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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한 겨울,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한라산 자락의 곶자왈에서는 한 겨울에도 푸른 것들을 만날 수 있다. 곶자왈이 아니더라도 노지에서 무와 배추가 자라는 곳이 제주도이다 보니 한 겨울에 푸른색의 밭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런데 가을까지는 눈에 뜨이지 않다가 겨울이 되면 비로소 푸릇푸릇 자기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있다. 아주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끼', 그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 김민수
이끼는 아주 간단한 조직을 가지고 있는데 뿌리 자체가 없다. 그저 밑바닥에 거미줄로 만든 그물 같은 것들을 펼칠 뿐이다. 그래서 이끼가 예뻐 그를 가져다 키우려고 손으로 들어보면 일정한 면적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이 거미줄로 만든 그물같이 생긴 이것, 이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습기와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적절하게 보관하면서 척박한 돌덩이 같은 곳에서도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어디든 자신이 스스로 뿌리를 내린 곳에서는 잘 살아가지만 삶의 터전을 옮겨진 것들은 여간해서 제대로 살질 못한다.

ⓒ 김민수
그들의 자리 잡는 영역은 다양하다. 때론 다 썩어져 가는 고목에 자리를 잡기도 하고, 때론 돌멩이에 자리를 잡기도 한다. 경사진 그늘에 자리를 잡기도 하고 사람들 사는 곳 가까운 곳 시멘트 위에도 자리를 잡고 퍼져나간다.

어느 깊은 숲 속에서 만난 이끼의 삭, 그들은 마치 군무를 추는 듯했다.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을 보는 듯, 축제의 밤을 보는 듯 했다.

ⓒ 김민수
그들은 철저하게 가장 낮은 곳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그렇게 가장 낮은 곳을 향하면서도 이끼의 삭은 늘 하늘에 맞닿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이 합일되는 그 지점에 그들이 있는 듯하다.

ⓒ 김민수
이끼의 삭, 그들의 구조는 무척이나 단순하다. 길다랗게 줄기 하나 내어놓고 꽃이라고 불리 우지도 못하여 '삭'이라는 이름이 붙은 포자낭을 하나 내어놓는다. 그 많은 것들이 촘촘하게 올라와 서로 멀리 보려고 까치발을 들고 있는데 신기한 것은 그것들 중 하나도 얽힌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가녀린 줄기에 이파리 같은 것들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 본다. 도미노현상 같은 것들이 그들의 존재를 위협했을지도 모르겠다.

ⓒ 김민수
춤을 춘다.
심금을 울리는 춤, 마음을 사로잡는 춤은 현란하지 않다.
맑은 하늘에 선 하나 휘적 긋고,
생명의 땅에 발자욱 하나 쿵 남기며 눈을 사로잡고,
홀로 추던 춤, 덩실덩실 함께 추는 춤이 된다.
누구나 출 것 같은 그 춤, 흥에 겨워 춘다.
(자작시 '이끼')


ⓒ 김민수
지극히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끼는 그러나 일차원적인 삶을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가 있어 수많은 생명들이 공존한다. 거미줄로 만든 그물 같은 것들은 늘 촉촉한 습기를 머금고 있으며, 이끼는 푹신푹신하다. 씨앗들이 떨어지면 겨우내 포근하게 감싸주고 이른 봄이면 어김없이 싹을 틔우게 만든다. 이끼에 떨어진 새싹들은 행운아들이다. 봄이 되면 내년을 기약하며 썩어져 씨앗들에게 양분까지도 선사하니까.

ⓒ 김민수
구약성서 에스겔서에 보면 마른 뼈들의 환상이 나온다. 골짜기에 흩어져있던 마른 뼈가 제자리를 찾고, 거기에 핏불과 살이 붙어 큰 군대를 이룬다. 이 환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제 희망이 없다고 절망하는 이스라엘, 누가 보아도 이제 곧 바스러질 뼈와 같은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이 소생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무슨 환타직한 현상이 실재가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끼를 보면서 나는 마른 뼈들의 환상을 본다.

ⓒ 김민수
이끼, 단순함과 충만함이 함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낮음과 높음이 함께 있다. 그의 단순함은 일차원적인 단순함도 아니다. 어떻게 뿌리도 없이 겨우내 푸를 수 있을까? 어떻게 뿌리도 없이 돌덩이까지도 온전히 점령해 갈 수 있을까?

ⓒ 김민수
다시 겨울, 그들은 그렇게 피어난다. 이끼, 나는 이들을 보면서 그 여느 꽃에서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단순한 삶, 그것은 능히 마른 뼈처럼 부서져 버릴 허망한 삶을 회생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끼를 보면서 단순한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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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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