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홍지연
혹자는 마그네슘 부족이라고 했다. 그의 오른쪽 얼굴 근육이 잘게 떨리는 원인에 대해. 만화가 곽백수의 오른쪽 눈언저리와 뺨은 1년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경련을 일으키곤 한다.

고맙게도 한의사인 팬 하나가 그를 위해 완치를 약속하고 나섰다. 큰 병도 아니니 마음먹고 시간 들여 침이라도 맞는다면 고쳐지련만 오히려 환자가 시큰둥하다. 당분간은 바빠 못 고치고 사실 못 고쳐도 상관없단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인터뷰를 위해 자신을 찾는 기자가 엄청나게 놀라곤 하는 것 빼곤 별로 신경이 쓰일 일도 없다. 그가 만화를 하게 되면서 얻게 된 건 참으로 많았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편히 넘긴다.

<트라우마>를 만들며 생긴 이 '영광의 직업병'은 매일 득달같이 달려드는 마감과 아이디어를 쥐어짜며 날밤 지새운 세월들이 체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 1000회를 넘겼죠?"

<트라우마>는 두 달 전쯤 1000회를 넘겼다. 연재 초기부터 공언 비슷하게 1000회를 다짐했던 만화가 곽백수에게는 경쾌하게 똑 떨어지는 숫자적인 아름다움을 떠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어떻게 하면 인기를 끌까 항상 노력했어요. 이 장르는 인기 떨어지면 자연 문을 닫아야 하니까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알려고 했고, 각 회차별 리플로 반응도 가늠하고. 그래도 욕은 연재 처음부터 지금까지 간간이, 그렇게 많진 않지만 항상 먹고 있어요.(웃음)"

정신적 외상, 마음의 상처, 쇼크 등을 뜻하는 제목처럼 <트라우마>는 1000회가 넘는 시간 내내 우리들이 흔히 접할 만한 상황과 지금의 세태를 묘하게 뒤틀며 '깨는' 반전을 제공했다.

직장인들의 애환은 물론, 남자들이라면 피식 웃음 쏟을 수밖에 없는 군대이야기, 이밖에도 세태를 꼬집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독자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김현필'을 비롯해 '최상술', '이상식'의 단골 캐릭터들을 구분하게 됐고, <트라우마>는 '스포츠 서울'의 간판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웃기는 만화'에서 '재밌는 만화'로... 고민은 많았다

1000회를 훌쩍 넘긴 <트라우마>. (1030회 '승부차기' 편)
1000회를 훌쩍 넘긴 <트라우마>. (1030회 '승부차기' 편) ⓒ 곽백수
2003년 1월부터 지금까지 약 3년 반 가량의 시간이 지나면서 <트라우마>는 단행본 6권 분량으로 묶여 나왔고, '반전만화'라는 장르를 더욱 확고히 하는 대표적 작품이 됐다.

"어떻게 보면 <트라우마> 이전에는 특별히 반전만화가 대세는 아니었어요. (양)영순 형이 하던 <아색기가>는 반전보다는 놀라운 발상과 상상력이 위주였고요. <트라우마>로 반전이라는 개념이 잡힌 것 같아요. 물론 반전이 웃기기 좋은 수단이어서 일수도 있지만요."

이른바 엽기코드로 무장한 '반전'을 넣어 보는 이의 허를 찌르고 폭소를 끌어내는 것. 그렇게 '웃기는' 것이 그가 생각한 <트라우마>의 정체성이자 생명력이다.

물론 어려움도 많다. 매일 짜내야 하는 아이디어 전쟁도 그렇지만, 인터넷을 타고 쉽게 노출되는 덕에 불특정 다수에 의한 도덕적 감시와 그에 따른 자기검열도 생겼다. '외모비하' 문제를 언급하면 어이없게도 '외모지상주의자'로 낙인찍혀버렸던 것.

"초반에는 별 생각 없이 계속 마감치기만 바빴는데 계속하다 보니 제 작업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고, 다른 작품들도 살피면서 차별화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됐죠. 이 장르의 만화들이 만화가 가진 고유의 매력은 배제되고 점차 '웃긴 자료'로서만 쓰이고, 그렇게 변별력도 사라지고 인터넷 추천수 등으로 서로 경쟁이 부추겨지면서 작가색도 약해지고…, 그렇게 다듬어지고 있더라고요."

물론 '웃기는' 만화가 <트라우마> 최대의 목표이지만 그래도 보다 다양한 재미를 찾고자 그는 차별화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그건 다른 반전만화가들 개개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라고도 생각되는 부분.

"차별화시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그래봤자 마구 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의식하고 작업한 결과가 어느 정도 있었죠. 이젠 독자들이 <추리닝>에서 원하는 것, <와탕카>에서 원하는 것, <트라우마>에서 원하는 것 등이 나눠진 것 같아요. 굳이 말하자면 <트라우마>는 25세에서 30대 정도의 젊은 직장인들이 주 타깃이죠."

7전8기의 정신으로 견딘 무명 7년

현실을 뒤트는 <트라우마>의 묘한 반전은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1052회 <급식대란> 편.
현실을 뒤트는 <트라우마>의 묘한 반전은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1052회 <급식대란> 편. ⓒ 곽백수
"데뷔 직전까지 출판계 등 만화계 안팎 여건들이 참 많이 안 좋았어요. 성공에 대한 확신은 분명히 있었는데, 물론 뒤로 갈수록 불안감이 커졌죠. 그래도 결국은 만화를 하게 되더라고요."

만화가가 유일한 꿈이었던 대부분의 만화가들과는 다르게 곽백수는 아주 현실적으로 만화를 선택했다. 만화를 좋아했고, 그림도 즐겨 그렸지만 만화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다만 군생활 중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던 가운데 당시 호황이었던 만화계에서 비전을 찾았던 것이 시작이었다.

"재주도 특별한 학벌도 없었는데 만화가는 진입장벽이 없잖아요. 오로지 실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만화의 장점이죠. 독자에게 직접 다가가 즉각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진입'이란 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연이은 퇴짜로 제대 후 7년간을 만화잡지사 문 앞을 전전하며 보내야 했다. 궁핍하진 않았지만 분명 힘든 시간이었다. 그 사이 결혼해 큰아이가 태어났지만 잡지계는 여전히 고사상태. 올해까지만, 올해까지 만을 되뇌며 6년이 흘렀다. 2002년 5월 친구 따라 '스포츠서울'에 100편의 에피소드를 엮어 지금의 <트라우마>가 된 <만화 대통령>을 함께 내봤지만 결과는 또 실패. 그러다 연재물 하나가 도중하차하고, <트라우마>가 연재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극화를 할 겁니다"

곽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라는 '득칠이' 시리즈 편.
곽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라는 '득칠이' 시리즈 편. ⓒ 곽백수
곽백수의 극화만화는 어떨까. 그의 새로운 도전이 곧 시작될 것 같다. 계획상으로는 올해 말쯤 <트라우마>의 연재를 종료할 뜻이 있다고.

"극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곧 마흔인데 제가 과연 언제까지 중고생들을 '웃기는' 위치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대략 다섯 타이틀." 만화가 곽백수가 내놓은 새로운 도전 과제다. 그 다섯 타이틀 중 하나라도 대중에게 선택된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다섯 타이틀 정도 펴내보면 만화가로서의 성공가능성이 가늠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만화계를 떠나야할지도 모르지만요.(웃음) 열심히 노력해야죠. 잘되겠죠?"

차기작은 "무조건" 극화다. 그 생각을 할 때면 자연히 몸과 마음은 긴장이 된다. 한때는 무조건 대박을 쳐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좀 더 편안해진 느낌이다. 분명 공부할 것도 많고 연재지면 등 외부상황 등의 압박도 따르겠지만 처음이 그랬듯 멀리보고 느긋하게 나아갈까 한다. <트라우마>로 모은 돈들이 아마 그 '여비'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