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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누나들이 사탕을 주었다고?
예쁜누나들이 사탕을 주었다고? ⓒ 김혜원

"OO휴게텔. 피로에 지친 당신의 삶에 여유를, 오늘 당신은 황제. 피부관리, 등관리, 발관리."

'휴게텔은 뭐하는 곳이지? 피부관리, 등관리, 발관리라면 피부관리실인가? 그런데 왜 이런 선정적인 그림이 필요한 거야?' 꼬리를 무는 궁금증에 사탕봉지를 가지고 나와 남편에게 물어봅니다.

"당신 이런 사탕 본 적 있어? 휴게텔이 뭐하는 데야? 휴게텔 광고가 들어있네."
"거기 안마시술소 비슷한 데야. 점심시간이나 저녁때쯤 되면 우리 사무실 근처에서도 늘씬하고 이쁜 아가씨들이 그런 사탕 많이 나눠주던데."
"그럼 불법 아니야? 혹시 성매매도 하는 거 아니야?"
"글쎄 불법이라면 그렇게 많은 업소가 생길까? 성매매는…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그런 일도 있다고 들었어."

불법안마시술소에서 남편은 물론 이제 스무 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에게까지 마구잡이로 저런 광고물을 돌리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열이 확 오릅니다.

"이런 광고지 돌리는 건 단속을 안 해? 어른이고 청소년이고 없이 이런 거 주는 건 잘못된 거잖아. 단속을 해야지. 그리고 시각장애인이 아니면 안마사자격증을 딸 수 없다던데, 시각장애인이 안마를 하는 게 아니라면 그것도 불법 아닌가?"

흥분하는 나에게 남편은 공연한 신경 쓰지 말라며 단속도 소용없더라는 말을 합니다. 남편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도 불법안마시술소가 있는데 입구에 감시카메라가 달려있어 아무나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 젊은 여성들을 고용해서 영업을 하는 것 같은데 얼마 전 경찰들이 조사를 나왔는데도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걸 보면 단속하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라고도 합니다.

그날 오후 잠에서 깨어난 아들에게 사탕을 받은 과정을 물어보니 아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합니다.

"그거 예쁜 누나들이 줬어요. 잘 해준다고 꼭 오라던데요."
"미쳤어. 너 같은 애들한테 그런단 말야? 아빠 같은 아저씨들 말구?"
"그럼요. 주로 우리 같은 젊은 애들한테 많이 주던데요."

수상한 안마 시술소 펼침막
수상한 안마 시술소 펼침막 ⓒ 김혜원
남편과 아들은 불법으로 보이는 마사지실이나 안마시술소에서 사탕을 나눠주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라 별다른 생각 없이 받는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왕래가 많은 시내의 한 거리는 잠시만 차를 세워두어도 유리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전단지를 끼워 놓고, 걸어 다니는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홍보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홍보물을 나눠주는 사람이 특별히 외모가 뛰어난 젊은 여성들이라는 말도 빼지 않습니다.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난 5월 29일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열린다는 시각장애인들의 시위가 떠오릅니다. 전국이 온통 월드컵으로 들썩이는 요즘도 이들의 목숨까지 내놓는 항의시위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마포대교 아래서 생존권을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는 시각에도 유사안마행위나 불법안마시술을 행하고 있는 업소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며 활발한 영업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스포츠마사지나 경락, 발마사지 등 우후죽순 생겨난 일반인들의 유사안마행위에 밀려 일자리를 잃고 생계가 막막해질 시각장애인들의 호소에 너무나 당연히 공감하며 그들의 시위를 지지합니다. 또한 한 남자의 아내로서 장성한 아들을 둔 엄마로서 한사람의 여성으로서 이번 위헌 결정을 계기로 성매매나 유사성행위를 조장하는 불법안마시술소나 그 종사자들이 양성화되어 이에 따른 또 다른 사회문제로 발전하게 되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마사지실 가격표 (기사와 관련없음)
스포츠 마사지실 가격표 (기사와 관련없음) ⓒ 김혜원
포털에서 '안마'라는 단어를 넣고 검색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성인인증' 창이 뜨게 됩니다. 검색에서 나오는 결과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자격을 가진 시각장애인들에게 시술받는 '안마'보다는 안마 이외의 또 다른 서비스를 받는 '유사안마'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포츠마사지'라는 단어 역시 '성인인증'을 거쳐야 관련 정보를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안마'나 '스포츠마사지'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대해 시각장애인들은 물론 많은 수의 일반인들 역시 동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헌재의 결정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각 정당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의 생계나 사회활동을 보장해줄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국가가 가지는 장애인에 대한 보호 의무를 충실히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이 모색될 것 같습니다.

기왕에 고민을 하는 것이라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불법유사안마시술소나 무자격종사자에 대한 단속과 처벌 대책 역시 마련되길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 유사안마를 받은 수 있는 곳은 이미 너무 많습니다. 그런다보니 찜질방, 목욕탕, 스포츠센터, 피부관리실, 경락실, 발관리실 등에는 시술에 대한 전문적인 학습이나 연습 없이 몇 개월의 속성 과정만을 거쳐 현장에 투입된 관리사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 미자격자에게 시술을 받고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는 등의 부작용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의 피해사례도 적지 않게 들려오지만 이에 대한 관리나 대책은 전무한 실정입니다.

젊은 여성을 동원해 사탕 등을 뿌려대는 휴게텔, 출장안마등 유사성매매 업소 역시 철저한 단속이 필요합니다. 이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생계유지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의 건전한 성의식과 사회의식을 위해서라도 시급히 해결되어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뛰는 법위에 나는 범법자들이 있습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전에도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온 유사안마업소들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이용해 유사안마를 양성화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에 주목한 이번 위헌 판결이 극단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거나 사회를 혼란시키는 잘못된 판단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에 따른 부작용에 충분히 대처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시각장애인 복지와 국민복지 두 가지를 다 잃지 않는 현명한 후속대책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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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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