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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구 반대편에선 젖은 날씨로 시름에 겹다는 소식이 한창인데, 이곳은 짱짱하고 더운 날로 사람들이 헉헉거리고 있습니다. 연일 폭염이네요. 넘치는 비로 논이 휩쓸려 내려가는 건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에 견주면 소식이랄 것도 없을 만치 한국의 장대비 피해가 큰가 봅니다. 어머니는 별 일 없으시려는지.

누군들 어머니가 없던가요. 제게도 어머니 계시지요. 그런데 이 어머니, 삯바느질로 자식 여덟을 키워냈지, 남편 일찍 여의고 보험장사하며 자식들 결혼시켰지, 평생 농사지으며 자식 앞에 거친 말 한마디 해본 적이 없는 그런 어머니가 아니십니다.

'거룩한 인고의 세월'로 한 마디 불평도 늘어놓는 법이 없이 뒤로 눈물지으시는, 사모곡에 나오는 여느 어머니랑은 사뭇 다르십니다.

온갖 힘든 일에 다 힘들다 하시고 자식 때문에 당신 생은 없었다 푸념도 하시는, 내가 못 배워서 그렇지 나름대로 똑똑하다 여기며 남의 말 들리지도 않는 아집도 큰, 일찍 세상에 나가 온갖 일을 다 겪으며 못 견디는 일에 삿대질도 잘하고 목소리도 큰 양반이시지요.

품위 있는 울 어머니면 좋겠네, 옛적엔 그런 생각도 들었지요. 하지만 자식도 부모도 서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니까 뭘 어쩝니까? 그냥 우리 어머니 그러시네 하고 살아왔지요. 하기야 다 커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니네 엄마 같이 벌었으면 지금 집이 여러 채도 여러 채일 거다."

이모들이 가끔 하는 이런 비난 혹은 아쉬움은 여물지 못한 어머니를 잘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흔이 손이 헤픈 거야 딸의 몫이지 어디 어머니를 묘사하던 낱말이던가요. 울 어머니, 벌어들이는 돈을 관리하는 것도 안되고 좀 화려하신 데까지 있습니다.

이건 어머니 당신의 성품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요. 당신 계산법이 그렇거든요. 1000만원으로 장사를 시작해서 몇 해 동안 고생하고 자리를 터는 손에 1000만원이 못 남아도 당신은 돈 벌었네 하십니다.

몇 해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거지요. 손위로 오라비 하나에 다섯 딸의 맏딸, 그리고 대처로 나가 공부시키는 두 아들까지 있었으니 새었을 주머니의 크기가 어디 물만 빠져나갈 구멍이었을라나요.

머리에 생선이고 시작한 장사가 가게 터를 잡더니 슈퍼마켓이 되고 술집이 되고 식당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울 어머니도 남들한테 말하기 좋은 장사(바느질?) 좀 하지, 우리를 멕여 살리는 줄 모르지 않으면서도 적잖이 속도 상했던 어린 날이었습니다. 사람살이 별 거더냐, 젊은 여자가 난전에서 겪었을 숱한 어려움이 읽혀진 것은 세월이 한참 지나서였지요.

그런 쾌걸 여장부도 남편 생전에는 '많이 배운' 그 그늘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자식들이 장성해서는 잘난(?) 자식들 앞에 또 아무 소리 못하십니다. 게다 나이 들면 친구가 된다는 딸조차 그런 어려운 딸이 없습니다.

친정 어미 손에 오래 맡겨 당신 품으로 다 키워내지 못했고 학비 한번을 쥐어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지레 그러시지요. 못해주는 당신 속은 오죽 했으려나 싶은 헤아림도 지 자식 낳아보고 한 생각이지 어릴 땐 서운함이 컸을 수도 있었을 겝니다.

어쩌다 겨우 한 마디 딸 앞에 내놓을 때 어머니의 얘기가 더 길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만큼 답답해요?"

하기야 어머니도 만만찮으시지요. 뭐라고 뭐라고 제 말이 길면 하던 일을 계속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으시고 둘도 아니고 딱 한 문장 던지십니다.

"니만큼 안 똑똑한 사람이 어딨노?"

어머니의 케이오승이시지요.

무식한 울 어머니, 그래도 어머니는 결국 어머니인지라 그 이름자가 어디 가나요. 영화 <마요네즈>의 철없는 엄마 같은 울 어머니도 '모른 척'의 미덕은 아신답니다, 어르신들이 가장 잘 갖추고 있어 자식들을 숨 돌리게 하는 '모른 척'. 내막이야 다 모르더라도 오래 자식들을 살펴온 그 예민함으로 금새 무슨 일이 있구나 알아버리거나 때로 그 일을 짐작도 하시지만, 모른 체 하시지요. 당신까지 걱정하여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하는 최상의 도움이란 걸 어느 때고 잊지 않으시지요.

그 어머니, 바람 몹시도 거칠던 날, 벽도 시원찮은 산골 오두막 시커먼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에 불 지피고 있는 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더랍니다. 왜 가난을 택했는지, 공동체란 게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자식이 하는 거니까, 그저 부모 된 죄로 다 이해하셔야 하는 거지요. 그 뒤로 된장에다 고추장, 말린 산나물이며 바다 것(수산물)들이며 바리바리 실어 나르고 계신답니다.

"아니, 그래서 오시지 말라 오랫동안 말렸건만……."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하는 이가 이 세상에 단 분만 계셔도 크게 어긋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겝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네 편이다, 그런 어머니 한 분만 계셔도. 삶이 다 무너져 내리더라도 지친 내가 찾아들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그 그늘 아니던가요.

그 어미 입김, 천리라고 아니 가고 만 리라고 아니 갈지요. 버려진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제 생의 큰 소망도 결국 어머니 당신 품으로 출발한 것이겠습니다. 에미 없는 애새끼(?)야말로 세상에서 젤 불쌍한 존재니까요.

집으로부터 받은 게 없어 자유로웠다지만 아니, 그럼 무엇으로 살았단 말인가요. 어머니는 오늘 이 새벽에도 방 어느 모퉁이에서 기도하고 계실 겝니다.

그 기도발(?)과 하염없는 지지로 살아온 날들임을 저 역시 자식 키워가며야 하나 둘 알아가고 있지요. 깨달음은 늘 늦게 옵니다. 나이 마흔, 오늘도 멀리서 어머니 그 기도에 얹혀 산답니다.

(2006년 7월 15일 흙날, 쨍쨍)

덧붙이는 글 |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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