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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마데로 전 대통령(왼쪽)과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근 청와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해 취재협조 거부를 선언했다. 그 이유는 이백만 홍보수석이 이 두 신문들을 "사회적 마약"으로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오늘 1면 기사에서 국가원수를 먹는 음식에 비유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논설위원 칼럼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약탈정부'로 명명했습니다. 기사 곳곳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섬뜩한 증오의 감정이 깊이 묻어 있습니다. 해설이나 칼럼의 형식만 띄고 있을 뿐 침뱉기입니다."

이러한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 해당 신문사들도 점차 정부 비판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우려할 만한 것은 <조선일보>의 2006년 8월 2일자 인터넷판 사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문은 당일 13명의 전 국방장관들이 모인 간담회를 논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국민들은 사실이 이런데도 이 정부가 자주라는 선동적 구호 하나를 외치며 작전권 환수를 밀어붙이겠다면 더 이상 이 정부를 국가 안위를 책임지는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형법상으로 저촉되는 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매우 극단적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특히 군부의 과거 수뇌들을 언급하는 사설에서 제출한 것이어서 더욱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맥락으로 볼 때 현 정부가 자신들이 설정한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한 주체는 13명의 전 국방장관들인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보도에도 이들이 그렇게 명시적으로 주장했다는 보도가 없는 것을 보면 실제적으로 이 주장은 이 신문의 입장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2006년의 한국 상황이 어쩌면 그리도 1913년의 멕시코 상황과 닮은 점이 많은지 중남미 정치를 다루는 필자가 보기에 놀랄 정도이다. 물론, 아무리 한국의 정치가 후진적이라고 하지만 수십 년 전 멕시코의 정치와 비교한다는 게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멕시코를 예로 들던, 로마를 예로 들던, 미국을 예로 들던,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사례는 유익하다.

몇 해 전에 <멕시코혁명사>를 출간하면서 필자는 이 저술이 "멕시코 혁명에도 이승만과 장면과 박정희가 있다. … 멕시코인들의 역사적 경험을 나눔으로서 우리의 삶을 보다 값지고 풍부하고 지혜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시간과 공간 상 여러 가지 제한이 있겠지만 본질의 유사성을 생각하면 우리의 올바른 공동체적 선택에 참고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1913년의 멕시코 상황이란 멕시코의 1차 혁명기를 의미한다. 멕시코혁명은 1차와 2차로 나뉘어져 있는 데, 1차는 1910년에 마데로란 인물이 주도했고, 2차는 1913년에 비야와 사파타와 카란사란 인물들이 이끌었다. 판초 비야나 에밀리아노 사파타는 할리우드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도 꽤 소개된 인물들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무익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만일 1차 혁명이 성공했다면 이보다 훨씬 더 유혈적이고 파괴적이었던 2차 혁명은 불필요했을 것이며 멕시코는 현재 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1차 혁명기를 이끈 프란시스코 마데로란 인물은 당시에 변호사였고 온건한 자유주의자였으며 시장선거와 주지사선거에서 차례로 실패하고 마침내는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여 성공한 인물이었다. 하급선거에서 실패할수록 더 상위의 선거에 도전하는 이유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당시 디아즈 통치 하에서도 하급선거의 향방은 중앙의 공천에 의해 판결이 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멕시코혁명을 초래한 호세 델 라 쿠르즈 포르피리오 디아즈 대통령의 통치는 1876년부터 1910년에 이르기까지 34년간 지속된 장기집권이었다. 그는 프랑스의 외침을 격파한 전쟁 영웅이었으며, 멕시코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불렸고, 급속한 경제성장의 공로를 인정받고 있었다. 문제는 그의 근대화 정책이 극심한 정치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하였고 이를 유지하려는 기득권과 함께 종신집권을 꿈꾸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배층에게는 천국이었지만 피지배층에는 지옥인 모순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마데로는 이 모순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정부 공격세력이 곧 선이 돼버린 1910년

1910년 10월 25일에 혁명의 깃발을 든 지 일 년 만에 마데로는 멕시코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마데로는 자유민주주의자였으며 법률가였다. 그는 민주적으로 채택된 법률로 통치를 하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자유민주선거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마데로식 민주주의의 핵심이었다. 그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이며 급격한 토지개혁을 주장하는 혁명세력들을 점차 멀리하였다. 따라서 구체제의 기득권층은 부와 권력을 그대로 지킬 수 있었고, 혁명이 한 역할은 단지 마데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마데로의 민주주의를 가장 맘껏 누린 사회세력은 멕시코 언론이었다. 디아스의 가혹한 검열과 탄압 하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멕시코 언론들은 마데로 정부가 제공하는 무제한의 언론 자유를 마데로 정부에 대한 공격의 시험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연일 정부의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있었으며 각종 유언비어와 풍자로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에 대하여 정부가 불만을 표시하면 이것은 독재정치의 표징이었다. 점차 정부를 공격하는 세력들은 선이요 정부는 악이라는 극단적 히스테리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불네스의 다음 서술이 이를 요약하고 있다.

"오직 마데로만이 악 그 자체였다. <엘 에랄도>지에 따르면, 그는 밟아버려야 할 양서류이고, <라 트리부나>지에 따르면 결국에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며, <엘 마냐나>지에 따르면 당장 축출되어야할 정권이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 신문들의 대부분은 교회나 대농장주들의 소유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마데로가 언급하는 토지개혁과 사회정의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참을 수 없었다. 사실 마데로의 토지개혁과 사회정의는 단지 말뿐이었으며 법과 절차에 따라 미래에 점진적으로 달성할 목표라고 강조되었지만 그들은 그 조차도 용납할 수 없었다.

멕시코의 대다수 언론들이 마데로를 규탄하기 시작하자 혁명 초기에는 마데로에 열광하였던 국민들도 이러한 증오의 물결에 동참하기 시작하였다. 국민들로서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언론에게 세뇌당했다기보다는 마데로의 통치에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1913년 2월 17일 디아스의 충직한 신복이었고 지금은 마데로의 군참모총장인 우에르타 장군이 쿠테타를 일으켰다. 2월 22일에 마데로 가족과 부통령이 살해당했다. 마데로는 너무 쉽게 대통령직을 얻었기 때문에 정치를 만만하게 보다가 결국 자신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희생했다. 그리고 멕시코 전역을 27년간 피로 물들인 2차 혁명이 시작되었다.

멕시코의 언론들이 디아스의 독재 치하에서 언론다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데로의 민주통치 하에서 참여폭발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1913년의 멕시코 정치를 히스테리적 상황으로 이끈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는 교양과 절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언론의 속성상 무제한적 언론의 자유는 자극적 보도의 경쟁을 통해 결과적으로 언론의 자유 자체를 해치는 방종에 이르기 쉽기 때문이다.

1913년의 멕시코 상황은 언론의 방종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에르타의 쿠테타가 성공하자 멕시코의 영자신문인 <멕시코 헤럴드>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우에르타 만세! … 일 년 간의 무정부 시대가 끝났다. 역시 멕시코에는 군사독재가 훨씬 잘 어울린다."

"멕시코에는 군사독재가 잘 어울린다"고 외치던 언론

▲ <조선일보> 7월 29일자 보도.
불행하게도 멕시코 언론은 그들의 방종에 상응하는 보응(報應)을 받았다. 멕시코 언론은 이 때 이후로 최근까지 한 번도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누려본 일이 없다고 평가받고 있다.

최근의 한국 상황을 보면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는 소중한 가치이다. 그리고 이 가치는 현실적으로 이것을 보장하려는 정부가 있으므로 가능하다. 단지 특정한 세력의 정치적 이해에 봉사하기 위해 정부 자체의 권위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심지어 전복을 주장하는 듯 한 언사를 남발하는 것은 일개 정권의 차원을 넘어 체제 전체의 위기를 초래하는 방종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이 조장하는 정치적 히스테리는 최근 극에 달해 있다. 이미 지적된 바의 공식 칼럼들에 "계륵", "약탈 정부", "체제 부정", "도둑 정치" 등의 용어가 등장하는가 하면, 어떤 신문의 인터넷 판 기사 평에는 "패대기쳐야", "건달정부", "버러지", "개구리", "썩은 나무토막", "맹물장사", "개xx놈", 등의 대통령을 지칭하는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매사는 "친북좌파"나 "수구꼴통"과 같은 극단적 개념들로 환원되고 있다. 1913년의 멕시코 언론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내용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과 멕시코의 가장 큰 차이는 분단 상황이다. 멕시코는 체제적 모순이 극에 달하면 폭력적 혁명으로 교정할 기회가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난 날 많은 체제 위기의 국면에서 피차 절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상황에 대한 인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권력의 향방은 민주적으로 정해진 법 절차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체제 부정의 히스테리 국면으로까지 몰고 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싶다.

현 정부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구성되었다. 다음 정부는 다음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구성하면 된다. 혹은 헌법을 바꾸어 의원내각제로 개편할 수도 있다. 어떤 종류의 정부를 구성할 것이냐 하는 것은 그때 그때의 논의를 거쳐 국민 다수가 던진 표에 의해 결정하는 게 좋다. 그리고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심판이며 국민주권의 원리이다. 우리가 합법적으로 뽑은 대통령을 그렇게까지 모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세력이 더욱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 혹시라도 다른 변수가 생기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 언론이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당파적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위험을 초래하는 방종이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이라도 손해를 볼 판이면 차라리 판 자체를 뒤집어엎자는 극단적 생각은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은 생각이며 법에 따른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지금은 다들 히스테리를 가라앉히고 이성과 절제의 덕을 되찾을 때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백척간두를 달리고 있고 매번 우리가 초래하지 않은 위기들이 반복되고 있다. 국가가 일치단결하여 나아가더라도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때에 권력의 획득과 상실을 둘러싼 히스테리로 밤낮을 지새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공개적인 언론 행위는 말을 가려서하고 책임질 행동에는 책임을 지는 게 좋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논점을 이전시키는 행위, 언론의 자유를 남용하는 행위는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상 이러한 분별력 없이 어떤 사회가 좋은 나라를 만든 예를 찾을 수 없다.

이 점이 필자가 2006년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1913년의 멕시코를 소개하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신문인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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