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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선수와 같은 최고의 탁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연습에 임하고 있는 태연재활원의 변우진씨. 사진은 14일 오전 11시 울산 북구 태연재활원 강당에서 코치와 함께 연습하고 있는 변 씨의 모습.
유승민 선수와 같은 최고의 탁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연습에 임하고 있는 태연재활원의 변우진씨. 사진은 14일 오전 11시 울산 북구 태연재활원 강당에서 코치와 함께 연습하고 있는 변 씨의 모습. ⓒ 울산 북구청
"유, 승, 민.. 유, 승, 민처럼 될, 래, 요…."

울산 북구 대안동 태연재활원의 탁구 유망주 변우진(22)씨는 알아듣기 힘든 어눌한 말이었지만 자신의 꿈은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승민처럼 되는 것"이라고 되뇌었다. 그는 정신지체장애 1급으로 5~6세 정도밖에 안되는 지능을 갖고 있지만 늘 세계 최고의 무대를 꿈꾸며 탁구 연습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변씨는 오는 9월 울산에서 있는 전국장애인체전에 참가하기 위해 울산장애인총연합회를 통해 출전 신청을 해 놓은 상태로 이 대회를 목표로 대부분의 시간을 태연재활원 강당에서 탁구를 연습하는데 쏟고 있다.

비장애인에 비해 속도감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운동에 대한 집념과 열의는 견줄 바 못된다. 연습하는 동안은 오로지 탁구채를 쥔 손과 또각또각 공 넘어가는 소리만이 느껴질 뿐이다.

변씨가 탁구채를 손에 쥔지는 1년 반 가량으로 그리 길진 않다. 지난 98년부터 태연재활원에서 생활해온 그는 그동안 다양한 재활치료프로그램을 받아오다 지난해 3월부터 태연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 후 수업을 통해 다른 학생들과 함께 탁구를 시작했다. 그는 같이 수업하는 학생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탁구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고, 관심과 애정에 비례해 실력도 나날이 늘어갔다.

전국장애인체전 참가를 목표로 변 씨를 가르치고 있는 황창우 코치(사진 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황 코치는 "우진이가 생각보다 훨씬 탁구를 잘해 체전에 참가해보자고 먼저 제안했는데 너무 좋아하며'시합에 언제 나가느냐'고 늘 묻는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체전 참가를 목표로 변 씨를 가르치고 있는 황창우 코치(사진 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 황 코치는 "우진이가 생각보다 훨씬 탁구를 잘해 체전에 참가해보자고 먼저 제안했는데 너무 좋아하며'시합에 언제 나가느냐'고 늘 묻는다"고 말했다. ⓒ 울산 북구청
변씨와 탁구 동기생들은 졸업 후에도 태연재활원 측의 배려로 계속 탁구 수업을 받고 있는데 이들의 '사부'는 고교시절 탁구 대표 선수로 활동한 적 있는 황창우(33·울산 중구 태화동)씨.

현재 개인적으로 탁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황씨는 탁구에 열정을 가진 원생들이 있다는 태연학교 교사의 말을 듣고 지난 1월부터 탁구 코치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변씨는 이 때부터 매달 둘째, 넷째 수요일 오전 11시에는 황씨와 함께 강당에서 맹연습을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체전에 출전을 신청해 보자는 것도 황씨가 제안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실력이 뛰어난데 이를 키워주기 위해서는 뭔가 목표를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제안했더니 무척이나 좋아하더라고요. 올 때마다 '시합 언제 나가냐'고 물어보는 게 일입니다."

황씨가 오지 않는 다른 주에는 태연학교 교사들과 연습을 한다. 연습시간 뿐 아니다. 탁구채를 늘 손에 끼고 다니며 태연재활원을 찾는 봉사자 등 '사람'만 보면 같이 치자고 조를 정도로 탁구만 생각한다.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선수의 열렬한 팬인 변 씨. 김현동 북구 공보담당이 받아준 유승민 선수의 친필 사인을 꺼내 보며 기뻐하고 있다.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선수의 열렬한 팬인 변 씨. 김현동 북구 공보담당이 받아준 유승민 선수의 친필 사인을 꺼내 보며 기뻐하고 있다. ⓒ 울산 북구청
최고의 탁구 선수가 되겠다는 그의 꿈과 함께 변씨가 갖고 있던 작은 소망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선수의 친필 사인을 받는 것.

그는 올림픽에서 유승민 선수가 금메달을 딴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본 이후 그 때부터 열렬한 팬이 돼 유 선수에 대한 모든 자료를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이 전해주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서 뽑아 모아 놓은 것들. 변씨의 '애장품'인 스크랩북에는 유 선수의 갓난아기 때 모습에서부터 최근 모습들까지 잘 정리가 돼있다.

변 씨의 탁구에 대한 애정과 그가 유 선수의 사인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김현동 울산 북구청 공보담당은 지난 달 29일 변씨의 사연과 함께 "이 청년의 작은 소망을 위해 친필 사인을 보내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담은 편지를 유 선수 앞으로 보냈다.

유 선수는 이를 외면하지 않고 '우진씨의 꿈이 이뤄지는 날까지 멀리서나마 응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친필 사인을 답장으로 보내와 14일 변씨에게 전달했다.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선수가 직접 보내 온 친필 사인 편지.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선수가 직접 보내 온 친필 사인 편지. ⓒ 울산 북구청
유 선수가 직접 쓴 편지를 받은 변씨는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말로는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운 변씨는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웃는 것으로 자신의 기쁜 마음을 대신 표현했다.

태연재활원 황혜경(37) 사회재활담당 교사는 "탁구는 우진이에게 신체단련 효과와 성취감을 줄 뿐 아니라 세상과 만나는 창이 되고 있다"며 "비록 장애인체전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진이는 세상을 향해 계속 꿈꿀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아름답지 않겠냐"고 말했다.

황 교사의 말대로 변씨는 비록 관중의 환호성도, 화려한 조명도 없는 강당에서지만 오늘도 탁구를 통해 세상을 향한 자신만의 꿈을 빚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울산 북구 웹진 <희망북구>(www.hopebukgu.ulsan.kr)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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