃찾사>의 한 코너인 '그건 아니잖아'를 보다가 한참 동안 웃은 적이 있다.

"우리 아버지께서 내가 태어날 때 공부 잘하라고 지어주신 이름. '성적표'. 그건 아니잖아~."

유일하게 어머니를 웃게 하는 코너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유머 내용을 알고 웃으시는 것이 아니라 개그맨들의 행동 때문에 웃으신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유행어인 '그건 아니잖아'라는 표현이 가끔 어머니의 행동과 어울려 두 번 웃곤 한다.

어떨 때 어머니의 행동이나 언어가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준다. 잠결에 나오는 행동이나 언어가 그 중 하나고,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이어지는 "어머니, 내가 누구예요?"란 질문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도 우리 가족을 웃게 한다.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날이 갈수록 새롭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어머니는 가끔 나를 보고 "오빠!" "조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렇게 말씀하실 때 재차 어머니 눈을 쳐다보고 "어머니, 내가 누구예요?"라고 하면 "아들"이라고 하시며 "내 배로 낳은 아들"이라고 강조까지 하신다. 그런 날은 손녀들의 이름도 까먹으신다. "예나, 예린이요"라고 하면 그제야 "맞아 내가 깜빡했네?"라고 하신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어머니가 새로운 호칭으로 나를 부르셨다. 그것은 '선생님'이다. 아이스크림을 드렸더니 갑자기 "선생님도 드셔야죠?" 하신다. 이젠 익숙해서 먼저 웃는다(어떤 상황이든 긍정적 해석이 중요하다). 아마 어젯밤 선생님 꿈을 꾸셨든지, 옛 추억과 밀담을 나누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눈을 보며 수정해 드린다(눈을 보며 하는 대화는 신뢰를 준다).

"어머니, 내가 누구예요?"
"선생님 아니세요?"

"아들이에요. 아들!"
"그렇네, 맞아 아들. 내 배로 낳은 아들이지. 나관호."

"손녀들은요?"
"어~. 어~. 나예나 나예린."

"딸 이름은 뭐예요?"
"어~. 나봉의. 예는 어디 있다니?"

"시집 갔어요. 여기 안 살아요."
"아참, 맞아 그랬지."
"참 잘하셨어요!"

그리고는 마치 우리 딸들을 키울 때 했던 것처럼 '당근'을 드린다. 당근은 '딸기(초코)우유'다. 그러면 항상 버릇처럼 반쯤 남기신다.

"어머니, 남기시면 버려야 해요."
"이거, 이따가 먹어야지. 다 먹어?"

이럴 때(치매 어른들이 고집 부리실 때) 나는 항상 냉장고를 열어 냉장고 속에 가득한 우유를 보여드린다. 시각효과는 반응이 빠르고 치매 노인들에게 빨리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보셨죠? 많이 있어요."
"어~. 많네? 어른들도 드려야지."

어머니는 어르신들이 안 계시면 항상 어르신들이 드실 음식을 먼저 남겨 놓으셨던 젊은 날의 기억을 가지고 계시다. 그래서 음식이나 우유도 남기시려고 한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는 '남겼던 잔상'만이 남아 있으신 모양이다. 그래서 항상 밥도 남기신다.

어머니의 심리를 몰랐을 때는 거의 억지로 아이를 달래듯이 드시게 했는데 요즘은 남기시게 놔둔다. 맘 편한 것이 제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겨진 것은 '까미'(검은 개) 차지가 된다. 그러면 어머니는 항상 가까이 있는 몸집 작은 다른 강아지 '다롱이'를 챙기신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나는 어떤 상황이든지 '절대긍정'의 자세를 갖기로 마음먹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다. 반면 '이것도 행복이다'라고 생각을 바꾸면 그렇게 된다. 역시 '행복은 선택'이다.

어느 날, 어머니가 화장실에 들어가셨는데 나오시지 않고 계셨다. 더 기다려 보았다. 그래도 역시 인기척이 없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보니 어머니가 깜짝 놀라시며 주춤하신다. 살펴보니 소변이 속옷에 묻은 모양이었다. 그것을 벗어서 빨래를 하고 계셨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제일 싫어하시는 어머니 성격이 이럴 때 나타난다. 가족들에게 미안해 혼자서 빨래를 하신 것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틀에 한 번씩 속옷을 갈아드린다. 그리고 어머니의 속옷 빨래는 어머니가 하실 수 있게 했다. 그것이 어머니가 가진 최소한의 자존심을 살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일하시는 것이 좋으세요?"
"그럼, 움직여야 좋지."
"그럼 이것도 빨아주세요."

내가 사용한 수건을 드렸다. 어머니는 너무 기뻐하신다. 자신이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당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머니에겐 기쁨인 것이다.

어머니가 몰래(?) 빨래를 하시는 날엔 어머니의 자존심을 세워드리기 위해 내 속옷도 빨아 달라고 부탁드린다. 그러면 너무너무 기뻐하신다. 당신의 속옷만 몰래 빨면 눈에 띄지만 내 것까지 함께 하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빨래를 해달라고 하면 어머니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해진다. 그리고는 내 속옷은 들고 나오고 어머니 속옷은 자기 방에 몰래 널어 두신다.

이런 일상들 속에서도 '행복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으면 그냥 행복하다. 역시 행복은 내가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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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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