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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에 붙어 있는 분양 안내문. 아파트가 재테크 수단이 되면서 전체 주택의 50%를 넘어섰다.
ⓒ 태윤미

1985년만 해도 전체 주택 중 13.5%이었던 아파트 비율이 2000년에는 47.7%로 늘었으며 현재는 5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건교부의 2005년 전국 주택건설(인허가기준) 총계에 따르면 국내 전체 주택의 50%가 아파트이고 주택공급의 80% 이상이 아파트다.

이처럼 한국에는 지난 10여 년간 아파트만 공급되는 독특한 구조의 주택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런 공급구조가 수십 년간 더 지속된다면 단독주택은 ‘희귀 건축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아파트공화국’은 지속 가능한 것일까? 지난 달 28일(금)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여름특강 ‘우리시대 삶의 공간, 아파트’ 네 번째 강의 ‘뜨는 아파트, 지는 아파트’에서는 한국의 특수한 주택문화 즉 ‘아파트 공화국’을 분석했다.

한국 아파트의 역사

강의를 맡은 차학봉 <조선일보> 부동산팀장은 한국의 아파트 문화가 매우 독특한 것임을 지적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아파트는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용 아파트의 형식으로 도시 근교에 지어지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서민주택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고급주거 수단의 상징이다. 한국의 아파트가 처음부터 재테크 상품 혹은 고급 주거 수단의 상징이었을까?

▲ ‘우리시대 삶의 공간, 아파트’ 네 번째 강의를 맡은 차학봉 조선일보 부동산팀장
ⓒ 태윤미
한국 최초의 아파트는 1932년 서울 충정로에 지어진 5층짜리 유림아파트. 광복 후, 1961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마포지구에 도화아파트를 건설하면서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70년대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서울 인구 집중이 가속화되자 정부는 서민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싼값으로 대량공급이 가능한 시영아파트, 주공아파트들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의 주택문화와는 확연하게 다른 아파트가 주거문화로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1970년 4월 서울 마포구 와우시민아파트가 붕괴되면서 아파트는 부실공사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기까지 했다.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강남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부터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강남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현대아파트는 41개 동 총 3529가구로 이루어진 대단지로 76년부터 79년까지 순차적으로 준공되었다. 이전에 10∼20평형으로 지어졌던 아파트가 32∼80평형으로 당시에는 보기 드문 대형 평형위주로 지어진 것이다.

특히 78년 화제가 됐던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사건은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 사건은 힘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려준 사건으로 아파트가 서민 주거수단에서 중산층 주거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 때 아파트 중심으로 건설된 강남 신도시는 정부의 강북인구 분산정책으로 추진된 법원, 정부청사, 명문 고등학교 이전 등으로 중산층 중심도시로 발전하는 전기를 맞는다.

아파트 공화국의 비결

“땅은 좁고 인구는 많으니 아파트를 많이 지어 주택문제를 해결하자는 것, 아파트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이러한 발상 자체가 어쩌면 근거 없는 허상일 수도 있다. 일본 역시 인구밀도가 굉장히 조밀한 나라지만 전체 주택 중 10%정도만 아파트일 뿐이다.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도시 국가 이외에는 한국과 같은 아파트 공화국은 없다.”

▲ 교토의 골목길. 일본도 국토가 좁지만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 태윤미
차학봉 팀장은 아파트에 편중된 정부의 주택 정책 지속이 아파트 공화국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밝혔듯 비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공급할 수밖에 없다는 정부의 논리가 어패일 수 있다는 것. 차 팀장은 “수도권이야 땅값이 비싸서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지만 땅값이 싼 곳까지 아파트를 짓는 것은 일종의 자원 낭비이고 아파트 맹목주의”라고 말한다.

정부의 정책 때문에 한국의 주거문화는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급변하였고, 이렇게 다져진 아파트의 위상은 현대인의 문화로 굳어졌다.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단독주택의 전통, 멋, 습관이 많은 부분 상실된 것이다. 이 때문에 단독주택은 하나의 이상일 뿐 주거문화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아파트 확산의 가장 결정적인 공을 세운 것은 바로 재테크다. 아파트는 표준화된 상품이기 때문에 환금성을 갖는다. 즉 'XX아파트 XX평형은 XXX원'이라는 식의 가격표가 붙은 상품으로 유통된다. 이와 반대로 제 각각으로 지어진 단독주택은 표준화 된 가격을 가질 수가 없다. 이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국민이 단독주택에 관심을 덜 갖게 되는 이유가 되었고, 정부 역시 단독주택을 정책의 집중 타깃으로 삼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한국 주택정책과 필터링 효과... 아파트 신화의 몰락

필터링 효과는 미국에서 한때 유행하던 주택이론이다. 교외에 고급주택이 대거 지어지면 고급 수요자가 교외 주택으로 빠져나가고 도심 주택은 비게 되는데, 이 때 고급수요자가 빠져나간 도심주택의 가격은 하락하여 저렴하게 임대되거나 좀 더 가난한 내집 마련 수요자들에 의해 채워진다. 결론적으로 고가주택을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전체적으로 주택의 수준도 올라가고, 그 혜택은 저소득층이 본다는 논리이다.

차 팀장은 “우리나라가 펼친 부동산 정부정책은 미국의 필터링 효과를 모델로 한 것”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분양가 규제와 전매제한 폐지, 평형제한 폐지 등 일종의 투기 촉진책을 쓴 것도 필터링 효과가 배경이 된 것”이라고 말하며 “필터링 효과가 어느 정도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도심 슬럼화라는, 한국에서는 지역간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 롯데건설의 아파트 정문에 설치된 조형물<조감도>. 획일적인 아파트문화에 변화의 조짐이 약간씩 나타나고 있다.
ⓒ 태윤미

한국의 고도 성장기는 중산층의 신화가 지배하던 시대였으며 이는 대량소비사회로 이어졌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미국식 신자유주의 확산 등 IMF 이후 중산층의 신화가 붕괴되면서 주택시장 역시 붕괴되고 있다.

차 팀장은 “고도 성장기에서 저성장기, 양극화시대로 이전되면서 주택확장 수요가 줄어들 것이고, 아파트의 재테크 신화도 종말을 가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또 “아파트라는 획일적인 주거문화에서 좀 더 다른 주택시장, 즉 주상복합아파트나 빌라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고,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아파트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나라들을 가보면 과거의 주택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지역이 상당수다. 일본 교토에서 가장 사랑 받는 관광지 중 하나가 니넨자카, 산넨자카라는 곳이다. 이곳에는 100년 정도 된 1,2층 상점들과 주택이 남아 있을 뿐이다. 파리, 로마, 런던, 마드리드의 관광 경쟁력 역시 따지고 보면 지역 특유의 전통적인 건축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전국 어느 지역을 가도 똑같은 모양으로 줄지어 서 있는 우리의 아파트는 독특하다 못해 다소 기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단기개발과 재테크의 수단으로 전도된 우리 주거문화를 근본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예술전문 웹진 컬쳐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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