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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산사 가는 길> 이기와 글. 김홍희 사진
<비구니 산사 가는 길> 이기와 글. 김홍희 사진 ⓒ 노마드북스
누군가의 삶을 엿본다는 것, 그것도 진솔한 삶을 엿본다는 것은 진한 홀림과 감동을 준다. 그러나 때론 아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을 봤을 때 독자들은 때론 당황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시인 이기와의 글이 바로 그렇다. 가난 때문에 늘 삶을 비관하며 살아야 했고,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것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움츠렸던 여인. 한때 사랑했던 남자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고, 없다는 것 때문에 멸시를 당하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해야 했던 여인.

그런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서정과 진솔한 고백으로 풀어나간 글이 <비구니 산사 가는 길>이다. 이기와는 세상에서 받은 온갖 시련과 고통과 설움을 견디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던 어느 날, 산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련과 상처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 때문에 찾아왔음을.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산사를 한 번 찾은 걸로 깨달음을 얻고 웃음을 찾기가. 따라서 저자의 깨달음은 전국의 산사를 찾아다니는 고행 끝에 깨달은 것이기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

<비구니 산사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전국의 비구니들이 도량을 닦는 산사, 즉 방장산의 대원사, 오대산의 지장암, 울산 가지산의 석남사, 예산 덕숭산의 견성암, 강화 고려산의 백련사 등을 찾아다니며 마음을 비우고 지혜를 얻어가는 모습을 담은 글이다. 그리고 울림이 깊은 자기 고백서이다. 또한 상처를 입은 한 여인의 깨달음의 글이다. 그러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돌게 한다.

이에 이 책을 아주 꼼꼼하게 음미하며 읽고 읽었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글이기에 쉽게 읽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 속에는 저자의 마음만 들어 있는 게 아니고, 경허 스님이나 일엽 스님, 조주 스님 같은 큰 스님의 마음도 들어 있고, 출가 후 부처님의 손바닥에서 자비의 차를 흠향하고 놀았다던 비구님 스님들의 소박한 깨달음도 들어있고, 읽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나'라는 존재도 들어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몰라보게 하는 술도 끊고
낭만주의들의 장식인 담배도 끊고
행주가 걸레로 변해가는 애욕의 집착도 끊고

이거 환장하겠네
헛짓거리 한 게 없으니 무슨 면목으로 신과 면회를 한담
웃지도 울지도 않는 광물질이 되어
귀도 눈도 틀어막은 산중 돌부처나 되어
좌우지간 금단은 고무적이리
달이 쓰지 못한 에너지가 어디로 가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포괄적으로, 더 총체적이게
구름처럼 멀리 길을 갈 것이니

그 '길'이 어디인가?
이제, 내 신장을 향해 독 묻은 화살처럼
그 답을 찾아 사생결단으로 돌진하리니."


하루에 두 갑씩 피워대건 담배를 끊고,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던 술도 끊고, 이성 때문에 마음 아파하기 싫어 애욕도 끊었던 이기와라는 한 여성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기와는 스스로 '금단'을 세우고 독 묻은 화살처럼 사생결단으로 돌진하리라 마음먹으나 어찌 그게 마음대로 될까.

저자는 금단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고독해 보이는 한 방랑자 사내와 술을 마시다 주술에 걸리듯 애욕에 이끌렸다고, 그래서 촛불이 바람에 '피식' 꺼지듯 인욕의 불도 꺼져버렸다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딸을 둔 엄마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이런 것들이 이 글에선 그저 흐르는 물처럼 담담히 드러나 있다.

"출가를 결심하고 처음 이 백련사로 올 때 오솔길 풍경이 을매나 그림 같던지. 슬프다거나 막막하다는 생각은 한 개도 업꼬. 울창한 나뭇잎들이 살랑거리고, 새들이 지저귀고, 금가루 같은 햇살이 쏟아지고, 아름다운 봄날의 출가라는 생각만 가슴 가득 차오르는 기라."

스물일곱 살에 백련사로 출가했다던 자경스님의 말이다. 한 비구니 승의 출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물일곱의 무르익은 처녀가 출가를 한다고 하면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겠지 하는 것이 우리 속인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일반적인 생각들을 산산이 부셔놓기도 한다.

이러한 스님들의 이야기나 일화들은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 우리가 단순한 생각 속의 관념에 빠진 편견들(특히 쉽게 접할 수 없는 비구니 스님들에 것들)을 이 책은 무거운 생각들을 주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비구니 산사 가는 길>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고, 많은 스님(비구니)들과 이야기하며 자신의 탐욕을 비우고 지혜를 찾아가는 한 여인의 울림을 담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마음속에 지녀야 했던 무거운 짐들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비구니 산사라는 특별한 여행을 통해 세상을 용서하고, 너도 잊고 나도 잊으며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을 관음상의 미소처럼 가만히 독자들의 마음에 갖다 놓는다. 찻잔에 차 따르는 소리처럼.

비구니 산사 가는 길

이기와 지음, 김홍희 사진, 노마드북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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