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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안방극장 '고구려 사극'열풍의 첫 서막을 열며, 상반기 대체로 부진했던 MBC 드라마의 부활을 알렸다.
<주몽>은 안방극장 '고구려 사극'열풍의 첫 서막을 열며, 상반기 대체로 부진했던 MBC 드라마의 부활을 알렸다. ⓒ MBC
드라마 시장은 올해 상반기에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내 드라마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한류 열풍의 선두주자로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소재 고갈과 열악한 제작관행에서 비롯된 완성도 저하, 한정된 내수 시장을 둘러싼 지상파 방송사간 과열 경쟁 등으로 이미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해 왔다.

인기작품과 비인기 작품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사전제작제 도입과 스타 파워 실종 등 현상들이 두드러진 올 상반기 드라마 시장은,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현안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드라마 사전 제작제도를 둘러싼 논란

연초 방송가에선 MBC 월화드라마 <늑대>의 방송 사고로 사전 제작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처음으로 촉발됐다. <늑대>는 촬영 도중 주연 배우 문정혁과 한지민의 부상으로 방영 중인 드라마가 중단되는 방송사상 초유의 해프닝을 겪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드라마 제작이 다시 재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늑대>에 이어, KBS 월화드라마 <봄의 왈츠> 역시 액션장면 촬영 중 주연배우 서도영이 얼굴에 큰 부상을 입어 한때 결방되는 불상사가 일어나 관계자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물론 촬영 과정에서 일어난 불의의 사고였지만,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매주 70분 분량의 드라마를 2회 분량씩, '실시간'에 가까운 일정 속에 찍어야하는 한국 드라마의 촉박하고 열악한 제작관행이 초래한 위험이기도 했다.

반면, <늑대>의 제작 파행 때문에 부랴부랴 대체 편성된 8부작 미니시리즈 <내 인생의 스페셜>이나 SBS 월화드라마 <연애시대> 같은 작품들은, 국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사전 제작제도를 실시해 작품의 기획의도와 완성도 면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사전제작제도는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시청률 경쟁과 관행이라는 이름에 밀려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지만 <내 인생의 스페셜>과 <연애시대>가 성공하면서 한국 드라마에서도 정착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다.

연초 방송된 MBC 드라마 <궁>과 <주몽>을 비롯해, 현재 제작중인 <태왕사신기>에 이르기까지 이미 적지 않은 작품들이 완전 사전제작 내지 부분 사전제작을 통하여 이야기와 영상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전제작제도의 본격화는, 열악한 제작관행 때문에 드라마 참여를 기피하던 톱스타 캐스팅을 가능하게 만들고, 영화계 자본과 유능한 인력을 유입해 국내 드라마의 전반적인 수준 향상에 크게 이바지할 전망이다.

<궁>, 트렌디 드라마가 소재 고갈과 천편일률적인 구성으로 외면받는 가운데, <궁>과 <마이걸>,<연애시대>같은 소수의 작품들만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궁>, 트렌디 드라마가 소재 고갈과 천편일률적인 구성으로 외면받는 가운데, <궁>과 <마이걸>,<연애시대>같은 소수의 작품들만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 MBC

장르 및 소재별 양극화 심각

상반기 드라마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세 중 하나는 드라마 작품과 장르별 양극화 현상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지난 시즌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독보적인 인기작이 없었고, 드라마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로 평일 방송되는 심야 드라마들이 동반 시청률 하락에 시달렸다.

장르별로는 중장년층에 호소력을 지닌 가족드라마와 시대극이 안방극장을 주도한 데 비하여, 젊은 층을 겨냥한 트렌디 드라마는 침체를 면치 못했다.

가족드라마의 경우, KBS 일일극 <별난 남자 별난 여자>, 주말극 <소문난 칠공주>, SBS 주말극장 <하늘이시여> <사랑과 야망> 같은 작품들이 나란히 시청률 20~30% 고지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로 가족 드라마의 전성시대를 지탱해나갔다. 반면 트렌디 드라마의 경우 연초 방송된 SBS <마이 걸>과 MBC <궁> 정도가 20%를 넘으며 선전했지만, 이후로는 이렇다 할 히트작을 한 편도 배출하지 못했다.

3월 이후 안방극장에는 스크린에서 모처럼 복귀한 한류 스타들과 인기 작가, 제작진을 투입한 화제작들이 대거 쏟아졌다. KBS의 <굿바이 솔로> <봄의 왈츠> <위대한 유산>, SBS의 <천국의 나무> <연애시대> <불량가족> <스마일 어게인>, MBC의 <너 어느 별에서 왔니> <닥터 깽> <어느 멋진 날> 같은 작품들이 잇달아 선보였지만, 이 중 시청률 면에서 눈에 띄게 성공한 작품은 없었다.

동시간대 1위를 달리며 완성도에서 호평 받은 <불량가족>이나 <연애시대> <너 어느 별에서 왔니> 같은 작품들도 평균 시청률 면에서는 모두 15% 내외의 성적에 그쳤다. 이것은 유명 연출자와 배우의 스타 파워가 안방극장 시청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과 더불어 트렌디 드라마의 위기론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최근 트렌디 드라마의 동반 침체는 소재 고갈과 다양성 부족 때문이다. 특정 직업군이나 전문화된 소재를 소화할만한 작가군이 부재한 국내 시장에서는 트렌디 드라마가 모두 천편일률적인 멜로드라마로 귀결되는 경향이 적지 않고, 흥행 공식과 스타파워에만 기댄 구성을 남발한 것도 식상함을 부채질한 원인으로 꼽힌다.

<하늘이시여>, 중장년층의 지지를 받은 가족드라마가 꾸준한 인기를 누렸으나 시청률에 따른 고무줄 편성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 전개는, 가족드라마의 본질을 왜곡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하늘이시여>, 중장년층의 지지를 받은 가족드라마가 꾸준한 인기를 누렸으나 시청률에 따른 고무줄 편성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 전개는, 가족드라마의 본질을 왜곡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 SBS
국내 트렌디 드라마의 근본적인 한계로, 볼거리에만 치중하여 요즘 젊은 관객들이 요구하는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지적된다. 최근 국내 뿐 아니라 한류에 열광하던 해외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소재 반복과 진부함에 대한 지적이 되풀이해서 나오고 있다.

충무로와 안방극장을 통틀어 만화나 일본 대중문화 원작의 작품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국내 영상계의 소재 고갈 현상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으로 분석된다. 박소희 작가의 동명 원작을 드라마화한 <궁>이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애시대> 같은 작품은 내용의 독창성과 참신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전개로 방영 내내 시청자들의 높은 호평을 받았다.

논란의 중심에 선 드라마 시장

한편 드라마 시장의 고질적인 시청률 지상주의와 기획의도에 따른 논란이 잇달아 불거지며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상반기 드라마 시장의 '블루칩'으로 인기를 모았던 가족드라마 <하늘이시여> <소문난 칠공주> <별난 여자 별난 남자> 등은, 저마다 무리한 '고무줄 편성'과 현실 정서에 맞지 않는 왜곡된 이야기 전개로 적지 않은 비판과 빈축을 샀다.

한편 최근 지병으로 별세한 드라마 <첫사랑> <맨발의 청춘>의 인기 작가였던 고 조소혜씨는 '시청률 경쟁에 시달리는 작가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오랜만에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주제로 선보인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는 이승만 전 대통령 등 '건국세력에 대한 왜곡과 친북 좌익 편향 드라마'라는 일각의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해방 전후사를 중심으로 좌우 이념대립에 희생된 젊은이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민감한 정치적 배경과 역사적 관점을 놓고 이데올로기 논란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연개소문>은 방영 첫회부터 시청률 20%고지를 돌파하며 대형 사극의 인기 붐에 합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개소문>은 방영 첫회부터 시청률 20%고지를 돌파하며 대형 사극의 인기 붐에 합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SBS
최근 하반기 드라마 시장의 인기 코드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시대극의 열풍이다. 최근 시청률 30% 고지를 넘어선 MBC <주몽>을 비롯하여, 지난 8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의 <연개소문>, 9월 방송을 시작하는 KBS의 <대조영>과 사전제작중인 <태왕사신기>에 이르기까지 각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고구려 사극에 '올인'하며 안방극장에 대형 사극 신드롬을 예고하고 있다.

드라마 총 제작비가 무려 300억~400억원에 이르는 시대극 열풍은, '안방극장의 블록버스터'로서 뛰어난 영상미로 스펙터클로 시청자를 유혹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안방극장에 불고 있는 '민족주의' 열풍도 시대극의 인기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안방극장에서 지나친 '감상적 민족주의'가 넘쳐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우리 역사의 걸출한 위인들을 중심으로 '영웅 신화'에 치우친 사극들이 기록에 대한 객관성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민족주의에 접근하며 선동주의를 부채질하고 있고, 스펙터클에만 치우쳐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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