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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로 지낸 시간을 더해보니 2년 하고도 몇 개월이 넘는다. 꽤 긴 시간이다. 요즘 세상에 백수 생활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말도 해보고 놀기만 한 건 아니라고 변명도 해보지만 결국 열심히 산 것도 아니라서 할 말이 없다. 어쨌건 일단 백수를 면하고 있다는 게 중요할까. 그게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백수였을 때, 나는 너무 작고 초라했다. 스스로 우울한 생각을 떨쳐 내지 못했다.

지금은 백수가 아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이전에도 조금 일을 했었지만, 어쨌건.) 그럼 백수가 아닌 내 모습은 어떨까. 백수는 아니지만, 따지자면 반백수라고 할 수 있다. 수입액이나 직급을 따져보면 그런 셈이다.

며칠 전 두 번째 국민연금 납부 예외 신청서를 냈다. 예전에도 한 번 냈었는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인턴은 4대 보험과 무관하다. 지금까지 국민연금 납부 기간은 잠시 다른 곳에서 일했던 때의 5개월. 그게 뭐 그리 중요해 싶다가도 허무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하자센터와의 인연

하자센터에 다니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대체 거기가 뭘 하는 곳이고 그런 곳에서 네가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와 '와 멋진 곳에서 일하는 구나'. 나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보고 싶었다고 모호하게 대답했을 뿐. 생각해보면 대체 내가 어쩌다가 하자센터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까, 싶은 순간도 있다. 조금이라도 일했던 분야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좋지 않겠냐는 주변 반응에도,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면서 자기 동굴만 파고 있기보다는 무언가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낯선 무언가를 시작했다. 그게 하자였다.

아르바이트, 또 짧고도 어설펐던 사회 경험을 통해 꽤 많은 상처와 교훈을 얻으며 '이것이 사회'라는 걸 대충이나마 깨달았고, 그러다가 결국 이런 저런 사정으로(아, 정말 달리 표현하기 힘들다) 이제 하고 싶은 것도 다 필요 없어, 라고 소리치고 싶던 순간 모니터에서 발견한 채용 공고. 그게 하자와의 인연이었다. 나름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은.

▲ 하자에 처음 온 사람들 대부분이 헷갈려하는 화장실. 나 역시 첫 날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고 나왔다.
ⓒ 김미정
처음 하자센터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첫 느낌은 막연한 불안. 그 불안의 정체가 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설명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낯선 곳'이 주는 느낌과는 다르다. 독특한 공간 구조,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하자센터에 대한 이미지, '바깥 사회'에서 겪었던 것과 어딘가 다른 사람들과 분위기가 한 데 뒤섞여 꽤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문화 속에서 이제 인턴 생활 4개월. 앞으로도 약 5개월여 인턴생활이 남아 있다. 그런데 대체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판단은 이른 것도 같지만, 걸어가는 중간에도 평가는 필요할 텐데.

조금씩 익숙해진 생활

틴즈이코노미, 청소년, 경제 교육, 창업 체험, 57만3600원, 피아노, 목요 카페, 11시-8시. 굳이 설명하자면 몇 가지 키워드를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숫자가 먼저 눈에 띌까. 57만3600은 한 달 실수령액. 직급은 인턴, 틴즈이코노미라는 팀에서 청소년 경제 교육의 일환으로 창업 체험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근무 시간은 11시에서 20시(물론, 유동적이다-그래도 일단 다른 직장인들이 보면 부럽기 한이 없겠지만), 수요일엔 피아노 수업을 듣고, 목요일엔 세미나가 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하자에서의 내 삶이 와 닿을까? 글쎄, 다양한 키워드만큼이나 여러 주제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백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백수 탈출 자체를 즐거워하게 되지만, 나중엔 언제나 위험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위험이 외부에 있는 것이든 내부에 있는 것이든. 하자도 다르지는 않다. 평생고용이 사라지고 자기고용이 대두되는 사회. 아예 일과 생활을 분리시키거나 끊임없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게 되는 사회. 그 속에서 살아남는 어떤 다양한 방법 중 하나를 찾아가고 싶다. 이곳 하자센터에서. 조금씩, 천천히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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