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법무부 홈페이지에 실린 민법 개정안 설명. 여성 배우자의 지위가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무부 홈페이지에 실린 민법 개정안 설명. 여성 배우자의 지위가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법무부 홈페이지

그 말이 그 말로 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써 본다면.

'상속재산 절반은 무조건 배우자 몫' '상속재산 50%는 배우자 몫'
'배우자 상속분 50%로 부부재산- 여성 '절반의 기여' 인정' '재산 상속 '양성 평등' 시대로- 민법 개정 시안의 의미' '여성 보호 진일보한 민법 개정 시안' '배우자 상속 몫 50%로'


3일 여러 일간지와 인터넷 신문들에 이같은 제목들을 단 기사가 떴다. 전날 법무부가 발표한 민법 개정 시안 중 '피상속인의 배우자 상속분의 변화'를 다룬 기사들이다.

민법상의 상속 규정의 변화는 간단히 말하면, 현행법은 '자녀는 남녀 구분 없이 상속 재산을 똑같이 나눠 가지되, 배우자 상속분은 자녀들 몫에 50%를 가산한다'이고, 개선안은 '배우자가 상속 재산의 50%를 우선적으로 갖고 나머지 50%를 자녀들이 똑같이 나눈다'이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배우자는 자녀가 상속받는 재산의 1.5배를 받도록 돼 있었으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 비율과 상관없이 무조건 상속 재산의 50%를 배우자가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을 보호하는 양성평등 법안이라는데, 정말?

기사들이 워낙 친절하게 표를 동원하고 수치까지 계산해서 설명해주는 바람에 수학적 계산과 돈과 법에는 남성들보다 무지(하다고 알려져 있기도)한 여성인 나도 잘 알아들을 수는 있었는데,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힌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다시 또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약간씩은 정보량과 표현이 다르니 모두 써본다면.

① 이르면 내년부터 남편이 상속으로 남긴 상속재산의 절반을 배우자가 상속받는 등 여성 배우자의 법적 지위가 강화될 전망이다… 법무부는 "배우자의 법정상속분이 이처럼 바뀌면 상대적으로 경제적 약자이던 여성 배우자의 경제적 지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② 예를 들어 두 자녀를 둔 부부 중 남편이 1억4000만원을 남기고 사망한 경우, 현행 민법 상속 체계에서는 자녀가 각각 4000만원을 갖고, 아내는 이보다 50% 많은 6000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새 제도가 시행되면 아내가 우선적으로 7000만원을 상속하고, 두 자녀는 나머지 7000만원을 3500만원씩 나눠 갖게 된다.

③ 내년부터 남편이 유언이나 특별한 상속 계약 없이 재산을 남기면 남편이 남긴 상속 재산의 절반인 50%는 아내에게 돌아간다.

④ 이르면 내년부터 남편이 남긴 상속재산의 50%는 아내에게 상속된다. 지금까지 자녀가 두 명이면 자녀들과 배우자 간 상속 재산 비율이 1:1:1.5로 적용됐으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와 관계없이 상속 재산의 절반은 무조건 배우자가 갖게 된다.

⑤ 남편과 함께 자녀 넷을 키운 주부 ㄱ씨는 남편이 숨질 경우 현행 민법대로라면 남편 명의 재산의 27.2%를 상속받는다… 이르면 내년부터는 ㄱ씨는 상속 몫이 50%로 늘어날 전망이다. 법무부가 2일, "공동 상속자의 수와 관계없이 상속 재산의 50%를 배우자의 몫으로 인정해주는 민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⑥ 이르면 내년부터 별도의 유언이 없는 경우, 남편이 남긴 상속재산의 절반은 부인에게 상속된다.


상속받는 '배우자'는 모두 아내, 이상하네

길게 인용한 감이 꽤 있지만 기사를 읽으면서 느낀 괴이쩍은 위화감을 전달하고 싶어서인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법안의 문구에도 기사 제목에도 '배우자'라고만 써있는데, 본문 기사와 설명에서는 왜 모두 죽은 사람은 남편이고 살아있는 사람은 아내이며, 상속하는 사람은 남편이고 상속받는 사람은 아내가 되어 있는가.

그리하여 이 개정 시안이 여성 배우자에게만 유리하게 바뀌었다고 해석되고 있는 것일까. 불현듯 '배우자'란 부부 중 아내만 뜻하는 것인가 싶어질 지경이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뜻은 이렇다.

배우자: [명사]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부로서 짝이 되는 상대자'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바로 여기에서 그 석연치 않은 위화감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법무부가 개정 시안을 발표하면서도 그러했고 이를 보도한 기사도, 심지어 사설마저 거의 한 목소리로 자랑스레 '결혼한 여성의 지위와 재산 권리를 강화하고, 여성보호와 양성평등을 구현한 진일보한 개정 시안'이라고 설명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니다' 싶거나 부족했던 것이 바로 그것.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민법상, 또는 고정관념과 통념상, 아니 실제 생활에서도 여성은 재산의 획득과정에서도 소유면에서도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다. 애초에 경제적인 마당에 나갈 수 있는 길이 현저히 좁았음은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돈에는 남성의 얼굴만 새겨져 있다.

사회에 진출해 경제적인 소득을 일구고 생계비를 번다 해도 '생활비나 반찬값 버는 정도'로 가치가 폄하되었다(여성 스스로도 그랬고). 임신과 육아와 가사 일을 도맡아 전담하면서도 전업주부라는 이름으로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다(여성 스스로도 그렇게 느껴야 했다).

행여 재테크에서 수완을 발휘해 재산 증식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 해도 '돈만 밝히는 복부인 아줌마' 정도로 비웃음을 당하곤 했다. 통장을 따로 관리하면서 남편과 동등하게 일하고 돈을 벌어도 거의 모든 서류상에 '피부양자'로 남아 있거나 명의는 남편의 몫이었다.

개정 민법안의 내용을 소개한 4일자 신문들. 배우자를 여성으로 가정해 법안을 설명했다.
개정 민법안의 내용을 소개한 4일자 신문들. 배우자를 여성으로 가정해 법안을 설명했다. ⓒ <조선일보> <경향신문> 홈페이지
결혼과 함께 부부재산 불평등이 시작된다

이런 일들은 두 남녀가 결혼할 때부터 생긴다. 여성 쪽이 혼수용품을 바리바리 장만했다 해도 그것은 부동산으로 명의를 올릴 수 없는, 재산이라고 떳떳이 명명하기 뭣한 생활용품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남성은 전셋집이든 자기 집이든, 크든 작든 자신의 이름으로 장만할 수 있었다.

결혼 전에 '부부 재산 계약'을 약정할 수 있는 간단한 법이 있으나 많은 이들이 아예 몰랐거나 민망한 탓에 하지 않았다. 함께 재산을 일구어도 공동 명의로 하거나 여성의 이름으로 올리는 것을 당연히 여기진 않았다(이혼을 전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각자의 이름으로 올릴 만큼 많은 재산은 아니기도 했을 터).

어릴 때부터 생계를 유지하고 처자를 부양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책임감이자 덕목으로 꼽고 자란 남성과 달리, 돈과는 되도록 거리를 두고 돈 욕심을 줄이고 '살림이나 잘하는 게 남는 것'이라는 소리를 암묵적으로 들으며 자란 여성들은 경제 감각과 자기 재산의 소유에 대한 모든 관념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그러다가 결혼할 때는 사랑을 이유로 공동재산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게 된다. 직장에 다니다가 결혼할 즈음이면 음양으로 해고위협에 시달리고 임신과 육아와 가사 때문에 자발적으로 퇴직하게 된 여성들은 서서히 재산 증식과정에서 멀어져 간다.

이렇게 점차 경제활동인구는 남성이 되고 여성은 소위 '살림'을 하는 사람이 되면서 이후부터 모든 소득의 명의는 남편의 이름으로 등재된다.

여성의 일이 확실하게 재산증식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노동가치로 분명하게 환산되지 않는 탓에 여성은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의 위치에 서게 된다(여성의 가사 일에 대한 노동가치는 죽어서야 보험회사에서 산정되는 비율에 따라 알 수 있게 된다).

남편의 이름으로 된 집에 들어앉아 일을 하면서, 여성은 남편이 몰래 재산을 빼돌리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이혼할 수 있을 때 제대로 분할이나 받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부부의 애정과 신뢰가 변치 않고 오래오래 잘 살아야만 간신히, 겨우 저 위에서 말하는 '개선'민법안의 향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법 자체의 문건대로라면 '배우자 몫이 50%'인데도 '아내들은 이제 50%를 받게 된다'고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고 여성들이 그다지 환호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법안을 여성계가 반대하는 이유

여성계는 '부부공동재산제를 인정하지 않는 배우자의 상속재산 절반은 국민을 현혹하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듣고 보면 모두가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저 개정 시안을 놓고 왜 여성계가 반대하고 나섰을까.

법이 바뀌면 제일 먼저 수혜자가 될 게 뻔한(하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이 먼저 '상속 재산과 관련하여 여성 배우자의 몫이 많아지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지위가 결코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행 민법은 부부재산에 관하여 별산제를 법정재산제로 하고 있다. 부부별산제란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배우자의 재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내가 돈을 벌어 집을 샀어도 그 집이 남편 명의로 되어 있다면 아내는 그 집에 대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부부 누구에게 속한 건지 분명하지 않은 재산은 부부의 공유재산으로 본다.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부부별산제는 커다란 허점을 안고 있다. 우선 대부분 가정에서 부동산이나 전세금, 예금 등 재산적 가치가 큰 중요재산은 남편 명의로 해놓기 때문이다. 남편이 일방적으로 명의를 이용해 대출을 받거나 처분해버려도 아내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런 별산제의 규정은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형성한 재산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명의를 가지지 못한 부부 일방의 잠재적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계는 부부별산제의 부부공동재산제로의 개정을 오래도록 촉구해왔다.

부부공동재산제에 따르면 혼인 이후 형성된 재산을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이룩한 것으로 추정하고, 배우자의 상속분은 공동의 재산으로 추정되는 절반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부부공동재산제를 인정하지 않은 채, 배우자의 상속분 절반을 내세우며 여성 배우자의 지위가 한층 강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개정 시안은 '눈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다.

애초부터 배우자 몫의 재산, 선심쓰듯 주지 말라

지난해 5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사노동의 가치평가를 위한 입법방안 토론회'(자료사진).
지난해 5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사노동의 가치평가를 위한 입법방안 토론회'(자료사진). ⓒ 우먼타임스
법무부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혼인 생활 중 부부가 협력하여 이룬 재산은 균등하게 분할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부부재산제도의 개정취지와 외국 입법례를 반영"했다고 그랬다.

그 말대로라면 배우자에게 상속된다는 절반의 몫은 이·미·배·우·자·의·몫이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를 전제한 후에 나머지 절반에 대하여 상속분을 나눠야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 시안대로라면 여성 배우자의 상속분은 아·예·없·는·것으로 봐야 한다.

결혼하고 같이 살면서 취득한 재산, 그러니까 애초부터 당연한 배우자 몫의 재산을 갖고서 마치 선심을 쓰듯이 "절반을 나누어 준다"고 하고 심지어 "여성 배우자의 지위 강화와 보호"를 외치는 것은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여성(입장을 바꾸면 남성까지도)을 현혹하는 것이다.

부부의 실질적 경제평등을 구현하기 위해서 가장 합리적인 것은 부부별산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부부공동재산제의 장점을 결합한 법을 만드는 것이다. 즉, 혼인 중에는 별산제를 유지하되 혼인이 해소되는 경우에는 부부공동재산제의 취지에 따라 재산을 분할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보장함으로써 부부 쌍방의 노력으로 이룬 재산에 관해서는 부부상호간 평등하고 합리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의 생계가 걸린 중요재산은 명의자가 배우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한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상속재산에서 피상속인이 혼인 중에 취득한 재산의 절반을 선취분으로 받고, 나머지 재산을 배우자를 포함한 다른 상속인이 상속받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혼인 중 형성된 재산에 대해서 배우자의 실질적인 상속분을 높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독일·그리스·콜롬비아 등이 채택한 이 제도의 이름은 '증가재산분할제'다. 남녀의 입장을 넘어서 꽤 합리적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민법 개정 시안에는 상속과 관련한 규정 말고도 이혼을 하지 않고도 재산분할을 요구할 수 있게 한 재산분할 규정과 협의 이혼에 관한 '이혼 숙려제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미묘한 문제들이 여럿 있지만 상속규정 건이 크게 불거지는 바람에 말할 기회를 놓쳤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