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친구랑 마지막 포옹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공항에서 남편이랑 헤어지면서는 그예 눈물이 맺혔습니다.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아내의 목소리와 인터넷으로 접하는 한국 소식을 낙 삼아 살 거라는 그를 또 홀로 남겨두고 돌아서면서 오래 먹먹합니다. 마음이 어려운 시간을 곁에서 같이 관통해준 이들이어 외려 제 설움이 더 컸겠습니다.
시카고에서 도쿄까지 꼬박 12시간을 비행해야 합니다. 잠시 쉬고 다시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창가 쪽 세 좌석에 모자와 태국 처자가 앉았습니다. 그 처자 아이를 좋아하여 세 명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처자의 모니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앞자리 등받이마다 모니터가 달려있거든요. 마침 제가 보고 있던 영화를 흘깃 보며 그도 보고 싶어 했는데, 승무원이 와서 만지작거려도 방법이 없었지요.
“아무래도 이 손님이 다 보고 나서….”
“아니, 이제 막 시작 했는걸요.”
어른들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가 나섰습니다.
“저랑 바꿔요.”
“정말?”
“저는 이제 그림 좀 그릴려구요.”
재미있는 채널이 없었거나 그림이 더 그리고 싶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 아이의 표정에서 어른의 힘에 대한 복종, 어른의 기대대로가 아니라 남을 돕거나 불편케 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배려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항상 그렇지야 못하지만 조금만 여유로우면 아이들은 얼마나 너그러운 존재인지요.
영화가 한창 재밌습니다. 그런데 눈이 오파오기 시작했지요. 앞자리에 붙어있는 모니터인데 모니터와 제 눈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겁니다. 앞에 앉은 이가 한껏 의자를 젖히고 있었던 게지요.
“저어, 의자를 조금만 세워주실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요?”
‘아니, 이 아저씨 무슨 말이 이래?’
벌떡 일어나 소리를 냅다 질렀습니다. 아니, 속으로만 그랬지요.
“아, 됐습니다.”
양해를 구했을 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가 다른 이를 살펴줄 수 없다면 말이 길어도 소용없을 거란 생각이 지레 들었지요.
승무원을 불러 슬쩍 도움을 구했습니다.
“앞에 계신 분께 의자를 좀 세워달라고 부탁드려 주실 수 있나요?”
“비행에 관계된 게 아니라면 저희가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승객들 사이의 일이니.”
뭐 아쉬운 사람이 접어야지요. 그렇다고 뒷사람을 불편을 알면서 앞 사람 하듯이 의자를 다 젖힐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언제 보아야겠다 점찍었던 영화라 이럭저럭 그 재미로 보고 앉았습니다.
식사가 왔지요. 이런, 이건 도저히 이 상태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아주 조금만 의자를 세워주십시오.”
“비행기의 모든 의자들이 그래요. 나도 그렇다고요.”
이 아저씨, 화까지 내는 겁니다.
“이것 보세요. 제가 언제 의자를 다 세우라고 했나요? 아주 조금만 세워달라고 했잖아요.”
성질났겠지요? 이 아저씨, 아주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주기로 작정하셨나 봅니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당신은 비상문 앞이라 자리가 널찍하잖아요. 더구나 제가 언제 의자를 다 세우라고 했나요? 아주 조금만 세워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잖아요. 또 화는 왜 내요?”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아, 그러면 얼마나 통쾌했을까요? 하지만 머리 안에서만 그랬답니다.
승무원이 지나다 고개를 아주 숙이고 말했습니다.
“쉬운 사람이 아녜요.”
일본 여 승무원은 자신이 더 미안해했지요.
아니, 그러면 쉬운 사람들만 남이 불편하다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건가요? 외국에 나가면 ‘일본 사람 무시하는 건 한국사람 밖에 없고, 중국인들은 한국사람 알기를 우습게 안다’던 속설이 있더니 이게 딱 그 짝입니다. 이 중국 아저씨, 아주 거만합니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고 그런 만큼 여러 차례 비행기를 탔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입니다. 지나치게 몸집이 불어있다거나 하는 그만이 가진 사정이 없지야 않았겠지요. 아무렴 무턱대고 장시간의 비행에서 그런 터무니없는 행동을 했을라고요.
머잖아 내리게 되어 다행이지만 더 있었더라면 정말 화를 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를 하려 들어도 에고, 그 아저씨 애만도 못한 어른이구만, 하는 생각만 자꾸 들데요.
(2006년 7월 25일 불날, 비)
덧붙이는 글 |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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