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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해금강을 상상하며 꾸몄다는 방 원장의 작품 '금강산 절경'
금강산 해금강을 상상하며 꾸몄다는 방 원장의 작품 '금강산 절경' ⓒ 곽교신
오랜동안 꽃을 만진 방한숙 원장의 야생화 컬렉션 전시장. '방림원'이란 이름은 아내(원장)와 남편의 성을 합성한 것. 이름으로도 짐작되듯, '박물관'으로 등록된 곳이기는 하지만 개인 취미생활 공간이 유료 관람공간으로 된 것으로 보면 좋겠다는 한 박물관 이론가의 의견이다.

전세계 야생화를 보여준다는 방림원측 의도와는 달리 야생화는 봤는지 안봤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는 반면, 테라리움 부류의 오밀조밀한 작품들이 인상에 남는다. 어쨌건 전시된 작품에 들어간 정성은 감탄스러울 정도.

관람 문의 064)773-0090. 입장료 6000원. 연중 무휴.


분재 천국 '생각하는 정원 분재예술원'

고목을 분재로 키우는 첫 단계. 긴 기다림의 시작이다.
고목을 분재로 키우는 첫 단계. 긴 기다림의 시작이다. ⓒ 곽교신
분재예술원에는 천 여점의 정통 분재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연과 인공의 합작품인 분재작들은 사람이 만들었다기보다 세월이 만든 것.

분재 작품의 조형 특성상 일본 냄새가 진해서 그렇겠지만 일본관광객들이 좋아한다고. 의외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분재가 희귀 소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테마공원으로서 독특한 이미지가 강하다.

'생각하는 정원'이란 이름은 분재에 묻어있는 세월을 생각하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녹음 테잎처럼 기계적인 안내원의 설명은 분재에 담긴 세월을 생각하고 싶은 관람객에겐 오히려 방해가 될 듯.

'생각하는 정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관람객이 생각을 할 틈도 주어야 할 것이다.

관람 문의 064)772-3701. 입장료 7000원. 연중 무휴.

사람의 욕심 위에 떠버린 공중 정원 '제주조각공원'

공원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며 자랑하던 안 관장은 이내 고개를 떨궜다. 현재 조각공원은 가꾸고 다듬을 주인이 애매한 '공중 정원' 상태. 빼어난 아름다움도 인간의 욕심 앞엔 한낱 아수라...
공원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며 자랑하던 안 관장은 이내 고개를 떨궜다. 현재 조각공원은 가꾸고 다듬을 주인이 애매한 '공중 정원' 상태. 빼어난 아름다움도 인간의 욕심 앞엔 한낱 아수라... ⓒ 곽교신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 12만 평에 국내 원로조각가 109명의 작품 190점으로 야외 조각공원을 꾸민 제주조각공원은 1987년 개장 이후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조각과 자연이 구별되지 않는 환상적인 곳이 되었다.

그러나 땅은 덕수리 주민들 공동 소유, 지상권(지상 인공건조물의 법적권리)은 현 관장인 안병덕씨 소유, 작품은 작가들 소유로 되어 있는 혼돈 상태. 긴 시간 가꾼 아름다운 경관과 조각 작품이 어울려 보기 드문 야외 조각미술관으로 발전할 여건이 충분함에도, 미술관이 가진 가치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까운 대형 야외미술관인 제주조각공원을 살리는 길은, 지자체의 적극적인 공영화(시립공원) 정책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아직 공영화 계획은 없다는 서귀포시의 답변이다.

관람 문의 064)794-9680. 입장료 4500원. 연중 무휴.

차 박물관 '설록차뮤지엄 오설록'

한 녹차 생산업체에서 운영하는 이 곳은 이른바 '기업 박물관'으로 분류하는 곳. 기업박물관은 자사 홍보팀 쯤으로 생각하고 깔보기 쉬운데, 선입견과 달리 각종 차(茶)문화 지식과 휴식공간을 적절히 배합한 수준있는 운영을 하고 있다. 특히 박물관 전망대에 올라 16만 평의 녹차밭 언덕 뒤로 멀리 바라보는 한라산이 인상적이다.

1층 전시장 한 쪽을 각종 차 종류 판매장으로 운영하는데, 기념품샵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판매에 열중하는 것 같아 눈에 거슬리는 점만 빼고는 방문 느낌이 꽤 괜찮은 곳이다. 안 사면 그만이니까….

관람 문의 064)794-5312. 입장료 무료. 설날만 휴관.

원시 제주의 재탄생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감나무를 좋아하던 김영갑이 '상징적으로' 잠든 감나무.
감나무를 좋아하던 김영갑이 '상징적으로' 잠든 감나무.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인사동이나 압구정에서 흔히 보는 화사한 갤러리가 아니다. 이름있는 '부띠끄' 옷으로 치장하고 가능한한 우아한 미소를 짓느라 얼굴 근육의 경련을 참는 여인들이 거니는 곳이 아니다.

어떤 후원회원이 무료로 빌려준 땅을 관람객 주차장으로 만드는 작업 도중에 삽을 든 채로 기자를 맞은 박훈일 관장은 우아한 미술관 관장(館長)의 폼이 아니었다. 그는 미술관 관장이 아니라 '김영갑갤러리(里) 이장(里長)'이었다.

김영갑을 얘기하면 제주의 차가운 돌덩어리도 휴머니스트가 되고 오름을 넘나드는 구름도 뜨거운 심장을 단다. 제주시 성산읍 상달리에 있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전시장에는 작년에 죽은 김영갑의 사진이 아직 살아있다.

작가 김영갑은 평생 제주의 바람과 구름을 찍다가 작년 초여름에 제주의 바람이 되었다. 그가 카메라를 메고 무수히 오르던 오름들에는 더 이상 그가 없다. 김영갑은 그가 작업실로 쓰던 폐교 감나무 밑과 운동장에 작년 초여름 바람을 덮고 영혼으로 잠들었다.

그의 사진에서는 바람이 분다. 불어 나온다. 그 바람 줄기들에는 음표가 달려있다. 대금소리인가하면 한라산을 휘돌아나온 팬플루트이다. 김영갑에 의해서 제주의 바람과 하늘은 다시 태어났다. 그는 부여가 고향이지만 죽어서 제주를 고향으로 만들며 제주의 바람이 되었다.

바람에 번진 유채꽃. 그는 정지된 주 영상 위에 바람만 흐르게 하여 찰나에 흘러버리는 정(靜)과 동(動)을 필름에 기록해냈다.
바람에 번진 유채꽃. 그는 정지된 주 영상 위에 바람만 흐르게 하여 찰나에 흘러버리는 정(靜)과 동(動)을 필름에 기록해냈다.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김영갑은 사람들이 사진을 보며 나무보다 바람을 먼저 보기를 원했을 것이다.
김영갑은 사람들이 사진을 보며 나무보다 바람을 먼저 보기를 원했을 것이다.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아직 입장료도 없는 김영갑갤러리는 그를 애도하는 후원회원들이 모아주는 돈으로 근근히 버틴다. 당당히 입장료를 받으라고 권하자 박훈일 관장은 "그래야겠지요?"하며 머쓱해한다. 김영갑의 사진을 보겠다며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차비는 못드릴망정 돈을 받는 일이 아직 적응이 안된다'는 그다. 이젠 제법 돈이 될 김영갑의 사진을 놓고 이해관계인들의 미묘한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순수한 마음의 그에게 잔인하게 묻고 싶지 않았다.

박훈일은 '주인집 아들'로, 김영갑은 '문간방에 세든 사람'으로 만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삼촌과 조카로 부르게 되었고 이제 박훈일은 갤러리 관장이 되어 그의 영혼을 지킨다. 박 관장은 피가 전혀 안 섞인 채 김영갑의 직계 가족이 된 셈.

"사진은 끝없는 기다림"이라고 말한 김영갑의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그는 영원한 기다림의 세계로 갔다.
"사진은 끝없는 기다림"이라고 말한 김영갑의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그는 영원한 기다림의 세계로 갔다.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친 듯 사랑하던 제주의 오름과 들판과 구름과 지는 해와 안개와 안개비와 바람과, 그를 아끼는 살붙이 피붙이 정붙이들이 밟혀서 김영갑은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제주에 가면 한라산을 못보더라도 두모악(한라산의 옛이름)은 볼 것을 권한다. 성산포 해물뚝배기를 못먹더라도 '성산邑 김영갑갤러里'에 꼭 들러야한다. 거기에 제주가 다 있다. 찬란하지만 어쩐지 슬픈 원시 제주의 자연이 거기에 다 있다. 바람을 찍고 싶었던 한 사진가의 절규가 거기에 있다.

관람 문의 064)784-9907. 입장료 무료. 연중 무휴.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인용된 '김영갑갤러리두모악' 관련 사진들은, 최근 발간된 그의 사진집 <1957~2005 김영갑>에서 갤러리의 양해를 얻어 촬영 및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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