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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의 한 장면
논매기소리의 한 장면 ⓒ 권미강
구미시는 경제 재건을 꿈꿔왔던 70년대에 국가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산업도시로 변모한 대표적인 곳이다. 디지털도시, 디스플레이도시, 한국의 실리콘밸리 등 첨단산업과 관련한 명칭이 도시 이름에 늘 붙어 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구미가 농경문화의 힘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 도작(稻作·벼농사) 문화도시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구미는 농업사회였던 과거에도 넓은 평야와 기름진 옥토로 농작물 생산기지의 역할을 담당해왔던 곳이다.

산업이 국가 경쟁력의 주류를 이루는 현대사회에서 구미의 위상이 높은 것처럼 농업이 경제의 기초가 된 과거 농업사회에서도 구미는 식량생산기지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구미발갱이들소리'는 구미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노동요로 농업사회 생산 활력소였다.

모심기 중 술과 안주를 권하는 모습이 정겹다
모심기 중 술과 안주를 권하는 모습이 정겹다 ⓒ 권미강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발갱이들소리는 지난 1982년 고 김택규 전 영남대 교수를 비롯해 구미지역 전통문화에 뜻을 둔 지역의 사학자들과 함께 구미문화원에서 조사 채록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발굴된 이후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했던 발갱이들소리는 1991년 6월 지산동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보존회를 설립하고, 구미시와 구미문화원의 주관 아래 총 10마당을 재정립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열렸던 제3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경북도 대표로 출연해 민속부문 우수상인 문화부장관상을 받았다.

여기에 힘을 얻은 구미발갱이들소리보존회는 지산동 앞뜰(속칭 발갱이들·지산동 120-30번지)에 구미발갱이들소리 유래비를 세우고 발갱이들소리를 영구히 보존해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회원 중 한 분인 할아버지는 풍물 소리에 연신 덩실거렸고 소도 그 기분을 아는지 웃는 얼굴로 화답한다. 우리의 흥이 온몸에 배인 듯 했다.
회원 중 한 분인 할아버지는 풍물 소리에 연신 덩실거렸고 소도 그 기분을 아는지 웃는 얼굴로 화답한다. 우리의 흥이 온몸에 배인 듯 했다. ⓒ 권미강
발갱이들소리는 보존회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1999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됐다. 구미지역에서 유일한 무형문화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발갱이들소리의 전통성을 되찾은 구미발갱이들소리보존회(회장 이승원)는 그 보존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현지발표 공연을 갖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현지공연 발표회가 열렸다. 지난 6월 16일 구미시 지산동 샛강 자연생태습지에서다.

이 공연은 발갱이들소리의 태생지라고 할 수 있는 지산들을 임대해 보존회원들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실제 옛 모습 그대로 재연하는 것으로, 노동요의 현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초록빛 논에 흰 옷을 입은 모습들이 백로같다. 역시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이 어울린다.
초록빛 논에 흰 옷을 입은 모습들이 백로같다. 역시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이 어울린다. ⓒ 권미강
구미발갱이들소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백남진옹(83세)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구성지게 선창을 하면 회원들이 입을 모아 뒷소리로 주고받는데 그 목소리가 정말 귀에 딱딱 달라붙는 것 같았다.

소위 신세타령이라고 하는 어사용과 보를 만들 때나 홍수로 터진 둑을 쌓아올릴 때 하는 가래질소리, 둑을 다질 때나 집터 다질 때 부르는 망깨소리를 마당에서 보인 후에 논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이때는 못 둑이나 밭둑 등으로 갈 때 하는(주로 석물을 운반할 때 부르는 노래로 무거운 통나무나 돌 따위를 끈으로 매달아 나무를 가로질러 종대로 매고 가며 부른다고 함) 목도소리를 불렀다.

회원 모두가 옛 농부들의 모습 그대로 재현한 터라 논으로 자리를 옮겨 모판에서 모를 쪄내면서 부르는 모찌기소리와 모판에서 쪄낸 모를 논에 옮겨 심으면서 부르는 모심기소리를 할 때는 초록빛 모 색깔과 어울린 흰 삼베옷이 백로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우리민족이 정말 백의민족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타작소리 재현모습
타작소리 재현모습 ⓒ 권미강
이날 공연은 논매기와 타작소리 등 발갱이들소리 13마당을 들려주었는데 특히, 논매기를 마치고 상머슴을 '깽이말'이라고 부르는 걸채에 태우고, 흥겹게 집으로 돌아올 때는 관람하는 사람들의 어깨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또 논매기를 할 때 농부들에게 술과 안주를 권하는 두 아주머니들의 실감나는 연기에서 우리네 농촌의 예절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구미지역 도작(稻作)문화의 단면을 실감나게 보여준 발갱이들소리의 유래지 발갱이들은 구미시 지산동 일대에 위치한 넓고 기름진 평야다.

예로부터 두레와 품앗이 등 공동체 농경문화가 형성되면서 농사의 피로를 풀고, 풍년을 기원하는 토속성 짙은 노동요가 발달한 곳임에 틀림없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상머슴을 태워 흥겹게 마을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치나칭칭나네. 발갱이들소리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대목이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상머슴을 태워 흥겹게 마을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치나칭칭나네. 발갱이들소리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대목이다. ⓒ 권미강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마지막 격전지이기도 한 이곳은 당시 전투에서 칼로 물리쳐 발본색원했다 하여 발검들이라고 불리었고 이것이 발갱이들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고려 건국에 연관된 역사성과 농경문화를 간직한 구미발갱이들소리는 최근에 8마당 40분으로 집약돼 실내 무대공연으로도 선을 보이는 등 경상북도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로서 그 정체성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다.

또 꾸준한 보존과 발전을 위해 지역민들과 회원을 중심으로 후계자를 키우고, 전수관 건립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니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도 우리 것을 잃지 않고 전통문화를 지켜가려는 발갱이들소리 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구미발갱이들소리 보존의 두 주역
발갱이들소리 산증인 백남진옹과 기획연출 맡은 정의석씨

▲ 백남진옹(왼쪽)과 정의석씨.
ⓒ구미시청

구미발갱이들소리 전승자이자 기능보유자인 백남진(83세)옹은 구미발갱이들소리의 산증인이다.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에서 태어나 구미지역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는 완전 토박이다. 초성이 좋고 민요의 전 과정을 원형 그대로 부를 수 있는 백옹은 지역의 선소리꾼으로 주목을 받으며 발갱이들소리의 선창을 도맡아 하고 있다.

경상도 특유의 메나리조 선율 그대로를 지니고 있는 유일무이한 소리꾼으로 이 지방 전승민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91년 제3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발갱이들소리가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현재 후계자로 역시 구미시 토박이인 이숙원씨에게 전 과정을 전수해주고 있다.

발갱이들소리보존회는 지난 4월 12일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경북도립국악단 초청공연에서 들소리 8마당을 공연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관객들 사이로 입장해 가래질과 망깨소리, 타작 등을 공연한 것이다. 노동요를 무대공연에 올린 주인공은 정의석(52세)씨.

구미시청 공무원으로 17년간 구미시정을 카메라에 담고 사진으로 기록해 온 정씨는 발갱이들소리를 발굴하고 채록했던 82년도부터 발갱이들소리에 맘을 두었고, 제3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도 참여했다. 발갱이들소리 안에서 역할은 대감이지만 그는 발갱이들소리의 실질적인 기획연출자이기도 하다.

2002년 스페인에서 주관한 세계화재사진공모 100주년 기념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사진작가이기도 한 정씨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통해 발갱이들소리를 옛 노동요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전통문화로 가꾸어 갈 당찬 포부를 갖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구미발갱이들소리는 매년 모내기철을 맞아 발갱이들 현지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의 축제같은 농경문화의 단면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니 내년에 한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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