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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기업인이 많아지면 경제도 그만큼 튼실해진다. 사진은 여성이 나서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하자고 외쳤던 제9회 여성경제인의 날 기념식.
여성기업인이 많아지면 경제도 그만큼 튼실해진다. 사진은 여성이 나서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하자고 외쳤던 제9회 여성경제인의 날 기념식. ⓒ 우먼타임스
[함영이 기자] 여성 경제인의 날은 1996년 대통령 주재 중소기업 관계장관 회의에서 현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의 전신인 여성경제인실업인회의 법인 등록일을 여성 경제인의 날로 지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는 10주년을 맞는 만큼 여성 CEO, 여성 근로자들에게 예년보다 폭넓은 시상이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 10년 동안 여성 기업인들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왔지만 여전히 규모가 영세한 소상공인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여성 기업인 숫자는 꾸준히 늘어 2004년 말 현재 우리나라 기업 중 여성기업은 전체 40%에 육박하는 1백14만7천여 개. 그러나 이 가운데 40% 이상이 생계형인 영세업자이다.

여성사업체의 93.9%가 소상공인이고 전체 소상공인 중 88.9%가 여성사업체인 현실 또한 넘어야 할 장벽이다. 아직도 여성 사장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남편의 보장을 요구하는 등 차별의 잔재가 남아 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등 여성경제단체들은 미국처럼 정부가 공공기관의 정부 조달물품
중 5%는 여성기업 제품을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기업을 우대하는 것은 새로운 경영모델”이라는 것이 여성 기업인들의 주장. 2003년 기준으로 여성기업의 부채비율은 64.3%인데 비해 일반기업은 173.7%로 3배 가까이 많다. 반면 자기자본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 여성기업이 42.1%로 일반기업 36.5%보다 높다. 매출액경상이익률 역시 2003년 기준으로 여성기업이 13.1%로 일반기업 3.4%보다 4배 가까이 높다. 여성기업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 경제가 더욱 안정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통계 수치다.

여성경제인협회의 역사 역시 녹록치 않다. 1977년 (사)한국여성경제인실업인회로 법인 등록(상공부 인가)을 한 협회는 1998년 (사)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로 개칭한 데 이어 1999년 6월 한국여성경제인협회로 새롭게 탄생했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셈이다. 출발 당시 2백50개에 불과했던 회원사 규모는 2006년 현재 전국 13개 지회에 1천5백여 개로 6배나 커졌다.

단체를 이끈 수장들의 면모도 화려하다. 초대 회장은 최경자 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 이사장. 이어 1950년대 건설업에 뛰어들어 이름을 날렸던 이영숙 현 명성황후추모사업회 회장이 2대 회장을 맡아 연합회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내실을 다지고 위상을 높였다. 이어 고 백영자 퀸비가구 대표, 이상숙 소예산업·정모제약 대표, 고 허복선 제일중기공업 대표가 바통을 이어갔다. 당시 여성 기업인들은 정부나 단체가 주최하는 CEO 모임이나 회의에 가면 “왜 사장이 안 오고 비서가 왔느냐”는 조롱 섞인 질문을 받은 일도 있다고 회고한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로 재 탄생하면서 여경협의 초대 회장은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맡았으며 현 정명금 회장은 재 탄생한 협회의 4번째 회장이다.

여성 기업인들의 도약은 1999년 ‘여성기업지원에관한법률’이 제정·공포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통계청 사업체기초통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사업체 수는 2000년 전체의 35.1%를 차지하게 됐으며 이어 완만하게 성장, 2001년 36.3%, 2002년 36.9%까지 올라갔다. 2003년 36%로 주춤하던 여성사업체는 2004년 40%에 육박하며 다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남편 대신 가장 역할을 하는 ‘허즈와이프(Husband+Wife·여성가장)’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여성 기업인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를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여성기업에서 일하는 여성 종업원 수는 2003년 기준으로 76.4%로 일반기업의 39.9%와 비교해 2배에 달한다. 여성 기업인을 육성하는 것이 곧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지름길인 셈이다.

“회원에 실익·대외위상 높이는 여경협 되도록 이끈다”
[인터뷰] 여성경제인협회 정명금 회장

정명금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이 2004년 취임했을 당시 협회는 회장 선거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잡음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정명금 회장 역시 회장 선거를 둘러싼 법정 공방으로 임기의 6개월을 허비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여성경제인협회에서 그 같은 우울한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여성 기업인들이 지난 10년 동안 양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전체 기업인의 40%에 육박하고 있지요.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구매해주는 여성기업 제품은 전체의 2.5%(2004년 기준)에 불과합니다. 양적인 성장에 비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협회 차원에서 나서야 합니다.”

협회가 여성 기업인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정 회장은 취임 후 회원들에게는 실익을 주고 대외적인 위상을 높이는 양 날개 작전을 구사했다.

첫 번째 작업은 여성 국회의원들과 연대해 ‘여성기업지원에관한법률’ 제2조의 여성경제인의 범위를 ‘여성기업의 여성임원’에서 ‘기업의 여성임원’으로 확대한 것. 중소기업의 여성 CEO와 대기업의 여성 임원 사이에는 긴밀한 유대관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실효성 없는 지원책은 과감하게 바꾸려고 하고 있다. 정부기관이 물품을 조달할 때 5%를 여성기업 제품으로 구매하도록 권고만 하고 있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강제규정을 두도록 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여경협 내에 있던 창업보육센터를 여성비즈니스개발센터로 확대, 선배 기업인들과 맞춤형 멘토링이 가능하게 했다.

이 밖에도 정 회장은 여성경제인협회 출연 기부금에 대한 50% 소득공제 추진이나 명목상 여성 사장을 내세우고 있는 기업을 가려낼 수 있는 ‘여성기업인 확인제도’역시 여성 기업인들을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에 협회 사옥을 마련했다. 여성경제인협회의 거점이 됨은 물론 강남지역에 자리를 틀고 있는 다른 여성경제단체들과의 공간적인 거리도 좁혔다.

여성경제단체들과의 연대는 이미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전경련이나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가 한 목소리를 내듯이 여성경제 5단체도 여성 경제인 지원을 위해 함께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공동 프로그램을 만들고 조찬 포럼 등을 통해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여성경제인협회는 물론 다른 여성경제단체들의 대외적인 위상도 높이는 일이다. 협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는 국제대회도 한몫 했다.

지난해 8월 대구에서 열린 APEC-WLN(여성지도자네트워크) 회의와 지난 4월말부터 5월 3일까지 열린 FCEM(세계여성경제인협회) 서울총회가 대표적인 예. 양 대회 모두 노무현 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참석해 축사를 하는 등 여성 경제인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대구에서 개최된 APEC-WLN은 역대 최대 규모로 성황을 이뤘다는 평을 얻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FCEM은 1천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과 상담 실적을 올리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얻었다.

“밥 먹고 인사하는 행사는 진정한 장사꾼이 하는 것은 아니다. 장사꾼이라면 친목만 도모할 게 아니라 이익을 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 고스란히 드러난 행사였다.

올해가 임기 마지막 해인 정 회장에게는 아직 남은 과제가 있다. 선거를 둘러싼 불협화음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공정한 선거관리를 할 수 있는 선거관리위원장을 외부에서 선임하고 갈등을 야기했던 장본인들의 출마를 제한하는 조항을 만드는 등 조직이 안정될 수 있는 기반을 확실하게 다져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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