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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신안군 지도읍 장그지 갯벌
ⓒ 김준
가장 맛있는 음식은 산지에서 먹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싱싱하기 때문이다. 물론 분위기 탓도 있지만. 특히 바다에서 나는 갯것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같은 갯것이라도 잡는 방법에 따라서 그 맛이 달라진다. 그 맛을 결정하는 것은 잡을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적게 받느냐' 하는 점이다.

멸치 중에 가장 맛이 좋은 멸치는 단연 죽방렴 멸치이다. 죽방렴보다 더 맛이 좋은 것은 독살로 잡은 멸치겠지만 제주도를 비롯해 극히 제한적인 곳에서 아는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갈 뿐이다. 물론 가격이 일반 멸치에 비해서 비싼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 김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이 좋은 낙지잡이 이야기다.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내가 직접 먹어봤기 때문이다. 허기가 진 탓에 객관적인 맛을 판단할 능력을 잃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맛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갯벌 한 가운데에서 낙지를 잡던 아주머니가 들어오는 갯벌에 헹궈 건네준 낙지를 잡고 머리부터 씹어 먹었다.

낙지의 8개의 다리(사실은 팔이다. 몸통과 팔 사이에 머리와 눈이 있다. 낙지머리로 알고 있는 먹통이 사실은 몸통이다)가 얼굴을 감싸고 어떤 발은 들어가서는 안 될 곳으로 다리를 들이민다.

한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기에 어찌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부지런히 씹는 것 밖에. 내가 생각해도 자연스럽다. 우물우물 씹으며 아주머니를 뒤쫓았다. 맛이 있다. 내가 평생 먹어본 낙지 중에 이렇게 맛있는 낙지는 처음이다. 그리고 셔터를 눌러댔다.

이른 아침을 먹고 점심을 거른 채 오후 3시가 넘도록 아주머니를 따라 갯벌을 쏘다녔으니 배가 고프다 못해 속이 쓰렸다. 이런 상태에서 여름 생낙지를 씹어 먹으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탈이 나지 않을까. 한 마리를 먹었는데도 든든했다. 허기가 싹 가셨다. 그래서 보양식이라 하는 모양이다. 여름을 넘기기 위해 삼복에 큰 낙지나 문어를 넣고 죽을 쑤어 먹지 않았던가.

앞서가는 아줌마를 조심스럽게 뒤쫓았다. 갯벌에서 꽃발을 딛는다고 하면 믿겠는가. 조금이라도 인기척이 들이면 낙지들이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애들이 소꿉장난 하듯 만들어놓은 갯벌로 만들어 덮어놓은 작은 무덤을 들추기가 무섭게 낙지를 집어내야 한다. 이렇게 잡는 낙지를 묻음낙지라고 한다.

▲ 묻음낙지 1- 낙지구멍을 찾아서
ⓒ 김준
▲ 묻음낙지 2 - 낙지구멍 확인
ⓒ 김준
▲ 묻음낙지 3 - 묻음 뚜껑 만들기
ⓒ 김준
▲ 묻음낙지 4 - 표시남기기
ⓒ 김준
갯벌에 물이 빠지자 세명의 아줌마들이 주전자와 40㎝ 길이의 손가래를 들고 장그지갯벌에 들어섰다. 장그지갯벌은 전남 신안군 지도읍 봉리마을 펄갯벌로 낙지잡이와 서렁게(칠게) 잡이를 많이 하는 곳이다.

갯벌에 들어선 어민들은 각자 갈 길로 흩어져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러다 한 어민이 갯골에서 낙지구멍을 발견하자 작은 손가래로 조심스럽게 파들어 갔다. 그리고 안에 맑은 갯물은 고여 있는 작은 웅덩이를 발견했다. 이곳이 확실한 낙지구멍이라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 웅덩이가 낙지들이 노는 방이라고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구멍 깊은 곳에 있던 낙지가 이곳으로 올라와 놀면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그 작은 웅덩이를 약간 크게 만들고 낙지구멍이 어느 쪽으로 뚫어져 있는지 확인한 후 갯흙으로 뚜껑을 만들어 덮어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것이라는 것을 표시한 후 낙지구멍이 뚫린 쪽으로 반원을 그려 놓는다.

▲ 묻음낙지 잡이는 갯벌을 파는 '손가래', 낙지를 담을 '주전자'가 필요하다
ⓒ 김준
▲ 묻음낙지 5 - 뚜껑열고 낙지꺼내기
ⓒ 김준
▲ 묻음낙지 6 - 낙지잡기
ⓒ 김준
그리고 다시 낙지구멍 찾기를 계속한다. 갯벌을 뻔질나게 들고 나는 나도 낙지구멍과 게나 짱뚱어 구멍을 구별하기 어렵다. 보통 10개의 무덤을 만들어 놓으면 낙지가 많을 때는 7~8개는 낙지를 잡을 수 있지만 오늘처럼 날씨가 무더운 날은 낙지들도 잘 나오지 않는다. 30여분을 헤매고서 겨우 2개를 발견했을 뿐이다.

뚜껑을 열던 아주머니가 팔을 갯벌에 쑥 집어넣고 빼기를 반복한다. 이런 경우는 낙지가 인기척에 구멍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거나 안에 있는 낙지를 압력으로 뽑아내려는 것이다. 뚜껑을 덮고 반원을 그려 놓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손을 집어넣어 낙지를 잡기 위함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 낙지가 구멍 속으로 들어갈 경우 구멍이 뚫린 쪽을 미리 확인해두어야 낙지를 따라가며 손을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을 받은 갯벌이 토해내는 열기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갯벌을 걷는 것도 힘든데 더운 열기로 아줌마들을 따라가기 더욱 어렵다. 겨우 몇 마리 낙지를 잡는 것을 보고 갯벌에서 나와 그늘에 몸을 숨겼다.

독살처럼 자연에 가장 가까운 고기잡이 방법인 '묻음낙지', 구멍을 확인하고 낙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다. 서둘러서 될 일도 아니다. 물이 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낙지가 움직이기를 기다려야 한다.

묻음낙지는 많이 할 때는 50여 개(묻음은 마리가 아니라 개수로 표시한다)정도 하기 때문에 낙지는 40~50여 마리 잡는다. 옛날에는 낙지만 아니라 대부분의 고기잡이 방법이 '기다림'이었다. 지금은 고기가 있는 곳을 어군탐지기와 GPS를 이용해 확인하고 쫓아가 잡는다. 지도읍 봉리 장끄지 갯벌에서 잡는 묻음낙지는 일반낙지에 비해서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이것이 진짜 '뻘낙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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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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