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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머물고 있는 동네는 전통적으로 '시카고 컵스'를 응원하지만 우리 가족은 남쪽의 '시카고 화이트 삭스'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니, 야구 경기장 가운데서도 가장 매력적이라는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시카고 컵스의 리글리 필드가 집과 불과 몇 블록 떨어져 있지 않더라도 야구경기를 보러 간다면 '삭스 35번가 역(Sox-35th)'에 있는 셀룰러 필드를 가겠지요, 레드라인을 타고 30여 분 달려. 딱히 야구경기를 좋아한다기보다 그 생동감이 주는 시간들이 좋고, 이런 편 가르기가 주는 열광이 아주 가끔은 재미도 있답니다.

오늘 스리랑카 친구의 초대를 받아 화이트 삭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경기를 보러 갔지요. 고국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이 친구는 늦게 박사논문을 쓰며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남편은 정부 고관들이 오가는 식당에서 자리를 잡았다 했지요. 왜 스리랑카를 떠났냐니까 미국에서 살고 싶었다데요. 하기야, 어디나 뿌리내리면 고향이 아닐 것도 없지만 시카고는 살면 살수록 정감 있는 도시랍니다. 시카고의 변덕스런 날씨는 사람 성질을 까탈스럽게 만든다고 농담들도 하지만.

시카고는 건축가들의 놀이터라 일컬어지기도 하지요. 1871년 대화재 뒤 건축가들을 불러 모아 지은 이 도시의 높은 건물들은, 그 까닭으로 영화의 배경으로 더 많이 쓰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는 호건 감독의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이 그랬고, 비교적 최근엔 폴 맥기건의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도 아마 그랬지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에서 마이클이 결혼하기로 한 키미가 바로 화이트삭스 구단주 딸이었더랍니다. 물론 영화에서.

오늘의 관중이 3만 9천 가까이 된다 했습니다. 4만석이 좀 넘는 경기장이니 거의 다 찬 셈이지요.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삭스가 2연패를 위해 걸음을 바삐 하는 때에 안방에서 벌어지는 경기의 우열은 이미 가려진 듯 보였습니다. 반면 텍사스는 시카고에서 너무 먼 도시던가요, 조금 처진 듯도 보였지요.

5회말 삭스의 첫 홈런이 나왔습니다. 경기장 너머 왼쪽 하늘에선 축포가 터지고 음악이 날았으며 바람개비 같은 둥근 전광판들이 화려하게 돌아갔습니다. 그런 구경거리가 없었네요.
경기가 조금 밋밋해선지 아니면 볕이 너무 따가워서인지 사람들이 좀 자주 움직이는 듯 했고, 그만큼 노란셔츠의 가판 아저씨는 열심히 물과 땅콩과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실어 날랐습니다. 경기장이 흔히 그렇겠지만 오랜만에 사람 냄새 흠뻑 났지요. 그럴 때 '살고 싶어'지던가요.

7회 초를 끝내면 모두가 일어나서 노래를 합니다. 관객의 몸 풀기지요. 이게 또 야구장의 큰 재미이겠습니다. 이들 식의 '아, 대한민국'도 같이 부르고, '테이크 미 아웃 투 더 볼 게임'도 불렀지요.

다시 경기가 이어지고 축포를 기다리던 아이들을 위해(?) 홈런이 다시 터졌습니다. 삭스가 3회에 1점을 얻고, 5회 1득점에 투런 홈런을 친 뒤, 8회에 솔로 홈런을 때리는 동안 텍사스는 어깨를 펴지 못했지요. 결국 9회 초에도 득점 기회를 놓쳐 경기는 삭스의 승리로 끝이 났답니다.

사람들이 경기장을 다 빠져나갈 동안 수다를 떨다 내려왔어도 아직 기차역으로 가는 줄이 길기만 합니다. 바람의 도시다운 오늘이네요. 해 짱짱하지만 이토록 시원한 바람을 맞습니다.

"야, 잘 친다."

경기장 앞, 거리 모퉁이에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타악 연주가 거기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지요. 흑인 친구 넷이 빈 들통을 엎어놓고 드럼연주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둘러서서 춤추다 가면 다른 무리들이 몸을 흔들고 그들도 돌아가면 또 다른 이들이 다가오고… 기부통에는 끊임없이 사람들 손이 닿았지요.

"저런 풍경 흔해요?"
"이 도시 어디나 있지요."
"저거야말로 홈런이네."
"장외홈런!"

활발하지 못했던 경기가 아쉬웠는데, 신나는 연주를 보여준 거리 악사들로 흔쾌해졌더랍니다.

(2006년 7월 23일 해날, 쨍쨍)

덧붙이는 글 |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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