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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계란 후라이를 넣고 흔들면 맛난 비빔밥이 되는 옛날 양은 도시락.
김치와 계란 후라이를 넣고 흔들면 맛난 비빔밥이 되는 옛날 양은 도시락. ⓒ 이소원
386세대의 한 가운데 있다가 어느새 486 세대에 막 들어섰다. 세대가 그렇다 보니 70∼80년대에 걸쳐 도시락을 꽤나 까먹고 다녔다.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76년 무렵부터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지 않았나 싶다.

그로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5년까지 약 10년 동안 도시락 신세를 졌다. 엄밀히 말하면 대학 1학년 때도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달랑 맨 밥이었으므로 도시락으로 명명하기엔 다소 모자란다.

장구한(?) 세월을 도시락과 동고동락을 하다보니 에피소드도 밥알만큼 차고 넘친다. 그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몇 개의 추억을 싣고 '386 도시락 열차'의 기적을 울리며 출발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박하사탕'일 것이다.

#1. 오! 부러워라! 보온도시락

초등학교 시절엔 도시락 자체도 부러웠지만 보온도시락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정환경 조사에 전화기 TV, 냉장고, 전축의 유무가 부의 척도가 되던 시절. 보온도시락도 그것들과 연동했다.

지금 기억으론 도시락을 싸 간 날보단 학교에서 나눠주는 빵 조각을 우물거렸던 기억이 많다. 어머니 혼자 5남매를 키우다보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이유였다. 육성회비를 제대로 내고 졸업한 식구가 아무도 없었던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시락은 언감생심이었다. 아무 것도 싸오지 못한 날 점심시간, 어느 친구의 보온도시락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쌀밥의 훈기가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그러나 보온도시락은 조개탄 난로에 올려 누룽지를 해먹을 수 없는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2. 오! 역겨워라! 김치 냄새

중학교에 가면서 가세가 조금 폈다. 물론 사춘기 아들이 점심시간에 '맨땅에 헤딩'하는 꼴을 막기 위한 어머니의 헌신 때문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어머니는 꼬박꼬박 도시락을 챙겼다. 물론 반찬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김치가 가장 만만한 도시락 반찬이었다. 사실 한국 사람이 김치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가. 문제는 사춘기 중학생쯤 되면 도시락 반찬으로 자기 집의 빈부 위치를 대충 가늠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김치는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반찬이었지만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가끔 개구쟁이 주인의 가방 속에서 '울컥'하고 멀미를 해대는 것이다.

반찬 통에서 끓어 넘친 김치는 겁도 없이 국정교과서를 시뻘겋게 물들이고 공들여 필기한 무제노트를 처참히 유린하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있었으니 빨지 않으면 절대 사라지지 않는 역겨운 가방 속 김치 냄새다. 그 냄새로 인해 해대던 헛구역질의 불유쾌한 추억.

#3. 오! 고소해라! 눌은밥

겨울이면 교실 창문마다 빠끔히 나온 T자 연통으로 조개탄 난로 연기가 폴폴 피어난다. 난로는 화력이 제법 세기 때문에 도시락 데워 먹기 안성맞춤이다. 밥 위에 물을 약간 뿌린 후 난로 위에 도시락을 수북히 쌓아 놓고 틈틈이 위아래를 바꾼다.

누룽지를 원하는 학생 것은 아래에 계속 박아두면 된다. 당시는 플라스틱 도시락이 없었을 뿐더러 이 맛에 있어도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돼서 뚜껑을 열면 고소한 누룽지 냄새가 교실 안을 진동시켰다. 반찬이 그다지 많이 필요 없을 정도의 밥맛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설거지가 꽤 힘들다는 것이다. 양은 성분의 도시락에 눌러 붙은 누룽지를 떼자니 표면이 많이 상했다. 또 힘도 많이 들었다. 물론 씻어 보진 않았지만.

조개탄 난로 위에 도시락을 데우는 풍경은 벌써 오랜 추억이 됐다.
조개탄 난로 위에 도시락을 데우는 풍경은 벌써 오랜 추억이 됐다. ⓒ 인천부평도서관
#4. 오! 얄미워라! 젓가락 족

고등학교를 들어가자 난방이 난로가 아닌 보일러였다. 누룽지와는 아듀를 고해야 했다. 대신 절대 타지 않고 따끈히 데워만 주는 라디에이터 덕에 어머니의 설거지 노고는 많이 덜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는 점심시간만 되면 이상한 조직(?)이 생겨났다.

일명 젓가락 족인데, 한 반 60명 정원에 10여명 정도가 조직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학급의 뒷자리에서 주로 만들어져 뒤에서 앞으로 친구들의 도시락을 자기 것인 양 유린한다. 이들은 언제나 입맛에 맞는 반찬을 골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뷔페 식으로 가장 잘 먹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젓가락 족의 조직원이 되려면 평소에 인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도시락 뚜껑이 제대로 열리지 그렇지 않으면 구박 당하기 일쑤다. 가끔 '식후 연초'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젓가락질을 디밀고 달려드는데 밉지 않았다.

#5. 오! 황당해라! 빈 도시락

빈곤한 반찬 때문에 당한 기억은 없지만 도시락 알맹이를 도난 당하고 망연자실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집중 공세를 당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반찬은 1년 동안 절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품질이 균등하게 보장됐다.

다시 말해 그 친구 도시락 반찬을 털면 매번 맛있는 장조림(메추리알 포함), 스팸 구이, 비엔나소시지를 맛 볼 수 있었다. 어찌나 반찬을 맛나게 조리해 오는지 모든 친구들이 좋아했다. 그러나 공급은 한정돼 있고 수요는 많다보니 가끔 사고가 나곤 했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들어오거나 심할 때는 아침 야외조회를 마친 후에 이미 도시락은 비워지기도 했다. 그 친구는 고육지책으로 다른 반 친구에게 맡기고 나갈 때도 있었는데, 그마저 알려지면서 매우 곤혹스러워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텅 빈 도시락 때문에 의리 상한 일이 없었으니 정겨운 때였다.

#6. 오! 신기해라! 북한 쌀밥

1987년 명동성당. 6월 항쟁이 한창이던 때 계성여고생들이 농성자들에게 도시락을 건네며 힘을 보탰다.
1987년 명동성당. 6월 항쟁이 한창이던 때 계성여고생들이 농성자들에게 도시락을 건네며 힘을 보탰다. ⓒ 성공회신학대
1984년 태풍 셀마로 인해 남한 지역에 피해가 컸다. 당시 이례적으로 북한에서 대남 쌀 원조를 하겠다고 나섰다. 남북관계 긴장완화를 위해 남한 정부는 육로를 통해 북한 쌀을 받아 수해 가정에 나눠줬다.

태풍 피해규모가 컸던 만큼 같은 반에도 피해를 입은 친구가 있었다. 한강변에 살던 한 친구 집은 1층이 모두 잠겨서 2층으로 피했다가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설마 북한에서 쌀을 원조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때다.

때문에 얼마나 신기했는지. 북한 쌀로 지었다며 커다란 찬합에 두통이나 싸온 밥은 눈 깜짝할 사이 동이 났다. 맛보다는 북한산 이팝이라는 신기함으로, 신기함 속에는 민족의 동질감을 느끼고자 한 마음이 들어있지는 않았는지.

가장 아름다운 도시락을 손꼽으라면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명동성당 담벼락을 넘어오던 계성여고 학생들의 것이 아닐까 싶다. 먹고 힘내라며 자기들 것을 넘겨주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하고 목이 멘다. 한참 어린 동생으로만 느껴졌던 그들은 따지고 보면 오늘날 아내 또래가 아니었던가!

#7. 오! 고마워라? 단체 급식

도시락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이만큼의 추억은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끼니를 학교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는 방증이다. 대학 이전에 단 한번도 정기적인 급식을 받은 적이 없고 오로지 집 도시락으로 살았는데, 단 한번도 이로 인해 탈이 났던 적이 없던 것 같다.

비단 기자뿐 아니라 주위에 식중독으로 인해 탈이 나서 학교를 못나왔다는 친구가 있었다는 기억이 없다. 그것은 어머니의 정성이 신선한 재료를 만나 만들어 낸 천연 백신 같은 도시락이기 때문이리라.

최근 단체 급식으로 말이 많다. 먹을거리는 생명과 직결된다. 각별한 주의 만으론 모자란다. 어머니의 사랑 같은 정성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 국가의 미래에 투자하는데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은 어리석지 않은가.

한쪽에서 벌어서 다른 한쪽으론 시혜를 베푸는 것이 기업 윤리다. 급식이 시혜의 대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번엔 '오! 고마워라! 단체 급식'이란 에피소드로 글을 쓰는 영광을 맛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기사공모]도시락에서 학교급식까지

'도시락과 급식 기사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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