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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책 겉그림 ⓒ yes24
제주도는 그 무엇보다도 바람이 많다. 바람이 많이 분다. 온 사방이 뚫려 있어서 바람은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때론 옷깃을 스치는 가랑잎 바람이 불어오다가도 돌연 큰 비바람으로 탈바꿈을 한다. 무섭고 두려울 때가 많다. 바다와 파도까지 그리고 배까지도 집어 삼킬 듯한 거친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 속 풍경을 쫓아 평생을 다한 사람이 있다. 코끝의 호흡이 사라지기 직전까지 제주도 온 산지를 돌고 돈 사람이다. 바람이 부는 곳이면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온 산과 들과 바다를 헤매고 다녔다. 중산간과 바닷가, 한라산과 마라도, 섬 곳곳에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풀이 그가 마주하던 것이요, 그 자리였다. 바람 속 온 경관은 그의 전부였다.

이는 사진작가 김영갑을 두고 한 이야기이다. 그는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래 20년 동안이나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에 살림터를 두고 이곳저곳 이 땅의 산과 들을 헤집고 다녔다. 카메라 렌즈 속에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고이 담기 위함이었다. 숲 속의 고요함도, 들녘 태양의 작열함도, 노을빛 바다의 평온함도, 맹렬히 퍼붓는 폭우의 사나움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 뒤 1982년부터는 3년 동안 서울과 제주를 오갔다. 제주 곳곳의 경관들을 렌즈 속에 담기 위함이었다. 신이 부여한 소명이라도 받은 듯 그는 무녀처럼 섬을 헤집고 다녔다. 제주의 얼과 속내 어린 부드러운 살결을 카메라로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는 태아를 받아내는 산파와 다르지 않았다. 각혈을 토해내는 고통이요, 피고름을 짜는 일이었다.

그리고 1985년엔 아예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곳에 정착했다. 그때까지도 그는 번듯한 살림집 하나 없었다. 제대로 된 밥 한 끼조차도 사먹을 돈이 없었다. 오히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샀다. 배가 고프면 들녘에서 자라는 당근과 고구마를 캐내어 허기를 달랬다. 머리도 길게 풀어헤치고 다녔다. 어느 것도 매이지 않으려는 그의 자유요 낭만이었다. 그 때문에 비렁뱅이로 때론 북한에서 내려온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배고픔도 굶주림도 그리고 그 어떤 안식처도 그의 집념을 꺾지 못했다. 먹고 쉬고 자는 것보다도 렌즈 속 풍경이 그를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바람을 쫓아 용눈이오름 굼부리에 들어가 하루 종일 살기도 했다. 마른번개를 담기 위해 중산간 마을에서는 온 종일 카메라만 잡기도 했다. 렌즈 속에 다가오는 들판의 소나무들은 그의 삶을 버텨내준 의지의 형상이었다.

그와 함께 호흡하던 야생화와 곤충, 나무와 돌은 점차 그의 벗이 되었다. 풀, 나무, 풀벌레, 구름, 눈, 비, 안개, 노루, 오소리, 족제비, 꿩, 비둘기, 몸집 작은 텃새들과 곤충들은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오랜 동무가 됐다. 김을 매는 들판의 아낙이나 바닷가 해녀의 멋진 곡소리는 렌즈 속 새로운 식솔이 되었다. 그들과 함께 뒹굴고 구르며, 그녀들과 함께 꿈을 꾸었다.

“건강한 동안에는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라고 여기며,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옆을 돌아보지 않고 작품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러다 어느 날 주사위를 던져 죽음의 수가 나오자, 나의 당당함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제주의 온갖 것들을 그의 렌즈 속 마음에 담을 무렵, 안타깝게도 그는 병이 들고 만다. 루게릭이란 질병이 그의 몸 속으로 찾아 온 것이다. 그것은 치료약은 커녕 발병의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질환이었다. 온 몸의 근육이 촛농처럼 녹아내려가는 그야말로 걷기 조차 힘든 고통이었다. 그저 몸의 중심이 한없이 내려가는 것만을 속수무책 지켜만 볼 뿐이었다.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숨을 그대로 흘러보낼 수 없었다. 무기력했지만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듯 그 모든 의지를 토해냈다. 이른바 ‘두모악 갤러리’를 만드는 일이 그것이었다. 허름한 곳이었지만 그의 꿈이 농축된 아름다운 사진실 텃밭이었다. 그곳에서 언제쯤 멋진 전시회를 열 수 있을지, 그 열매를 언제 따볼 수 있을지, 그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할 뿐이었다.

2005년 5월 29일, 마침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숨을 거두었다. 투병생활을 한지 꼭 6년만이었다. 그의 뼈와 살, 그 모든 자취와 흔적들은 그가 만든 ‘두모악 갤러리’ 앞마당에 뿌려졌다. 거기에 그의 온 숨결이 농축됐다. 그가 살아 온 이력이 그곳에 스며들었다. 제주의 바람 속 풍경이 그와 함께 그 곳에 깃들었다.

그로부터 2006년 오늘 그의 유고사진집 <김영갑 1957~2005>(다빈치)가 세상에 흘러 나왔다. 바람결에 담긴 코끝의 호흡이 멎음과 동시에 퇴장했던 그가 다시금 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제주의 바람 속 모든 풍경과 함께 다시 태어난 것이다.

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다빈치(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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