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열린 헌법재판관 인선 관련 토론회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열린 헌법재판관 인선 관련 토론회 ⓒ 신종철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에서 아깝게 탈락한 인사를 위로차원에서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예가 적지 않은데, ‘대법원이 헌법재판소 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법원에 1등짜리 판사를 보내고, 헌재에 2등짜리 판사를 보내는 관행은 하루 빨리 시정돼야 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8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개최한 ‘헌법재판소 18년,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구상한다’는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임지봉 서강대 법대교수는 이 같이 주장했다.

토론회에 앞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한상희(건국배 법대교수) 소장은 인사말에서 “찬밥신세로 치부돼 왔던 헌법을 헌법재판소가 탄생하면서 법질서가 제자리를 찾는데 기여하기도 했다”면서도 “그러나 정치권이 정치적 문제를 헌법재판소에 호소하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스스로 정치화돼 헌법적인 판단보다 정치적 또는 이념적 판단을 하면서 헌법이념 실천이나 소수자보호 등에 있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어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지 못할 때 흘러들어 가는 ‘저수지’와 같은 곳이 헌법재판소인데 헌법재판소가 그런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며 “오늘 자리는 헌법재판소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어떤 헌법재판관을 인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회”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제4기 헌법재판소는 인권보장 선도기관이 되느냐, 좌초하느냐의 중요한 분수령”

발제자로 나선 임지봉 서강대 법대교수는 먼저 “5명의 헌법재판관이 새로 구성되는 제4기 헌법재판소는 18년간의 노하우를 잘 살려 선진한국의 국민 인권보장의 선도기관으로 뿌리내리느냐, 아니면 보수화-귀족화의 덫에 걸려 국민적 신뢰를 잃고 좌초하고 마느냐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대교수
임지봉 서강대 법대교수 ⓒ 신종철
임 교수는 이어 헌법재판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무엇보다 헌법재판관의 ‘헌법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그는 “헌재의 많은 결정들을 보면 헌법 비전문가 재판관들에 의한 평의를 통해 판결의 결론이 먼저 나고, 판결 근거를 이미 내린 결론에 따라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일예로 “시각장애인 안마사자격 위헌결정도 7000명밖에 안 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보다 100만명에 육박한다는 무자격 마사지사들의 손을 들어줘야겠다는 결론이 먼저 서고, 여기에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라는 편협하고 평면적인 논리가 갖다 붙여졌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또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에 있어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서로 비슷한 대학을 나와 20대에 ‘소년등과’하고 엘리트 판검사로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법원장이나 검사장에서 바로 헌법재판관으로 발탁된 50~60대의 보수적 성향을 가진 남성들로만 채워져서는 발전이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로서 아깝게 탈락한 인사를 위로 차원에서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예가 적지 않다”며 “대법원이 헌법재판소 보다 한 위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법원에 1등짜리 판사를 보내고, 헌재에 2등짜리 판사를 보내는 관행은 하루 빨리 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교수는 나아가 “대법원장은 전체 법조의 우두머리인데 최고위법관 인사적체 해소 차원에서 법관 중에서만 헌법재판관을 임명한다면 대법원장 스스로 ‘법조 대표’가 아니라 ‘판사들의 대표’로 평가절하 하는 것인 만큼 대법원장은 법조 전체를 두루 살펴 재야변호사 중에서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아울러 “대통령도 헌법재판관 중 검사 출신이 1명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불필요한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검찰 출신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며, 또한 “장기적으로 헌법재판소법 제5조 등을 개정해서라도 변호사자격이 없는 헌법교수 등에게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헌법재판소 존재 이유는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있는데 우리 헌법재판소는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보호에는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판결로 일관하면서, 오히려 정치권에 해결을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한 고도의 정치적 사건들에는 겁 없이 뛰어들어 ‘거꾸로 가는 사법적극주의’의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사건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스스로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면서 중립적 권위를 훼손당할 수 있다”며 “헌법재판관이 자신의 보수적 성향에 다라 국회와 대등한 지위에서 정치적 논의과정에 참여하려는 것은 오만”이라고 일침을 가했다.l

임 교수는 또 “일부 헌법재판관들의 태도를 보면 아집과 독선, 근거 없는 권위의식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퇴임한 한 재판관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고지선의 결정’이라 칭하면서 무오류의 결정을 비판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향해 ‘지각없는 행위를 자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지만, 헌법해석과 헌법재판에는 더 많은 재판관이 지지하는 설득력 있는 답은 있을 수 있어도 ‘만고불변 정답’은 있을 수 없다”며 “지고지선의 결정이란 미안하지만 그 재판관 자신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임 교수는 그러면서 바람직한 헌법재판관 인선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무엇보다 ‘헌법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소수자와 약자보호에 치중하는 사법적극주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아집과 독선 대신 개방적 사고를 가진 넓은 시야의 재판관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성향도 고려해 가면서 헌법재판관을 뽑아야 하며, 또한 이번에는 적어도 현직 판검사를 헌법재판관 후보군에서 배제하고 재야인사를 뽑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권 글쎄?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전북대 송기춘 법학교수는 “발제자의 주장처럼 헌법교수에게 일정한 몫이 배정돼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다”며 “중요한 것은 건강한 헌법정신과 인권감수성을 가졌느냐 이지 해박한 헌법적 지식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송 교수는 이어 “헌법재판의 특수성과 헌법 전문성을 고려해 기성 법률가가 갖는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15년 이상의 경력을 갖는 실무법률가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국가, 민주주의, 인권에 관한 건강한 헌법정신과 인권감수성을 가진 전문가면 재판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헌법재판소법과 법원조직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의 이헌(변호사) 사무총장은 “발제자가 제기한 다양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보호의식, 인권감수성 등도 헌법재판관의 인선기준으로서 필요한 가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이런 가치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헌법재판소 본래 기능인 헌법수호기능이 퇴색될 우려가 있고, 헌법재판에 있어서도 요구되는 헌법재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특히 “대통령은 대다수 언론의 거센 비난을 무릅쓰고 자신의 사법시험 동기이면서 대통령 탄핵사건과 행정수도 헌법재판에서 대리인 역할을 한 인사를 헌법재판관으로 관철시켰다”며 “헌법재판소가 현 정권과 코드 및 개인적인 인연 등의 인사들 일색으로 구성된다면 권력분립의 원리에 기초한 헌법정신이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병래(변호사) 사법위원은 “법원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을 지정함으로써 헌법재판관의 3분의 1은 법원 출신의 승진인사 성격을 띠는 것이 현실”이라며 “대법원장의 지명권이 헌법재판소의 성격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사법위원은 또 “헌법재판관 지명은 정치세력이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같거나 유사한 자를 헌법재판 절차에 참여시키기 위해 각축하는 과정인데 헌법재판관 자격요건과 같은 제도적 문제점과 지명권을 가진 제도 정치권의 정치적 미성숙으로 인해 진보진여의 입장에서 진보적 성향의 인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낸 황도수 건국대 법대교수(변호사)는 “발제자가 밝힌 헌법재판관이 갖춰야 할 헌법 전문성은 국가경영의 전문성으로 폭넓게 봐야 한다”며 “따라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고 국가 전체를 생각할 수 있는 인사가 헌법재판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이어 “헌법학자를 떠나 행정가, 경제가 등이 헌법재판관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들에게 부족한 헌법지식은 좋은 헌법연구관의 충원으로 보충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