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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
책 <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 ⓒ 솔
현대를 사는 인간들은 마치 '소비하고 버리는 일'에 열중하며 사는 듯 보인다. 대형 마트에 가 보면 대체 뭐가 그리 많이 필요한지 짐수레 가득 물건을 싣고 구입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다. 이런 대열에 나도 빠지지 않고 줄을 서 있으니 가끔은 내 자신이 한심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구입한 것들을 보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껴 있으며 온갖 화학적 물질의 결합인 플라스틱류와 잘 먹지도 않으면서 묵혀 두다 썩어 버릴 음식들도 있다. 실컷 소비하고 나면 후회가 밀려들 때도 있다. '아니 별 필요도 없는 이런 걸 내가 왜 샀지?' 하고 말이다.

책 <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은 이런 나의 삶을 반성하게 하는 '심플 라이프(Simple Life)'에 관한 내용이다. 일본의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로 살면서 승승장구했던 저자는 비싼 브랜드의 화장품과 하이힐, 계절별로 바뀌는 많은 옷들에 묻혀 살던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는 아주 작은 집에서 최소한의 물품과 먹거리만을 가지고 사는 심플 라이프를 지향하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바꾸게 된 계기는 바로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면서부터이다. 일본도 물론 아시아의 일부이지만 과거 검소하고 소박하던 생활 방식을 잃은 지 오래이다. 하지만 인도나 태국과 같은 나라들은 아직까지도 '최소한의 먹거리와 입을 거리'만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여행 중엔 티셔츠 두어 장으로 버틴다. 흰색 티셔츠는 점점 노래져 가고, 어깨 부분이 닳아간다. 새 티셔츠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것은 여행 중 즐거운 이벤트. 하지만 새 것을 구입하기 전엔 닳아 해진 티셔츠를 찢어버리고 앞쪽에 대는 길(앞길)은 소품을 싸는 보자기로 쓴다. 등 쪽은 청바지나 바지에 패치로 붙이거나 가늘게 찢은 세 개의 조각을 엮어 끈으로 쓰며, 비교적 깨끗한 소매 부분은 행주 대용으로 쓴다.

쇼와 초기 무렵까지 모든 일본인들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던 '마지막까지 물건을 사랑하며 끝까지 사용하는 지혜'. 고도 성장기의 소비 예찬 시대에 자랐던 우리는 그런 지혜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이렇게 훌쩍 커버렸다. 새 것을 사기 전에 기존 것을 끝까지 사용하고 처분한다."


소비 지향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 저자의 이 말에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무조건 사들이고 버리는 일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옛사람들의 아끼고 절약하는 모습이 궁색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물건을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얘기처럼 '사고 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저자는 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일본에서 고생 끝에 손에 넣었던 물건들 대부분이 사실 '없어도 괜찮다'는 물건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쇼핑 카트 속에 담긴 물건들을 한 번 생각해 보자. 개중에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입하게 되는 것들이 간간이 끼어 있다.

지금까지 당연하고 불가피하게 여겨졌던 것들 중엔 분명 없어도 되는 것들이 있다. 지나치게 풍족한 생활은 우리의 신경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무엇이 필요하고 또 불필요한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저자 또한 그런 20대를 보내왔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그 삶을 버리기가 왜 그리 어려웠을까 반문한다.

"회의 땐 이 정장, 구두는 이걸로 신어야 해."
"오늘 밤 저녁 식사는 프랑스 요리. 반드시 그 레스토랑에서 먹어야 해."
"미용실은 여기, 화장품은 이 브랜드로 해야 해."
"일 주일에 한 번은 피부 관리실에 가야 해."

'-로 해야 해'라는 말에는 얼마나 많은 구속이 담겨 있을까.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소비하면서 이렇게 자기 자신을 구속하고 살아간다. 저자는 아시아 여행을 통해 이런 것들이 하나도 쓸모 없는 허영과 허세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줄이는 삶'을 실천했다. 그 삶의 모습은 '천조각을 활용하기'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재미있는 특징은 바로 카피라이터인 저자 특유의 위트와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직접 그린 간결한 펜 그림들은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 매우 귀엽다. 저자 나름의 삶의 철학은 소박하고 단순한 문체로 전달된다. 하지만 그 속에 고개를 끄덕일만한 좋은 내용이 많다.

"돈이 필요해. 부자가 되고 싶어. 그런 기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여러 물건을 사 모으고, 차를 소유해 오면서 풍요로워진 우리 일본인들.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풍요롭다고 할 수 있는 걸까? 풍요로움 끝에 반드시 행복이 있다고 할 수는 없어요.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시아의 친구들에게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렇다. 돈과 차와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풍요로움의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의 상징은 절대 아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마음의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지니고 있으면 몸이 편리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다. 행복은 적게 소유하는 삶 속에도 깃든다는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새겨 본다.

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

무코야마 마사코 지음, 최성욱 옮김, 솔출판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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