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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이은경 기자] 대학을 진학하고자 하는 탈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당사자들과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다. 반면, 현행 지원제도에선 고졸 의무교육 단계에까지만 적용돼 많은 아쉬움을 낳고 있다.

관련된 전체 통계는 아직 없지만, 현장 활동가들의 전국 단위 모임 등에선 2004년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탈성매매를 거쳐 대학을 꿈꾸는 여성의 수가 2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탈성매매 여성들의 교육 진로 통계를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인천여성의전화'측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에 걸쳐 탈성매매 여성 지원사업소와 상담소 등에서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취득한 여성은 총 5명, 이 중 실제로 대학까지 입학한 여성은 1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장 활동가들은 도대체 왜 탈성매매 여성들의 대학 진학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입을 모을까.

우선, 탈성매매 이후 삶의 비전을 전환하는 데 '대학'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기본적으로 십여 년이 넘게 피해의식과 폐쇄강박증에 시달렸던 탈성매매 여성들이 일단 대학 진학을 꿈꾸기 시작하면 당당해지는 것을 목도하기에 앞뒤 사정 재지 않고 "합격이나 해라, 어떻게든 학비 대줄게"란 말이 절로 나온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이미 고교 졸업생이나 대학생이 성매매 현장으로 유입되는 추세이기에 "(성매매 전력이 있는데) 의무교육이나 마치면 다행이지" 식의 사고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고실업 시대, 3D 업종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탈성매매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대학을 꿈꾸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하고 성매매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는 설명이다.

조영숙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 소장도 "대졸 여성 실업률도 높긴 하지만, 대학 진학 등을 통해 탈성매매 여성들이 다양한 돌파 경로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관 부서인 여성가족부 담당자는 난색을 표한다. 직업훈련 지원조차도 버거운 예산 확보의 한계와 다른 취약계층 여성에 대한 지원에 있어서의 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실제로 복권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성매매 피해자 구조지원 사업의 경우, 2006년 실시되고 있는 예산 총 31억9000만 원 중 의료 지원액이 11억 원, 법률 지원액이 11억5000만 원인데 비해 검정고시 자격 취득을 포함한 직업훈련 지원액은 9억4000만 원에 불과하다. 이 관계자는 탈성매매 여성들의 대학 지원에 관한 얘기는 2004년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계속 있어 왔지만 "현재로선 조심스럽게 문제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한편, 탈성매매 여성들과 현장 활동가들은 "지원 기금이 당장 어렵다면, 대부분 신용불량자라 학자금 융자의 길이 막혀 있는 여성들을 위한 한시적인 융자 조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들은 구체적인 지원 통로만 생긴다면 탈성매매 여성들의 대학 진학 현상은 급격히 가시화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다녀도 등록금 때문에…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요"

▲ 탈성매매를 넘어 대학 진학을 이룬 A씨. 2학기 등록금 마련이 불투명해진 요즘에도 "해외유학까지도 갈 수 있을 거야"란 응원을 아끼지 않는 동료들 덕분에 희망을 꺽지 않고 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가도 내가 포기해 버리면 옛 동료들이 '거 봐, 그 주제에 아직까지 대학은 무리야'라고 할까봐, 또 예전 업주들이 '재, 그럴 줄 알았어! 니네들도 아등바등 해봤자 재처럼 될 수밖에 더 있어' 할까봐, 차마 포기 못하겠어요…. 내 인생은 내 거지만, 날 보는 여러 시선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같은 처지 여성들에게 희망을 꼭 주고 싶은데…."

탈성매매 후 반 년 남짓, 지난 해 검정고시 준비 한 달 만에 대학입학 시험자격을 취득, 올 봄 학기부터 4년제 대학 사회복지 계열에 입학해 다니는 A씨의 대학 계속 진학을 향한 소원은 절절하다. 입학등록금은 한 복지재단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마련했지만, 지속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 8월 중순으로 마감되는 2학기 등록금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에 A씨의 딱한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그가 대학에 다니는 의미가 여느 여대생들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천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후원계좌를 개설해 힘을 모으는 한편, 정서적으론 'A 대학학업 지속사업' 프로젝트로 똘똘 뭉쳤다.

한 현장활동가는 "몸도 나쁜데, 얼마나 열심히 했다고요. 커피를 사발씩 들이켜 가며, 쉼터 동료들을 행여 깨울까 봐 방에서 살짝 나가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밤을 새워가며 공부해 얻은 결과인데…"라고 눈시울을 붉히며 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우리 활동가들 월급 다 '압수'해서라도 꼭 A가 대학 계속 다니는 모습 보고야 말 거예요"라고 재차 다짐했다.

"같은 처지 여성들에게 역할모델 되고파"

"지원을 구하려면 성매매 피해여성이란 사실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러면 벌써 한 발짝들씩 뒤로 물러나는 것이 확연히 느껴져요. 너희가 스스로 택한 직업이라며, 후원금은커녕 정부에서 지원하는 데 들어가는 자기 세금도 아깝다는 식이예요.

장애인, 노인에다 요즘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까지 마음을 활짝 열곤 하는데, 이들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통념의 벽이 너무 높다는 걸 실감하곤 해요. 그래서인지 여러 지원기금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요."

곁에서 지켜보는 동료로서의 억울함이다. 이제 30대 초반이 된 A씨가 성매매 현장에 유입된 때는 불과 16살 때. 주먹을 수시로 휘두르는 가부장적 아버지와 가난을 피해 집을 뛰쳐나와 방적공장 부설 산업체 학교에서 6개월 남짓 잠깐 여고생 교복을 입었었다.

학업에 근무에 잠이 모자라 잠깐 조는 틈에 실 자르는 칼에 손을 다쳤고, 상사에게 산재 치료 기간을 좀 넘길 수밖에 없는 손 사정을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무단결근으로 처리돼 자동 퇴사 당했다. 가출하기 전부터 "여자는 읽고 쓸 줄만 알면 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 때문에 더욱 더 커져만 갔던 향학열은 어이없이 꺾여 버렸다.

"사람들은 이해 못할지 모르지만, 갈 곳 없이 떠돌 때, 길거리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월수입 200 보장, 숙식 제공, 가족같은 분위기'란 문구가 얼마나 눈에 잘 들어오는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죠."

이후 A씨는 15년간을 미아리, 파주, 수원, 완월동, 숭의동 등 집결지를 떠돌았다. 성매매방지법 발효 당시엔 업주들의 앞잡이로, 성매매방지법 반대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매매방지법의 기세가 수그러들 줄 모르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성매매방지법을 밤 세워가며 공부했고, 다만 몇 푼이라도 벌고자 안마시술소 카운터로 자리를 옮겨 일하기도 했다. 동시에 C형 간염, 스트레스성 피부염, 만성중이염, 위염 등 온갖 잠재돼 있던 병들이 터져 나오면서 건강도 심하게 악화됐다.

이때 탈성매매를 결심하게 됐고, 쉼터를 거치면서 인천여성의전화 탈성매매여성 지원사업에서 현장 활동가로 일하는 것을 꿈꾸게 됐고, 이 꿈은 대학 진학으로 곧장 이어졌다. 현장 활동가가 되려면 최소한 고졸 이상의 학력이 필요했던 것.

현장활동가들 "내 월급 털어서라도 학업 지원을" 똘똘 뭉쳐

"한 성매매 피해여성이 상담하는 것을 들으며 속 터지는 줄 알았어요. 상담원이 업주가 강제로 물린 선불금을 안 갚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 여성은 계속해서 '갚아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나도 같은 경험자인데…'라며 말을 시작하자 그제야 그 여성이 마음 문을 열고 말이 통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했죠, 이들을 잘 아는 내게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 좀 더 잘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요."

A씨의 대학 진학 이유는 간결하고도 분명하다. "비록 (성매매 현장)출신자지만, 사회적 절차 다 밟아 이렇게 당당히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특히 "같은 처지의 여성들에게 하나의 역할모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성매매 현장에서 은연중 길러진 폐쇄성과 피해의식을 극복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며, 남들처럼 정상적인 조직 생활을 영위하며 열심히 일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아무리 어려워도 나처럼 대학 문을 두드려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성매매 현장에서 자신보다 강자에겐 무조건 엎드려야 한다는, 권력지배적 주입식 세뇌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자기주장이란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를 다시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또 하나, 생계벌이 이상의 다른 비전을 가져보고 싶은 것도 절실한 이유다.

"탈성매매 여성들에게 손톱 손질이나 미용기술로 자활해 보는 게 어떠냐고 권해보세요. 십중팔구는 즉각 '전 그런 거 하기 싫어요, 이제까지 그것만 해왔는데'라고 할 거예요. 왜 성매매 전력 여성들은 이 사회가 소모적 일꾼으로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비록 과거는 그렇더라도 좀 더 전문화된 인력으로 만드는 시도를 한 번쯤은 해볼 수 있지 않겠어요? 오죽하면 성매매 현장으로 갔을라구요. '성매매' 딱지를 붙여 다른 여성들이 마다하는 일 쪽으로만 밀어붙이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탈성매매 여성도 새 삶에 대한 희망은 꿈꿀 수 있잖아요?"

학점 우수..."기대하는 눈 많아 더 열심히 할 것"

A씨는 지난 1년 간 매달 40여만 원의 생계지원비를, 또 3백여만 원의 의료지원비를 받았다. 지원 기간이 끝난 후엔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지원팀에서 월 70여만 원의 지원비를 받고 인천여성의전화 현장활동가로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일하고, 그 후엔 대학에서 꼬박 수업을 받는 고된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그 70여만 원의 생활비도 월세, 밥값, 교통비, 그리고 최소한의 책값 등에만 써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학비를 위한 저축은 아직은 먼 미래다. 그래도 "행복하기만 하다"고 웃는다. "탈성매매한 순간부터 누구에게라도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고, 이런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존중해 주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즐겁게 최선을 다한 덕택인지 1학기 학점도 4.5 만점에 3.9를 훌쩍 넘는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비록 장학금은 놓쳤지만.

"어떻게 저토록 열심히 살 수 있을까, A씨를 보며 많이 배우곤 해요. A씨를 주시하는 같은 처지의 여성들이 인천 한 지역에만도 무척 많은데, A씨의 선례를 따라 자신 같은 제2의 피해자를 안 만들겠다며 사회복지 전공을 목표로 소리 없이 대학 준비를 하는 여성들도 10여 명 되는데. 그가 포기하면 넘어질 여성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서 우린 A씨의 대학 졸업 완수를 한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걸로 보지 않아요."

어쩌면 A씨보다도 더 학업 포기를 못 견뎌 할 동료 현장활동가의 입장이 이해됐다.

"당신들 말대로 성매매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거였지만, 지금 충분히 그 대가를 치루고 있고, 최선을 다해 그 세월에 대한 빚을 갚고 있어요"라고 당당히 말할 A씨의 미래를 그려본다.

문의 인천여성의전화 탈성매매여성자활지원센터 최박미란 소장 032)527-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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