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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당 미사시간에 맞춰 목욕탕을 나왔다. 길 건너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의 빨간 종탑을 바라보면서 5분여 걸으니 성당 입구에 다다르게 되었다. 입구에선 3~4명의 교우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시간이 10시 30분. 아직 미사 시간까지 30여분의 여유시간이 있었다.

입구에서 받아쥔 주보를 펼쳐 가벼운 마음으로 제목부터 내려보다가 작가의 칼럼란에 시선이 꽂혔다. 제목이 다소 유별나다고 생각한 나는 '살아 있어서 미안합니다'로 시작되는 작가 유홍종님의 기고를 읽었다.

엊그제 암 투병중인 친구를 만났다. 두 달 밖에 살 수 없다는 첫 진단이 나왔을 때 그 친구는 말했다.

'엊그제까지 말짱 했는데 하루 아침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으며, 어떻게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암이 퍼질 때까지 감쪽같이 몰랐으며, 그런 일은 늘 남의 얘긴줄만 알았는데 어찌 나한테 일어났단 말인가?'

그는 가망도 없는 방사선 치료를 포기하고 가족들에게도 지금까지 못했던 말들을 모두 고백했으며, 유산정리도 끝냈다. 술과 담배도 끊었고, 사업도 접었으며, 좋아하던 음식도 골프도, 심지어는 약들이며 주위에서 추천하는 식품들과 치료법들도, 삶에 대한 애착도 끊었다.

그는 미워했던 사람들과 화해했고, 용서해야 할 일과 용서받을 일들도 모두 끝냈다. 심지어는 자기 암세포에게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도 살자고 나한테 빌붙었는데 나갈 것도 아니라면 그냥 사는데까지 사이 좋게 살아 보자"며 암까지 친구로 만들었다.

그는 소홀했던 성당도 나갔고, 지금까지 지은 죄를 통회했으며 남은 시간이나마 하느님께 순명하며 살기로 약속하면서 말했다. "나는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불만도 없고, 슬픔도 없습니다. 결국은 떠나야 할 세상, 좀 더 사는게 무슨 대수 이겠습니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까지는 죽어 있었고, 이제 본래로 되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살면서 손해난 것도 없는데 무었이 아까우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산 것만도 감사합니다.

친구는 아침이 되면 '오늘도 살려주시나 보다' 하고 기도했고 해가 지면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하면서 어제 썼던 유서를 찢고 오늘의 유서를 다시 쓰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런 중에 자기 병을 그토록 걱정하며 울던 몇 친구를 먼저 보내기도 했다. 그 친구들이 자기 대신 먼저 간 것이 아닐까 해서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나는 생각했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작고 1주기가 되었을 친구가 아직도 살아있고 아무렇지도 않던 친구들이 먼저 가는 것을 보면, 죽고 사는 것은 의사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오묘한 비빌의 법칙 속에 있다는 걸.

지난 번 만났을 때 그 친구가 말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볼때마다 말은 안 하지난 '너 아직도 안 죽었어?' 하는 것 같아서 지금은 살아 있는 것이 미안하다고. 담당 의사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사진을 한 번 더 찍어보자는 말을 했는데, 그만 두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칼럼을 읽은 나는 미사중 내내 한 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을 느끼면서 미사를 마치고 성당문을 나섰다.

교통정리 했던 교우들은 먼저 귀가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차들은 빵빵거리며 빠르게 달아난다. 이제 미사 후의 귀갓길 교통정리는 하느님 몫이겠거니, 중얼거리며 시장통의 길로 접어드니, 다시 사람 사는 냄새가 무르익어 간다.

찌들어 산패된 기름 냄새가 역겹게 코를 찌르고, 앙망불급의 낙원을 좇아서 촌각을 다투어 사람들은 달려나가고, 그 무리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내가 코드를 맞추어가야 한다고 짐짓 생각하니 머릿속엔 조금 전 주보에서 읽었던 암 투병기가 아이러니 하게 비아냥거리듯 손벽을 쳐온다.

어쩌면, 인간은 매일 만기 없는 유서를 쓰고 찢고 반복하면서 살아가다가 떠날 때가 되면 정녕 미워했던 사람들과 화해하고 불만도 슬픔도 다 비우고 아무 미련도 없이 훌훌 빈 손으로 떠나버리는 것을. 왜들 그렇게 부산들을 떨어대는지.

덧붙이는 글 | 앞서 송고했던  '성당 가는 길'을 수정 첨삭 한 것입니다. 새로운 닥터님 도 친절하셔서 복많이 받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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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외국어번역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계층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접하기도 하여 만평을 적어보고자 회원에 가입했고 그간 몇 꼭지의 기사를 올린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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