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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1일 국회 교육위 회의에 출석한뒤 의사당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당연한 사퇴인가, 억울한 희생인가. 김병준 부총리는 "대부분의 의혹은 해소되었다"면서도 "국정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퇴한다고 했다. 의혹들이 해소되었다면 왜 사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마녀사냥식 여론몰이 때문에 억울해도 사퇴해야 했던 것인가. 김 부총리의 말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집단적 무고행위로 고발당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토록 이성적 사유가 마비된 곳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물론 김 부총리는 절반은 억울했다. 하지만 절반은 책임을 져야했다.

억울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세상이 다 알다시피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다. 그러하기에 그에게는 어쩌면 세상에 가장 엄격할 지 모르는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었다. 이를테면 일종의 '괘씸죄'가 적용되었던 셈이다.

그동안 대학사회에 만연했던 행위들을 마치 그 혼자만 한 것처럼 온 나라가 떠들썩해진 것이다. 이번에 적용된 잣대로 교수출신의 국회의원이나 장관들을 심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도 김 부총리만이 연구윤리를 위배했던 학자로 취급된 것은 노 대통령 측근이기에 가해진 편파적 공세라 할 수 있다. 그 점에서는 김 부총리가 억울함을 주장해도 할 말이 없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도덕불감증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 부총리에게는 분명히 책임져야할 일들이 있었다. 억울함의 영역과 책임을 져야할 영역은 냉정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판단에 혼란이 없다.

어떤 일들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인가. 김 부총리는 '대부분의 의혹'은 해소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말 '대부분의 의혹'은 해소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김 부총리 스스로의 주관적 해석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다독거리려는 여권 관계자들의 '립 서비스'였을 뿐이다.

여러 정황상 표절의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되지만, 지도교수와 제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같은 소재의 논문을 발표한 것은 여전히 부적절해 보인다.

논문의 중복 게재는 결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문제이다. 김 부총리가 재직했던 대학의 학술지라고 예외가 아니었음도 이미 확인되었다. BK21 연구실적의 이중보고는 김 부총리 자신이 인정한 대로 그의 책임이다.

자신이 논문지도를 하는 성북구청장으로부터 연구용역을 수주한 것도, '거래'의 성격이든 아니든 간에, 그 자체가 부적절한 행위였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 김 부총리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다'는 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피해가는 것은 도덕적 불감증이다.

그런데 어째서 대부분의 의혹이 해소되었다느니, 학자로서의 명예를 되찾았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지 알 길이 없다. 이 나라 학자들의 명예는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는데서 찾아지는 것이란 말인가. 김 부총리가 적어도 파렴치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님은 확인되었지만, 반대로 대학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답습했음도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이번 파문은 김 부총리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대학사회에 만연해 있는 윤리적 불감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논문 표절, 중복 게재, 논문 쪼개기, 연구실적 부풀리기, 무임승차식 논문 게재, 연구비 이중수령같은 '관행'들이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대학사회의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교수는 몇이나 될까

이번 논란 과정에서 다수의 대학교수들이 가치판단을 유보하는 반응을 보였던 것도, 이러한 관행이 얼마나 광범하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제는 대학교수 출신의 교육부총리가 나올 수 없게 될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이다.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울 교수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냉소이다.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명백하다. 대학사회의 연구윤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토론이 진행되어야 하고,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적인 개혁이 따라야 한다.

김 부총리는 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며 교육부를 떠났어야 했다. 김 부총리 역시 대학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답습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랬다면 자신은 그러한 논란들로 인해 물러나지만, 차제에 우리 학계의 연구윤리가 제도적으로 강화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공동의 숙제를 내놓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준비도 제대로 못 해온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할 얘기 다했다고 만족해하며 홀가분해하는 모습은, 적어도 교육부총리로서 보일 마지막 모습은 아니었다. 그를 교육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대학의 개혁'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명예를 지키는데만 매몰돼 정작 이번 파문이 던져준 근본적 숙제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는 김 부총리의 모습. 그는 과연 자신이 답습한 '관행'에 대해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물러나는 것일까. 그가 마지막까지 그렇게 당당하기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 대한 성찰적 문제의식이 사실상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교육부총리의 책임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의 퇴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면 결국 '김병준 파동'은 한 개인을 둘러싼 일회성 소동으로 끝나버리고, 아무런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될 지 모른다.

'관행'에 익숙해져 있는 대학사회에서는 아무런 자정의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침묵만 흐르고 있다. 물러나는 교육부총리는 의혹이 해소되었다며 별 문제 없었음만 강조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과연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김병준 파동'은 매듭지어지는 모양이지만, 막상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모습이다. '김병준 파동'의 결말이 개운치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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