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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얼마 전 한국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미국 여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고 한국과 일본에 대해 사전에 공부를 하고 온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서 살아 보니 미국에서 공부하고, 듣고, 생각했던 것과 무엇이 어떻게 다르더냐고 물었다. 외국과 외국문화에 대해서는 책과 미디어, 또는 단편적인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것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생활 속에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일본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른 점이 있었다며 두 가지를 예로 들었다.

여성들의 큰소리 대화 '깜짝'

하나는 여성들의 대화 모습이었다. 직장에서 큰소리로 대화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심각한 문제로 다투는 것으로 생각해 옆에 있는 동료에게 저 사람들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물었단다.

어제 쇼핑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는 동료의 대답에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쇼핑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싸우는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전투적'인(?) 우리의 대화 방식이 이방인의 눈에 생소하게 비친 것이다.

우리 문화는 전통적으로 말씨를 맵시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겼다. 사람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언, 즉 말씨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말소리가 집 담장을 넘는 것은 품격이 떨어지는 행동이라 하여 경계했던 것을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소리로 말하고 떠드는 것이 우리 본래의 모습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시사하듯 거칠고, 무례하고, 전투적이 되었다. 이런 의사소통 방식은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당황스럽게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하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여성들이 서슴없이 화장하는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고 했다. 서양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몇 가지가 있다고. 소시지 만드는 과정이 그렇고, 법 만드는 과정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완성된 모습의 소시지나 법은 근사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식욕을 돋우거나,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하기에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다양한 고기 부위를 마구 섞어 만드는 소시지 가공 공정이나 거친 몸싸움, 말싸움, 날치기도 마다 않는 입법 과정의 모습을 연상하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여성에게 화장 역시 이와 비슷하다. 화장한 모습은 아름답지만 화장하는 과정은 지극히 사적인 일로 만천하에 공개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거침없이 화장하는 여성들을 본다.

공공장소 화장하는 모습 '생소'

사실 길거리에서 화장하는 것은 자칫 '거리여성'의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런 행동이 외국인의 눈에 생소하게 비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가 들려준 위의 두 가지 경험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 조사 결과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거칠다", "예의가 없다"라는 응답이 나오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흔히 사람은 제멋에 산다고들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인간은 제멋에 살기보다는 타인의 눈에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다. 문화란 결국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의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이 결정한다.

한 이방인의 한국에서의 경험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눈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의 방식의 일면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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