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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덥습니다. 무지 덥습니다. 한바탕 비가 내렸는데도 기온이 내려갈 줄을 모릅니다. 지구 저 편은 물난리로 시름에 겹다는데 정말이지 짱짱한 날입니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아니면 카페라도 시원한 곳을 찾아 감직도 하나 숨이 턱턱 막혀 한 발자국을 옮기지 못하겠어서 종일 아이랑 집에서 뒹굽니다.

"어깨 아퍼."
"'안마 조정기' 가져올게요."

관절이 안 좋은 어르신이라도 계신 집이라면 안마기 하나쯤 있기 마련이지요. 그 종류도 참 많습니다. 방망이처럼 두두두두둑 하며 아픈 부위에 대면 저 혼자 움직이는 것도 있고, 의자에 앉으면 등이며 허리를 두들겨주는 것도 있으며 누워서 전신마사지가 가능한 것까지 있지요.

관절 앓이에 어깨 앓이도 하는 환자가 있는 저희 집에도 안마기가 있습니다. 안마 조정기로 움직이지요. 그 조정기엔 무려 마흔 아홉 가지 안마방식이 있습니다. 주먹으로 하는 방식 넷, 봉화모양 넷, 손가락으로 하는 것 다섯, 손등으로, 주먹 등으로, 몸 부위별로 누르고 돌리고 치고 쓸고 털며 하는 방법들입니다. 아, 등 긁는 기능도 있답니다. 기계는 굽은 곳도 잘 갈 수 있어서 사방팔방 닿지 않는 곳이 없지요.

ⓒ 옥영경
그런데 이 조정기는 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발급받은 카드를 대면 동작에 들어가는 거지요. 예약 버튼을 누르고 안마 강도와 빠르기 조절 단추를 누른 다음 엔터를 칩니다. 물론 어떤 식의 안마를 원하는지 결정하여 단추를 누르는 게 다음 할 일이지요.

"이건 뭐야?"
"설명 버튼을 누르셔요. 그러면 설명을 해드려요."

설명은 또 얼마나 친절한 기계인데요.

"'주먹 2'는 주먹을 쥐고 세워서 아랫면으로 두드리는 것으로 척추 뼈를 따라 움직이기 좋은 방식입니다."

그런데 안마를 받다가 방향을 움직이고 싶으면 역시 그 기능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위, 아래, 사선, 어디든 갑니다. 이 안마기의 더 탁월함은 바로 라디오 기능과 시디기능입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노래, <남행열차>)
"감자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노래 <씨감자>)

시디는 그 수록곡이 얼마나 많은 지요.

"조용한 노래를 원하시면 시디가 좋고, 춤추고 싶은 음악은 라디오에 담겨있습니다."

이 안마기 회사는 최근 2년 동안 신기술에 힘을 모았고 기술개발에 성공하여 다섯 차례나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객 사은잔치를 통해 이전에 썼던 안마기를 반납하기만 하면 무료로 새 기계를 제공받을 수 있었지요.

이쯤 되면 어디 산인지 궁금해지시겠네요. 하나쯤 구입하고 싶으시지요? 그런데 그게요, 저희 집에만 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안마기랍니다. 바로 같이 사는 아홉 살 사내아이!

미국에서 보내는 6~7월, 나이 마흔께에 쉽지 않은 결정 하나를 남겨놓고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짓눌려진 시간을 자주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그 무엇보다 아이 덕이었답니다. 나도 여전히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구나, 아이랑 사는 일이 더없이 고마웠지요.

"아이들이 없었으면 이놈의 세상 열두 번도 더 망했을 거야."
언젠가 선배한테 그랬던 적이 있었답니다.
"열두 번만 망했겠어?"
어른인 우리들도 저리 유쾌하게 살 수 있지 않을 런지요….

(2006년 7월 14일 쇠날, 비 내리다 갬)

덧붙이는 글 |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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