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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저 바위에 새겨진 거 보여?”

뒤따라 내려오는 준수를 돌아보며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녀석의 시선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인기척에 놀란 다람쥐가 쪼르르 달아나는 걸 보고 "야, 다람쥐다!" 소리치며 다람쥐가 사라진 곳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습니다.

“내 말 안 들려?”
“아빠, 나 불렀어요?”
“그래, 저기 바위에 새겨진 것 보이지?”
“잘 안 보이는데….”

안내판에 의하면 고려시대 만들어진 공양보살상이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 꼼꼼히 살펴보면 공양보살의 전체적 모습과 옷 주름까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새긴 거예요?”
“공양보살이야.”
“그게 뭔데요?”
“어떤 모양인지 잘 봐.”
“앉아 있어요.”
“어떻게 앉아 있지?”
“한 무릎은 땅에 대고 다른 무릎은 세웠어요.”
“손은 어떤 모양이야?”
“뭘 들고 있어요.”
“그걸 누구에게 주고 있는 거 같지 않아?”
“맞아요.”

정성이 담긴 음식이나 꽃 등을 바치는 보살을 공양보살이라고 한답니다. 준수 녀석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었더니 대뜸 엄마 같은 사람이 공양보살에 딱 어울린다고 합니다. 머리 좀 컸다고 엄마 앞에서 목청 높여 대들기도 하는 녀석이지만 이럴 때 보면 대견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요. 자신보다 가족을 더 위하며 사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살아있는 공양보살이겠지요.

ⓒ 이기원
“아빠, 근데요.”
“왜?”
“저기 보살상 몸에 구멍처럼 파인 건 왜 그래요.”
“그건 총을 쏜 자국이래.”
“허걱, 누가 총을 쐈어요?”
“그건 나도 몰라.”

공양보살을 향해 총을 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지금 그걸 알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없습니다. 공양보살상에 대한 반감에서 쏜 것인지 무작정 방아쇠를 당겨본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건 어느 정도 조준을 해서 쏘았다는 것입니다. 총탄의 흔적은 대부분 공양보살의 몸 안에 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쏘았는지, 왜 쏘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양보살상의 몸에 남아있는 총탄의 흔적 속에 격변의 역사 속에 쓰러져간 수많은 이들의 고통스런 삶의 자취가 담겨있을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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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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