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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 마을 앞을 휘감고 지나가는 동창천입니다.
제 고향 마을 앞을 휘감고 지나가는 동창천입니다. ⓒ 안상숙
온 사방이 물 천지다. 며칠째 그치지 않고 온 비로 집안은 눅눅하고 바깥은 온 전신에 다 물이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누런 황톳물이 흘러가는 강물을 연신 보여주면서 피해 상황을 이야기한다. 대수가 져서 황톳물이 흘러가는 강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여름 장마에 물난리가 나면 우리는 물 구경을 하러 뒷산에 올라가곤 했다. 뒷산 너머엔 큰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대수가 지면 누런 황톳물에 온갖 게 다 떠내려가곤 했다. 어떤 해에는 돼지가 떠내려오는 게 보이기도 했고 또 어떤 해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둥둥 떠내려가는 게 보이기도 했다.

그런 날 밤이면 호롱불 밑에서 헤진 옷을 꿰매던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물난리가 나서 사람이 떠내려갔는데 마침 떠내려오는 나무를 잡을 수 있었단다. 그 나무에는 사람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생물이 있었는데 뱀이었다 한다. 그 사람은 뱀이랑 같이 나무를 타고 떠내려오다 요행히 강기슭에 나무가 걸리는 바람에 살아날 수 있었는데 뱀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엄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셨다.

옷을 꿰매시다가 바늘이 옷감에 잘 들어가지 않으면 머리에다 바늘을 쓱쓱 비비기도 하면서 한 땀 꿰매고 이야기 한 대목하고 또 한 땀 꿰매고 이야기 한 대목하곤 했다. 엄마는 감질 맛나게 이야기를 해주셨고 우리는 침을 꼴딱 삼키면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우리 고향 동네 앞에는 제법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그 강을 그냥 '큰물'이라고 불렀다. 큰물은 운문산 깊은 자락에서 시작하여 들과 밭을 적시며 굽이굽이 흘러 내려온다. 처음엔 봇도랑 물이었지만 점점 몸피를 키우다가 우리 동네 앞으로 오면 제법 큰 강이 되어 있었다.

그 강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꺽둑어며 메기며 뻥구리며 요시람쟁이 등등 물이 깨끗한 곳에 사는 고기들로 득시글거렸다. 큰물에는 민물고동인 '고디'도 많았다.

여름 한낮에 우리는 수경과 주전자를 들고 거랑(강)으로 가서 고디를 잡았다. 흐르는 물속에 있는 고디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디를 잡을 때는 수경을 이용했다. 수경은 나무로 네모나게 틀을 만들고 바닥에 유리를 붙인 거였다. 수경을 물위에 띄우면 물밑이 깨끗하게 잘 보였다.

고디를 잡아서는 수경의 한 쪽 귀퉁이에 담고 또 잡곤 했다. 수경에 어느 정도 고디가 차도록 잡히면 물 밖으로 나와서 주전자에 붓고 또 잡으러 들어갔다. 그런데 수경은 물이 조금씩 새어 들어왔다. 물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촛농으로 네 귀퉁이 이음새를 다 막았지만 그래도 물이 새어 들어왔다. 그래서 고디를 한참 잡다가 물을 따라서 버리곤 했다.

해가 지도록 고디를 줍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주전자 가득 찬 고디를 들고 집에 갈 꿈에 힘든 줄도 모르고 햇볕에 등이 까맣게 타서 허물이 벗겨지도록 고디를 잡았다.

고향 친구가 밤잠 줄여가며 잡아 보내온 '고디'

국 끓이려고 언 고디를 접시에 담아두었더니 포르스름하게 물이 녹아 나왔네요. 꼭 제 고향 앞거랑(강) 물빛 같습니다.
국 끓이려고 언 고디를 접시에 담아두었더니 포르스름하게 물이 녹아 나왔네요. 꼭 제 고향 앞거랑(강) 물빛 같습니다. ⓒ 이승숙
볼 일 보러 읍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손 전화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우리 동네 우편집배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택배 물건이 있어서 방문했으나 아무도 없어서 그냥 간다'는 내용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렀더니 작은 스티로폼 상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 친구가 보낸 거였다.

내 친구는 고향 근처에 있는 중학교 앞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는데 낮에는 가게를 보고 밤이면 이웃 사람들이랑 같이 그랑(강)에 나가서 고디를 잡는다. 밤이 되면 고디들은 물가로 나오기 때문에 고디 잡기에는 낮보다 더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불을 밝히고 고디를 잡는다고 하지만 그 야밤에 검은 물을 보면서 고디를 잡으면 무섬증이 들곤 한다. 고디를 잡다보면 일행과 멀리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검은 물속에서 뭔가가 나올 것만 같은 공포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래도 밤마다 고디를 잡으러 가는 거는 고디는 아무 때나 잡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여름 한 철에만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값이 비싸기 때문에 여름 한 철 부업으로는 아주 그만이기 때문이다. 손이 재빠른 사람의 경우에 두세 시간쯤 하면 고디를 한 되쯤 잡을 수 있다. 고디는 한 그릇에 만 원씩 하는데 한 되면 밥그릇으로 다섯 그릇이 된다. 그러니 두세 시간 일하고 오만 원 벌이를 할 수 있으니 마음 있는 사람들은 고디를 잡으러 거랑으로 나가는 것이다.

얕은 물에는 고디가 있다 해도 알이 잘아서 잡아봐야 재미가 없다. 알이 굵은 고디는 대부분 제법 깊은 물 속 바위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알이 굵은 고디를 잡아야 빨리 불어서 잡는 재미도 있는데 그러자면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허리춤까지 오는 깊은 물에서 몸을 굽혀 고디를 잡다보면 앞가슴도 다 젖게 되고 어떤 때는 아예 물속에 얼굴을 박고 잡는 경우도 있다.

내 친구는 밤잠 줄여가며 잡은 고디를 낮에 가게 보면서 짬짬이 알을 깐다. 고디는 하나하나 까야 되니 손이 많이 간다. 고디 깔 시간이 없어서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내 친구는 고디를 삶아서 알을 까고 삶은 물이랑 고디 알을 같이 얼려서 냉동 보관한다. 그랬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보내준다.

밤낮으로 일을 하니 어느 날은 너무 힘들고 졸려서 자기도 모르게 엎어져서 잠을 잔 적도 있단다. 좀 쉬었다가 하라는 내 말에 친구는 장마가 지면 물이 불어나서 잡고 싶어도 고디를 잡을 수 없으니 그 때 쉬면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내 고향 물빛 같은 '고디' 국물에는 고향이 녹아 있었다

들깨와 찹쌀을 조금 갈아넣고 끓인 고디국입니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아주 그만입니다.
들깨와 찹쌀을 조금 갈아넣고 끓인 고디국입니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아주 그만입니다. ⓒ 이승숙
녹으면 국을 끓이려고 꽁꽁 언 고디 뭉치를 접시에 담아 두었다. 한 두 시간이 지나자 파란 고디물이 녹아 나왔다. 꼭 내 고향 거랑(강) 물빛 같았다.

다 녹은 고디를 냄비에 붓고 물을 좀 더 잡아서 국을 끓였다. 들깨도 좀 갈아 넣고 찹쌀도 좀 갈아 넣고 정구지(부추)며 얼갈이배추 데친 거며 파도 넣었다. 그리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맛을 봤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은 안 났지만 그래도 시원하고 구수했다.

마침 주말이라 우리 집에 놀러왔던 친척 언니와 오빠가 고디국 한 그릇에 감격을 했다. 고디국을 먹으니 고향 생각이 절로 나는지 그 날 밥상머리에서는 온통 고향 이야기 밖에 없었다. 고디국 속에 고향이 녹아 있었고 정이 담겨 있었던 거다.

어느 고장을 가던지 간에 그 고장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있다. 그 음식은 그 고장만의 색깔과 냄새를 담고 있다. 그 고장 출신들에게는 향수의 음식이고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 고장을 떠올리게 해주는 음식이다. 고디국은 내 고향 청도를 특징 지워 주는 음식으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는 음식이다.

주방에 들며나며 고디국을 한 국자씩 떠먹었다. 식으면 더 맛있는 고디국에 밥 한 숟가락 말아서 훌훌 마셨더니 출출하던 배가 거뜬해졌다.

고디국을 맛있게 끓이려면

민물고동 또는 다슬기를 경북 청도에서는 고디라고 합니다. 고디는 간의 열을 내리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해주는 약리 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달과 방광염 그리고 술독을 치료해 줍니다. 고디는 간담 계통의 병리 작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 눈을 밝게 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눈이 나쁜 자녀들을 위해서 어머니들이 고디를 삶아서 까먹게 했습니다. 강에서 잡아온 고디를 하룻밤 정도 물에 담가두면 모래를 토해 냅니다.

그러면 소쿠리에 건져두었다가 팔팔 끓는 물에 넣고 슬쩍 삶아줍니다. 이 때 집 간장으로 간을 맞춰주기도 하는데 집 간장이 없으면 소금으로 간을 해줍니다. 고디를 깔 때는 바늘 같은 뾰족한 것으로 하는데 우리 어릴 때는 탱자나무 가시로 많이 깠습니다.

고디는 고디 입이 조금 나왔을 때 끓는 물에 넣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까기 좋습니다. 또 슬쩍 삶아줘야지 오래 삶으면 잘 까지지 않습니다. 고디 삶은 물을 그대로 마시기도 하고 또 고디를 까서 그냥 먹기도 하지만 고디는 삶은 물과 고디 알을 함께 넣고 고디 국을 끓이는 게 여러 사람이 먹기에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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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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